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님들, '합의'는 왜 하는 겁니까?

서영지 2018. 5. 2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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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지의 오분대기]정치BAR_서영지의 오분대기
지난 18일 여야 4당 원내대표들이 국회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서명한 합의문.

여당 담당 ‘말진’으로 정치부에 합류하게 된 서영지 기자가 ‘오분대기’라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매일 허둥대지만 언제든 신속하게 현장에 달려갈 수 있는 대기자, ‘5분 대기자’가 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제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면서, 여야가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한 ‘4·27 판문점선언’ 지지결의안 통과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정치부에 출입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감’없는 저는 궁금한 게 있습니다.

‘내일(28일) 본회의에서 결의안이 통과될까요?’

사실 결의안 통과는 지난 18일 여야가 드루킹 특검법과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동시 처리하기로 하면서 합의한 부분입니다. 여야 4당 교섭단체 원내대표 사인이 담긴 ‘5월 국회 여야 합의사항’에도 이 내용이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반신반의한 것은 그동안 국회가 보여준 ‘합의’의 무게가 너무 가벼웠기 때문입니다.

‘합의’는 도대체 왜 하는거죠?

단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얼마 전까지 국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드루킹 특검’이었습니다. 여야는 특검법 처리를 두고 서로 핏대를 높이며 싸웠고, 급기야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9일간 국회 본관 앞에서 천막을 치고 단식농성을 벌였습니다. 드루킹 특검 대치로 국회가 공전하면서 청년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추경 처리도 함께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는 국회의원 4명에 대한 사직서 처리도 시한을 다투는 사안이었습니다. 지난 14일까지 사직서 처리가 이뤄지지 못하면, 지역구 4곳의 재보궐 선거는 내년에 치러지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드루킹 특검과 추경은 모두 처리됐고, 의원들의 사직서 역시 처리됐습니다. 하지만 이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여야 합의 사항이 수시로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지난 14일 밤 여야는 특검과 추경을 동시 처리하기 위해 18일 밤 9시에 본회의를 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본회의가 열리기까지 과정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8일 본회의 개최 합의→연기→19일 밤 9시 본회의 개최 합의→연기→21일 본회의 개최’

애초 추경을 심의하기엔 18일 본회의 개최가 빠듯하다는 지적에도 여야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파행으로 18일 본회의가 무산됐습니다. 지난 21일 결국 추경안이 통과됐지만 심의 기간은 고작 일주일이었습니다. 3조9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은 그렇게 날림으로 통과돼야 했습니다.

검찰 수사 앞에서 ‘우리는 한편’

여기서 또 하나 꼭 짚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드루킹 특검법안을 두고 서로 으르렁대고, 합의 사항을 어겨가며 대치 국면을 이어가던 여야가 동료 의원들의 신병 처리 문제에서만큼은 ‘동업자 정신’을 발휘했습니다. 지난 21일 본회의에서 염동열·홍문종 자유한국당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검찰은 염 의원에 대해 지인 자녀들의 강원랜드 채용을 청탁한 혐의로, 홍 의원에 대해선 뇌물·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각각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무기명투표로 실시된 홍 의원의 체포동의안은 총투표 275명 중 찬성 129표, 반대 141표, 기권 2표, 무효 3표로, 염 의원의 체포동의안은 찬성 98표, 반대 172표, 기권 1표, 무효 4표로 각각 부결됐습니다. 특히 염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반대는 자유한국당 의석수(113석)보다 59표나 많았고, 이 숫자에는 민주당의 ‘이탈표’가 더해졌습니다. 그날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무기명 투표라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제가 보기에는 20표 이상 이탈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취임한 지 열흘 만에 고개를 숙여야 했습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과 문무일 검찰총장의 갈등이 영향을 미쳤다거나 두 의원에 대한 ‘동정론’이 있었다는 등의 얘기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8천만원의 뇌물을 받고 횡령·배임 액수가 75억원에 달하며 부정채용을 청탁한 혐의인데, 국회의원이 아닌 일반인이었다면 이렇게 구속 여부가 계속 늦춰질까요? 이를 두고 민주당 내 중진 의원은 이렇게 일갈했습니다. “국민의 눈높이로 봐야 하는 문제다. (체포동의안 처리는) 구속영장이 아니지 않냐. 법원에 가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받는 체포동의안이니까 국회가 해줘야 한다. 본인들이 주장하는 대로 정말 문제가 없는지 법원이 따져봐야 한다. 그래서 (국회가 체포동의안 처리를) 해줬어야 한다.”

“국회는 안 되는 것도 없고, 되는 것도 없다”

그러다 보니 국회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낮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종잡을 수 없고, 감 잡을 수도 없는 국회에 황당한 반응을 보이는 제게 선배가 농담처럼 건넨 말입니다. “국회는 안 되는 것도 없고, 되는 것도 없어.”

앞으로도 여야가 사안마다 합의를 이끌어내 2년 전 약속처럼 ‘일하는 국회’가 되고, 그 합의를 지켜갈지는 의문입니다. 당장 28일 본회의에서 판문점선언 국회 지지결의안이 처리될지부터 궁금합니다. 결의안 통과는 ‘선언적 의미’가 큰 만큼 어느 한 당이라도 빠지면 그 의미가 퇴색하는 거겠죠.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묻고 싶습니다. 국회의원에게 ‘합의’란 무슨 뜻입니까.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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