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P2P 업체' 연쇄 부도..범행 수법보니 '터질게 터졌다'

류인하 기자 입력 2018. 5. 26. 14:53 수정 2018. 5. 2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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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피해자 2800명, 피해액 216억원. 한때 P2P(Peer to Peer·개인 간 대출) 업계 3위 규모까지 갔던 회사 대표는 돌연 잠적했다. 이자는커녕 원금조차 회수하지 못한 사람들이 수천 명이다. 금융감독원이 뒤늦게 P2P대출 연계 대부업자들에 대한 등록제를 시행하고 투자자들의 투자한도액을 최대 1000만원으로 할 것을 권고하면서, 투자자들의 피해규모는 오히려 더 커질 전망이다. 신규 투자자를 유치해 ‘돌려막기식’으로 기존 투자자들에게 원금을 상환해왔던 업체들의 자금줄이 막혔기 때문이다. 어쩌면 P2P업체들의 연쇄부도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현재 사실상 사업장 폐쇄 상태인 ‘펀듀’ 메인 홈페이지. / 화면 캡처

조동희씨는 P2P 플랫폼업체 ‘펀듀’ 사기피해자다. 그는 지난해 7월 처음 펀듀 104호 상품에 200만원을 투자했다. 총모금액 8억원, 투자기간 3개월, 보장수익률 16.3%였다. 투자설명서까지 다 살펴봤다.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두 달 뒤 조씨가 다시 살펴본 104호 상품 투자설명서는 그러나 조씨가 처음 본 것과 달랐다. 총대출액은 10억원으로 변경돼 있었고, 투자설명서에 나왔던 차주도 바뀐 상태였다. 이 같은 일은 이후 여러 차례 반복됐다. 처음에는 그럴 듯한 투자설명서를 만들어 투자자들을 유도한 뒤 투자설명서 자체를 바꿔치기한 것이다. 펀듀의 부실운영은 지난해 3월 모집한 71호 상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투자자들은 70호 상품까지는 원금 및 16% 안팎의 높은 이자를 모두 돌려받았다.

처음과 달라진 상품 투자설명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펀듀가 여타 P2P업체 가운데서도 상품 건전성이 높고, 수익률이 좋은 건실한 플랫폼으로 소문이 났다. 소문이 나는 곳에는 돈이 몰린다. 이 업체 공동대표였던 박모씨는 투자 피해자들에게 “펀딩을 하는데 몇 분 만에 200억원이 누적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70호 상품까지는 원금에 이자까지 잘 들어오던 것들이 돌연 71호부터 연체가 시작됐다. 그 사이 펀듀는 계속 신규상품을 개발, 투자자를 모집했다. 초단기 고금리 상품까지 등장했다. 연체에 이어 부실상품까지 나오면서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이들 대표를 고소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그러자 또 다른 공동대표 남모씨는 투자 피해자들을 모아 “우리 회사에 투자하겠다는 외국계 회사가 있으니 직접 나가서 외자유치를 해와 미상환금액을 상환하겠다”고 했다. 또 “믿기 어려우면 투자자 중 2명만 나와 함께 가서 계좌에 투자금이 송금되는 것을 지켜봐달라”고 했다.

남씨는 실제로 올해 1월 투자자 2명과 함께 홍콩으로 가서 투자자들에게 자금이 송금된 내역을 직접 보도록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쇼’였다. 송금이 됐다는 문서 자체가 허위였다. 남 대표가 외자유치를 자신한 외국계 회사는 알고보니 펀듀를 통해 지속적으로 돈을 대출해갔던 업체였다. 사실상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투자자들만 한국으로 돌아온 채, 남씨는 그대로 해외로 도주했다. 경찰 관계자는 “아프리카 등지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남씨를 상대로 지난 5월 18일 여권 무효화 조치를 한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조만간 인터폴 수배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남씨를 실제로 검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피해자들은 남씨가 지인과 친척 등을 통해 해외체류비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사건의 수사지휘를 하고 있는 검찰은 최근 도주한 남씨와 공범으로 함께 피소된 공동대표 박씨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공범들끼리 대질조사를 한 뒤 다시 영장을 신청하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남씨가 한국으로 돌아오거나 외국에서 잡히지 않는 한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범죄혐의 조사는 어려운 상황이다.

