이번엔 좌파 학생단체 대변인..프랑스 또 히잡 논쟁

심진용 기자 2018. 5. 27.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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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UNEF 대변인 포즈투, 히잡 차림 방송 인터뷰 논란
ㆍ“페미니즘 지지 단체 정체성 부정” “히잡에 대한 히스테리”
ㆍ좌파 진영서도 무슬림 복장 반감…‘정교분리’ 위배 비판도

프랑스전국대학생연합(UNEF) 대변인인 마리암 포즈투가 지난 12일(현지시간) 방송된 현지 M6 방송 인터뷰에서 히잡 차림으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대학입시제도 개혁을 비판하고 있다. 방송화면 캡처

프랑스 히잡 논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종교의 자유’ 대 ‘세속주의 가치의 수호’ 구도의 히잡 논쟁은 프랑스에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좀 더 복잡하다. 프랑스 최대 학생단체인 프랑스전국대학생연합(UNEF) 대변인이 히잡 차림으로 방송 인터뷰에 나서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12일(현지시간)로 거슬러 올라간다. UNEF 대변인인 마리암 포즈투(19)의 방송 인터뷰가 이날 전파를 탔다. 포즈투는 에마뉘엘 마크롱이 추진하려 하는 대학입시제도 개혁에 반대한다고 했다. 마크롱은 바칼로레아만 통과하면 원하는 대학 어디에나 진학할 수 있도록 하는 기존 제도를 뜯어고쳐 경쟁 요소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UNEF가 여기에 반대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포즈투가 히잡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히잡 쓴 그를 대변인으로 앞세운 UNEF를 향한 비판이 이어졌다. 좌파 지식인 로랑 부베 베르사유대 정치학 교수는 방송이 나간 직후 트위터로 UNEF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고 적었다. 그는 16일 르피가로 인터뷰에서 “문제는 포즈투 개인이 아니라 UNEF”라며 “세속주의와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단체 대변인이 얼굴만 겨우 내놓는 히잡을 쓰고 방송에 출연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대선에서 좌파세력 후보로 출마했던 장 뤼크 멜랑숑도 세속주의 원칙이 훼손됐다고 비판했다. 이 단체 출신 좌파정치인 줄리앙 드레이는 “우리의 지난 학내 투쟁이 얼룩졌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마를렌 시아파 남녀평등장관은 “UNEF는 세속주의와 페미니즘을 지키려는 조직이 아니었나”라고 물었다.

이들의 비판은 크게 두 방향으로 요약된다. 공적 단체 대변인이 히잡 차림으로 인터뷰해 세속주의 원칙을 훼손했다는 것, 그 공적 단체가 세속주의와 페미니즘을 지향한다는 좌파 학생 단체 UNEF라는 것이다. 부베나 시아파의 발언에서 보이듯, 히잡 같은 이슬람 복장은 여성을 억압한다는 시각이 이들 주장의 기반에 깔렸다.

사회학자 아네스 드페오는 이들의 주장을 정면 비판했다. 그는 18일 더로칼 기고에서 “포즈투에 대한 반응은 집단적 히스테리에 가깝다”면서 “프랑스에서 무슬림은 여전히 외부인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적었다. 포즈투와 UNEF에 대한 비판은 이슬람혐오라는 것이다.

드페오는 “많은 프랑스인들이 히잡 쓴 여성을 자유의지 없이 남편에게 종속된 존재로 여기지만, 이런 시각은 히잡 착용을 공격하기 위한 신화”라고 강조했다. 히잡 비판론자들이 페미니즘을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프랑스 출신 언론인 폴랭 복은 24일 뉴스테이츠먼 칼럼에서 “히잡에 대한 분노로 프랑스 세속주의 위선이 드러났다”고 적었다. 그는 종교학자 도니아 보우자의 말을 인용해 “무슬림 여성들은 이슬람을 현대적으로 해석할 수 있고, 페미니즘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 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프랑스는 정교분리의 일종인 ‘라이시테’를 공화국 근간으로 삼는다. 개인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인정하지만, 공적 영역에서는 종교적 행위를 철저히 금지한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1905년에 이미 정치와 종교의 엄격한 분리를 법으로 천명했다.

오랜 역사만큼 라이시테에 대한 프랑스의 믿음은 단단하다. 2016년 부르키니(무슬림 여성들을 위한 수영복) 금지 논란 당시 르피가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64%가 부르키니 금지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무슬림 인구가 늘면서 공화국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불안감이 히잡 등에 대한 반감을 키운다. 잇따른 테러 역시 이런 정서의 한 배경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논란은 무슬림 이민자에 상대적으로 관용적으로 알려진 좌파 진영에서조차 히잡 착용에 대한 반감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논란의 당사자가 된 포즈투는 20일 버즈피드 인터뷰에서 히잡을 쓴 것은 신앙에 따른 선택일 뿐이며 정치적인 의미는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자신의 인터뷰가 국가적 논쟁거리로 떠오를 줄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 이후 소셜미디어에서 수많은 혐오 발언 공격을 당했다고 말했다. 앞서 UNEF는 부베를 비판하며 “포즈투가 인종차별과 성차별, 이슬람혐오의 희생자가 됐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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