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21마리와 동고동락.. 집의 절반을 내준 '다묘 머슴'

박은주 기자 2018. 5. 2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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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신사동 '산새마을'에 거주하는 정홍권씨. 고양이 21마리와 살고 있다. 정씨가 마을을 떠도는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사진=김지훈 기자

전부 길에서 시작됐다. 새끼 고양이가 홀로 떨고 있었다. 가여워 먹이를 주다가 덜컥 집에 데려왔다. 그 다음엔 꼬리가 잘린 녀석, 학대당한 듯 항문이 없는 놈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모두 거리를 떠도는 고양이였다. 하나 둘 늘어난 고양이 식구는 21마리가 됐다. 서울 은평구 신사동 산새마을에 사는 정홍권(44)씨는 집을 개조하기로 했다.

길에서 온 아이들

정씨가 처음 데려온 고양이 이름은 ‘나비’다. 둘째는 ‘꽁지’. 나비는 흔한 이름이라서, 꽁지는 꼬리가 뭉툭하게 잘려서 그렇게 붙여줬다. 나비는 정씨가 26살이던 2000년에 큰 형수가 길에서 데려온 것을 맡아 키웠고, 꽁지는 2년 뒤 근무하던 공장 계단에서 발견했다. 생후 3개월이 채 안 된 터였다. 거의 죽어가던 것을 곧장 병원에 데려가 일주일간 입원시킨 끝에 살렸다. 다시 홀로 두면 위험하다는 의사의 말에 정씨는 꽁지를 키우기로 했다.

아래쪽에 있는 고양이가 나비. 위쪽이 꽁지. 사진=정씨 인스타그램

어릴 적부터 고양이를 좋아했다. 목줄을 찬 ‘쥐잡이’ 고양이가 집에 있었던 것이 어렴풋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커서는 종종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줬는데 유독 한 마리가 마음에 든 적이 있었다. 살뜰히 보살피던 어느 날 이 고양이가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크게 상심해 다시는 고양이를 돌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 결심은 나비를 만나면서 깨졌다. 정씨는 “그래도 21마리나 기르게 될 줄은 몰랐다”고 털어놨다.

꽁지를 데려온 뒤 본격적으로 공장 인근을 떠도는 고양이들 먹이를 챙기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회사 근처 식당에서 키우던 쥐잡이 고양이 두 마리가 자꾸만 정씨를 찾아왔다. 주인이 못 나가게 가두면 우는 소리를 내며 발버둥쳤다고 한다. 결국 주인은 두 고양이를 정씨에게 줬다. 두 마리 중 덩치 큰 놈이 엄마 ‘점순이’, 작은 녀석은 딸 ‘호순이’였다.

새 식구를 돌볼 곳이 필요했다. 그는 “당시 고양이 관련 지식이 부족해 모녀 사이인 점순이 호순이와 나비 꽁지를 함께 기르면 안 될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정씨는 저렴한 원룸을 구해 모녀 고양이를 두고 나비 꽁지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자기 집에서 키웠다. 틈이 나는 대로 들러 점순이와 호순이를 살폈다.

5년간의 ‘이중생활’

원룸 식구는 계속 늘었다. 점순이와 호순이를 잠시 공장 마당에서 기른 적이 있는데 정씨가 보살피던 수컷 길고양이 한 마리가 점순이와 눈이 맞았다. 호순이도 짝을 만나는 바람에 새끼 고양이 4마리가 더 태어났다. 본래 야행성인 고양이 7마리가 밤이면 온 집안을 뛰어다녔을 테니 민원이 들어오는 게 당연했다. 1년 만에 원룸에서 쫓겨났다.