페이퍼컴퍼니 통해 투자금 빼돌려

펀듀가 벌인 사기극은 무법지대인 P2P업계를 제대로 꿰뚫은 범죄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2015년부터 국내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P2P는 금융과 기술이 결합한 새로운 서비스업으로 각광을 받았다. 방식은 대부업체의 영업과 유사했지만 단지 돈을 모으는 방식에 기술이 접목됐다는 이유로 ‘핀테크(fintech·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이 결합한 서비스)의 한 부분으로 간주됐다. 돈이 필요한 개인이나 법인이 플랫폼 사업자에게 투자설명서를 제출하고 대출을 요청하면 플랫폼 사업자가 해당 투자설명서를 토대로 대출 여부를 판단, 투자상품을 만들어 투자자들을 모은 뒤 모인 돈을 대부업자를 통해 빌려주는 방식이 P2P의 전형이다. 이 과정에서 플랫폼 사업자와 대부업자는 양측으로부터 일정 수수료를 받는다. 통상 투자자로부터는 원금의 0.1% 정도를, 차주로부터는 월 1%를 받는다. 1년에 1000억원을 모으면 차주로부터 받는 수수료만 10억원이다. 펀듀의 누적대출액은 불과 1년 10개월 만에 719억2000만원에 달했다.

문제는 투자자들이 펀딩에 들어가기 전 P2P 플랫폼으로부터 펀딩할 상품의 투자설명서를 사전에 받지만 이 정보 자체가 깜깜이 정보라는 데 있다. 내가 어떤 회사에 투자를 하고, 그 회사가 어떤 사업을 해왔으며, 어떤 목적으로 투자금을 이용하고, 위험 담보물은 어떤 것을 설정했고, 설정된 담보의 실제 가치는 얼마인지를 단 하나도 알 수가 없다. 각 차주의 신용등급 역시 공인된 등급이 아닌 각 P2P업체가 자체적으로 매긴 등급이다. 공신력 자체가 없는 셈이다. 때문에 투자자들은 P2P업체가 어떤 차주에게 돈을 빌려줬는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 방법이 없다. 실제 남 대표는 자신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조경업체를 ‘정부기관에 음료수를 납품하는 회사’로 둔갑시켜 투자자를 모집, 18호 상품부터 102호 상품까지 총 14개 상품을 통해 27억원을 대출해줬다. 또 자신의 친구가 세운 연매출 900만원짜리 페이퍼컴퍼니에 여신한도 100억원을 설정, 사실상 마이너스 통장처럼 돈을 빼쓸 수 있도록 한 혐의도 받고 있다. 그럴 듯하게 포장한 상품을 만들어 사실상 지인과 가족의 현금지급기로 이용한 셈이다. 여기에는 금융감독원과 P2P협회의 책임도 있다. 금감원은 지난해 8월 펀듀를 포함한 업체들을 상대로 외부 회계감사를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펀듀가 투자금 돌려막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발하고도 구체적으로 어떤 업체가 부실을 초래했고, 어떤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기망해 왔는지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이유는 ‘개인정보 보호’였다. 금감원 감사 이후에도 펀듀는 총 3개의 상품을 출시, 1억433만원을 모집했다. 이 돈을 투자한 투자자들 역시 모두 현재 원금조차 돌려받지 못한 상태다.

