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질서 파괴행위 묵과할 수 없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조사한 대법원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보면 이런 사법부에 재판을 맡겨두고 있었던가라는 생각에 충격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2015년 11월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이 직접 작성한 문건에는 “국가적·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BH(청와대의 영문 약칭)와 사전교감을 통해 예측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 수행”이라고 적시돼 있다. 한마디로 주요 사건 재판 시 청와대와 사전에 판결을 조율하겠다는 것이다.

문건은 또 “그동안 사법부가 VIP(대통령)와 BH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한과 재량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해 온 사례를 상세히 설명”이라고 쓰여 있다. 그러면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 통상임금 사건, KTX 승무원 사건, 전교조 시국사건 등을 열거해놓고 있다. 원 전 원장 댓글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유죄로 나온 원심판결을 파기환송시키고,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사건은 “경영상 어려움이 있으면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 KTX 여승무원들이 코레일을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과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 효력정지 신청 역시 원심에선 승소했으나 대법원에서는 모두 파기환송됐다. 이런 납득할 수 없는 판결들이 청와대에 ‘최대한 협조해온 결과’였던 것이다.

문건은 도저히 사법부에서 작성한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충격적인 내용 투성이다. ‘최근의 우호적 분위기 등 적극 활용’이란 제목의 문건에는 “박지원 의원 일부 유죄판결, 원세훈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 등 여권에 유리한 재판결과→BH에 대한 유화적 접근 소재로 이용 가능”이라고 쓰여 있다. 이어 ‘압박 카드’란 제목 아래에는 “상고법원의 추진이 BH의 비협조로 인해 좌절될 경우 사법부로서도 더 이상 BH와 원만한 유대관계를 유지할 명분과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고지해야 함”이라고 했다. 재판을 놓고 청와대와 뒷거래한 것도 모자라 거꾸로 권부를 압박하는 방안까지 구체적으로 마련한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 체제에서 권력에 잘 보이기 위해 검은 손짓을 한 의혹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막상 드러난 진상을 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양승태 대법원’이 판사의 독립적 활동을 위축시키고 재판의 공정성을 훼손한 것은 ‘박근혜 게이트’에 버금가는 반헌법적·반민주적 국기 문란 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조사단은 양 전 대법원장은 조사조차 하지 않고, 책임자들에 대한 형사고발도 하지 않았다. ‘셀프 조사’의 한계다. 오죽하면 현직 판사가 “국민과 함께 고발하겠다”고 나섰겠는가. 김명수 대법원장은 조사 결과를 면밀히 검토한 뒤 구체적인 입장과 후속조치를 밝히겠다고 한다. 아직 멀었다. 양 전 대법원장 등 법원 수뇌부는 사법질서 문란 행위에 대해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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