새롭게 찾은 곳이 산새마을이었다. 월세가 저렴했고 차가 많이 다니지 않아 ‘로드킬’ 위험이 적었다. 정씨는 마을 텃밭과 가까운 27평짜리 집을 골랐다. 집 안에는 높은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 습성에 맞춰 다리가 긴 식탁과 캣타워 여러 개를 들여놨다. 사람을 위한 공간은 바닥에 깐 이불 하나가 전부였다. 그 사이 길에서 구조한 새 식구가 속 늘었다. 집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고양이굴’이 됐다.

고양이 11마리가 모여있는 모습. 정씨는 방 한쪽에서 여름에는 얇은 이불을, 겨울에는 침낭을 깔고 고양이들과 자곤 했다. 사진=정씨 인스타그램
정씨가 고양이들에게 간식을 주는 모습. 사진=김지훈 기자

문제는 정씨가 꼬박 주 6일을 근무해야 하는 직장인이라는 거였다. 집은 동물이 살기에 적당했지만 사람이 지내기엔 다소 허름했다. 가구도 제대로 갖춰진 게 없었다.

정씨의 이중생활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퇴근하면 부모님 집을 찾아 저녁을 먹고,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이후 고양이들이 있는 집으로 다시 ‘출근’했다. 고양이 화장실에 모래를 깔고 먹이를 주는 등 할 일을 마치면 그제야 지친 몸을 방 한쪽에 마련된 이불에 뉘었다. 고양이들은 그런 정씨의 배 위에, 머리맡과 옆구리에 저마다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 마음이 놓였다. 이런 생활을 5년이나 반복했다.

집을 수리하다

정씨가 ‘두 집 살림’을 정리한 건 지난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였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을 처분하고 ‘고양이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로 했다. 고양이 21마리와 어머니, 그리고 정씨. 스물세 식구가 동거하려면 대대적인 공사가 필요했다. 먼저 집 중앙에 있던 문을 완전히 막아 고양이와 어머니의 공간을 분리했다. 독립된 집 두 채가 생긴 거나 마찬가지였다.

어머니가 지내는 공간은 10평 남짓, 고양이에게 할당한 구역은 8평 정도였다. 집의 절반가량을 고양이에게 내줬다. 평범한 가정집처럼 꾸며진 어머니 공간과 달리 고양이 방은 정씨가 평소 꿈꿔온 대로 수리했다.

고양이 방은 한가운데 벽이 있어 두 공간으로 나뉜다. 정씨는 천장을 높게 트고 벽을 기준으로 작은 다락 두 개를 만들었다. 그 아래 캣타워 5개를 마련해 고양이들이 다락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게 했다. 또 햇빛 쬐는 것을 좋아하는 고양이들을 위해 창 앞에 커다란 식탁도 뒀다. 푹신한 의자 두 개, 화장실 네 개까지 준비했다.

어머니 방과 완전히 분리된 고양이 방. 집 중앙에 있던 문을 막았다. 어머니 방을 가려면 마당을 지나 현관까지 가야 한다. 사진=정씨 인스타그램

이렇게 개조하는 데 집 매매 비용을 제외하고도 7000만원이 들었다. 공사 기간에 정씨는 고양이 21마리와 함께 철거 예정인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에서 머물렀다. 친척의 집이었는데 마침 재개발이 결정돼 사람이 살지 않고 있었다. 전기와 가스도 모두 끊긴 상태였다. 정씨는 휴대용 전등으로 집을 밝히고 생수통으로 화장실을 대신해가며 버텼다. 8월에 시작된 공사는 두 달이 걸려 끝났다. 정씨는 “어머니와 고양이들이 많이 고생했던 시기”라면서도 “고양이 방을 더 손 보고 싶다. 구름다리 같은 것도 설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씨를 위한 공간은 여전히 없다. 정씨는 자기 방이 없다는 사실도 얼마 전에야 지인이 말해줘 깨달았다고 했다. 21마리를 키우다 보니 집에서 늘 바쁘다. 매일 고양이 대변만 2ℓ짜리 쓰레기봉투 두 개가 나온다. 정씨는 종종 자신을 ‘산장 머슴’이라고 소개한다. 집은 산장, 고양이들은 산장 아이들이다. ‘산장 가족’인 21마리 외에도 정씨가 돌보는 길고양이가 15마리쯤 된다. 그는 이들을 ‘마을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무려 36마리가 매일 이 머슴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고양이들의 식사 시간. 정씨는 자신이 키우는 21마리 외에도 마을을 떠도는 길고양이까지 챙기고 있다. 사진=정씨 인스타그램