출처:금융위원회

P2P업계의 문제는 위 펀듀와 같은 투자금 유용(사기)뿐만 아니라 ▲불완전 판매 ▲사업장 폐쇄 및 업무중단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짚을 수 있다. 불완전 판매란 고객에게 보험 등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상품에 대한 기본 내용 및 투자 위험성, 손실 가능성 등에 대한 설명 없이 이뤄지는 판매를 말한다. 실제 불완전판매로 손실을 입힌 업체 두 곳은 피해자들이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P2P업체에서 투자상품을 만들고, 투자금을 유치하는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별도의 전문 자격증을 보유한 자들이 아니다. 이 분야에는 전문 자격증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한 P2P업체 관계자는 “보험업계도 보험설계사들의 불완전 판매에 대한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지적되면서 나름대로 설계사 의무교육 및 자격증 취득시험을 치르게 하는 등의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이 업계는 그런 자격증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차주로부터 제출받은 투자설명서를 보고 실질적으로 투자에 따른 성과가 나올지 여부, 대출액이 적정한지 여부, 담보물 등이 제대로 갖춰졌는지 여부 등을 판단할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실제 ㄱ사의 경우 지난해 5월 인천의 한 건물 시공 연장에 필요한 자금 24억원을 모집하면서 차주가 제공한 상가 2개를 담보물로 제시했다. 그러나 해당 상가는 실제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담보물에 대한 분양계획서만 살폈어도 알 수 있는 정보를 파악하지 않고 허위 담보물을 투자자들에게 제시한 셈이다. 또 지난해 5월 출시한 ㄴ주유소 대출의 경우 기름 구매자금 명목으로 3000만원을 펀딩했지만 이 역시 연체 중이다. 이유는 대출이 이뤄진 이후 주유소 한 곳은 매각됐고, 또 다른 곳은 인테리어 작업을 핑계로 영업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유소 측이 소유한 부동산 역시 선순위자인 가압류만 십수 건이 걸려 있어 투자자들은 원금 회수 자체가 불가능하다.

법원에 회생신청 이용 신종 수법

현재 130억원에 달하는 연체와 부실을 일으킨 ‘헤라펀딩’은 5월 24일 현재 부도처리된 상태다. 펀듀 역시 해외로 도주한 대표 남씨와 함께 공동대표를 맡고 있었던 박씨가 돌연 해임되면서 사업장이 폐쇄된 상태다. 50억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연체, 부실처리한 ‘2시펀딩’ 역시 현재 실소유주가 투자금 60억원을 들고 도주했다.

비교적 넓게 인정하고 있는 개인회생 역시 P2P업의 맹점으로 최근 등장하고 있다. 빚을 지고 있는 개인이 P2P업체를 통해 투자를 받아 빚을 상환하고, P2P업체로부터 빌린 돈에 대해서는 법원에 회생신청을 해서 빠져나가는 수법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신용대출을 주로 하는 ㄷ업체 역시 최근 들어 이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개인회생을 위주로 하는 브로커들 사이에서 퍼진 신종 사기인 것 같다”면서 “P2P회사로부터 돈을 대출받아 빚을 대환하고, P2P업체에서 받은 돈은 회생신청을 해서 안 갚는 방식이 요즘 들어 퍼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모든 일은 P2P를 관리할 법이 없다는 데 있다. 불완전 판매도, 일방적 사업장 폐쇄도 모두 불법이 아니다. 법이 없기 때문에 불법이 아닌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7월 ‘온라인 대출중개업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10개월째 계류 중이다. 그외 2건의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미 피해자와 피해액은 수천 명, 수백억 원에 달하지만 금융당국은 뒤늦게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대응을 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해 8월 대부업법 시행령 개정 시행을 통해 P2P대출 연계 대부업자에 대해 금융위 등록을 의무화했고, 6개월의 유예기간이 종료됨에 따라 P2P대출 연계 대부업자의 금융위 등록제를 전면 시행해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또 3월 1일 현재 총 104개 P2P대출 연계 대부업자의 등록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소송을 검토 중이거나 소송에 들어간 피해자들은 대부분 해당 조치가 있기 전에 투자한 사람들이다. 금융당국의 발표와 각종 대책들은 이미 피해를 본 사람들을 구제해주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 투자 피해자의 말이다. “투자 피해자들 간담회에 나온 한 P2P업체 대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렇게 담보물이 좋고, 신용이 확실하면 1금융권이나 2금융권을 가지 누가 여길 오겠어’라고 말입니다. 그게 지금 P2P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마인드입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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