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노인을 위한 기술은 없다? 있다!

석혜원 2018. 5. 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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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좋은 거 필요 없다. 실버폰이면 돼.”

아버지와 휴대전화 대리점을 찾았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아, 이런 새로운 기술은 젊은 사람들한테나 필요하지. 하지만 틀렸더군요.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 생각했던 새로운 기술은 세대를 구분 짓지 않았습니다. 노인을 위한 기술도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 쪽방촌, 어두운 방에 빛이 들어오다


“어떻게 먹긴! 그릇에 밥 퍼서 반찬이랑 먹지.” 서울 동자동 쪽방촌에서 만난 전하순 할아버지는 “식사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황당한 듯 답했습니다.

이곳에 온지도 17년째. 세월이 단련시켰나 봅니다. 할아버지는 홀로 시간을 보내고 끼니를 챙기는 생활이 제법 익숙해 보였습니다.

두 평 남짓 되는 작은 방에는 각종 살림살이로 빼곡하게 들어찼습니다. 할아버지에게는 겨우 누울 공간만 허락됐습니다.

지난해 폐암 수술 후, 거동이 불편해진 할아버지는 최근 허리 통증까지 심해졌습니다. 할아버지의 방 한편에는 약통이 빼곡히 있었습니다.

취재의 목적은 할아버지 방에 설치된 ‘센서 등’이었습니다. 노인 고독사가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자 서울시의 제안으로 개발된 겁니다.

방안의 움직임을 감지해 일정시간 포착되지 않으면 쪽방촌 상담소 및 담당자에게 경고 알림을 주는 겁니다. 비상 알림 문자가 전송되면 담당 간호사가 직접 방문해 이상 여부를 확인하게 됩니다.

◆ “혼자가 아니야“ 손 내미는 작은 기술

할아버지에게도 가족이 있지만 서로를 돌보기 어려운 삶입니다. 편찮은 부모를 홀로 두는 자식의 맘도 편할리 없습니다.

그 마음을 아는 할아버지 역시 “자식들한테 바라는 건 없다”고 “걔들 걔들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면 된다”고 말합니다.

“혼자 사는 게 이렇지 뭐. 이거면 됐지, 뭘 더 바라.”

한 시간 남짓 할아버지와 얘기하며 반복해서 들은 말입니다. 혼자가 익숙한 삶이지만, 그래도 사람 냄새는 반갑습니다.

“마음은 아주 편해요. 고맙지.”

말 못하는 작은 등이지만, 할아버지에게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혹시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혼자가 아닐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는 “시험 삼아 (리모콘의 호출 버튼을)눌렀더니 (간호사가)바로 왔다”는 자랑도 덧붙입니다.

◆ 노인 위로하는 '따뜻한 기술'


‘노인을 위한 기술’은 치매 예방 교육에서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서울 금천구 주민센터, 시니어를 위한 ‘인지건강 교육’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자식들 힘들게 할까봐, 그게 가장 겁이 나요.”

이 자리에 참석한 강신자 할머니는 교육을 받는 이유를 묻자 ‘자식’을 떠올립니다. 최근 깜빡하는 일이 늘어나며 치매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강 할머니는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를 올리고 하도 깜빡해서 살림이 남아나는 게 없다.”며 한숨을 쉽니다.

5년 전,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나영순 할머니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갑자기 머리가 아프고 구토가 났다”는 할머니는 “며칠 전에 한 일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앞으로 7~8년의 시간이 허락될 것”이라는 의사의 말에 눈앞이 캄캄해졌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저마다 사정은 달랐지만, 수업에 모인 할머니들의 두려움은 동일했습니다. 치매라는 두려운 병, 혹시 모를 미래를 막고 싶은 겁니다.

치매 예방 수업은 코딩,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다양한 기술이 접목됐습니다. 간단한 코딩을 통해 로봇의 움직임을 조작하고, 직접 색칠한 그림을 3D 영상으로 감상합니다.

손가락을 사용하고 집중하는 동안 몸에는 뇌 수축을 막는 자극이 전해집니다. 물론 치매 발병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발병과 진행을 최대한 늦추려는 겁니다.

수업에서는 가상현실을 통한 짧은 여행도 소개됐습니다. 친구들과의 터키 여행에 참석하지 못한 송종숙 할머니도 “이렇게라도 (친구들과)함께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생소할 수 있었지만, 강의실에는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고독사와 치매, 노인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그 두려움을 기술의 발전이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쪽방촌 센서등 사업은 현재 일부지역에서만 시범 진행 중입니다. 화재 경보나 가스 경보 등 더 많은 확장 안이 계획돼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지원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결국, 따뜻한 기술을 이끄는 건 따뜻한 마음입니다.

석혜원기자 (hey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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