금전적 부담도 자꾸 커진다. 고양이 취향에 맞춰 사료는 네 종류를 준비하고 때마다 병원도 데려간다. 한 마리만 아파도 10만원이 훌쩍 넘게 나간다. 정씨 표현대로라면 매달 월급의 3분의 2 이상이 고양이 비용으로 쓰인다. 그래도 정씨는 “병원에 더 자주 데려가고 싶고, 화장실도 한 마리당 한 개씩 준비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가족들은 그런 정씨를 포기했다. 대놓고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만 “더 데려오지만 말라”고 부탁하고 있다. 정씨도 여기서 멈출 생각이다. 한번 사람 손을 탄 고양이는 거리로 돌아가면 생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데, 여건상 더 많은 수를 책임질 자신이 없다. 15마리의 마을 아이들을 거리에서만 돌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산장 아이들은 모두 중성화 수술을 시켰다.

달려라, 고양아

정씨는 지금까지 모두 10번의 이별을 했다. 나비가 2016년 숨졌고 지난해 고양이 질병 중 가장 치명적인 전염성 ‘복막염’이 돌아 몇 마리가 또 곁을 떠났다. 처음엔 많이 힘들었지만 남은 고양이들을 위해 빨리 기운을 차리려 노력하고 있다. 게다가 이별은 아직 스물한 번이나 남았다. 그리울 땐 그간 찍어둔 사진이나 화장 후 유골로 만든 돌 모양 목걸이를 본다.

고양이가 먼저 떠나도 속상하지만 혹여 자신이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 갑자기 사라지게 될까 걱정이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생각이 없다는 정씨에겐 자신을 대신해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두 해 전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고양이 사진과 영상을 올려 ‘팬’을 만들고 있다. 급박한 상황이 생기면 고양이를 잘 아는 사람이 분양해 갔으면 한다.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runcat74’. ‘달려라 고양이’란 뜻의 영어에다 정씨가 1974년생이라 ‘74’란 숫자를 붙였다. 정씨는 “맞는 번역인지 모르겠지만 길에서 아팠던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계정 아래 자신을 소개하는 곳에는 “아프지 말고 사람, 차 조심해서 내일 또 보자”고 적었다.

정씨가 사는 산새마을 전경. 사진 우측 가장 첫 번째 집이 정씨의 '산장'이다. 그는 이 집을 어머니가 사는 공간과 고양이 방으로 나눠 개조했다. 사진=정씨 인스타그램
정씨 집 앞에 놀러 온 산새마을 길고양이들. 정씨는 집 현관에 길고양이들이 언제든 먹을 수 있도록 사료와 물을 준비해둔다. 사진=정씨 인스타그램

정씨가 사는 산새마을은 파랗다. 집 앞 텃밭이 파랗고 지붕 위 하늘이 파랗다. 집마다 푸른색 노란색 분홍색 벽화가 그려져 있다. 사람 두 명이 나란히 서면 꽉 차는 골목길에 고양이들이 졸졸 줄지어 다닌다. 마을 아이들은 밖에서, 산장 아이들은 안에서 창을 사이에 두고 종종 서로를 신기한 듯 구경한다. 그리고 정씨는 산장과 마을을 오가며 녀석들을 돌본다. 그는 이 모든 게 ‘치유’라고 했다. 절뚝이던 고양이가 바로 서고, 한 발 내디딘 걸음이 달음질로 바뀌는 모든 순간이.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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