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라돈 침대 파동.. 수소수 텀블러·게르마늄 팔찌는 믿을 수 있나

이정구 기자 2018. 5. 2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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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분쟁조정까지 간 '유사과학'의 실태
게르마늄 팔찌(왼쪽)와 라돈이 검출된 대진침대. 통증 저하부터 암 예방에 혈압 조절까지, 광고만 보면 만병통치약이다. 수소수를 만들어 마실 수 있다는 60만원짜리 텀블러도 나왔다. ‘플라시보 효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조선일보 DB·원자력안전위원회

음이온 효과를 높이기 위해 침대 매트리스에 음이온 파우더를 뿌렸던 대진침대. 이 침대에서 1급 발암물질인 방사성 원소 라돈이 검출되면서 '라돈 침대'라는 오명이 붙었다. 지난 23일 한국소비자원은 "대진침대 일부 제품에서 라돈이 검출됐다는 정부 공식 발표 이후 한국소비자원에 상담 3741건이 접수됐고, 이 중 분쟁 조정을 원하는 소비자가 180명을 넘어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 집단분쟁조정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피해 소비자가 50명 이상일 때 개시되는 집단분쟁조정은 소비자와 사업자 모두 동의한 경우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을 갖는다. 음이온 침대에서 자고 수소수(水素水) 텀블러로 물을 마시고 게르마늄 팔찌를 차고 다니면 건강해지는 게 아니었을까. 어쩌다 1급 발암물질을 걱정하고 사실상 소송까지 가게 됐을까.

'욕심이 만들어낸 괴물, 유사과학'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유사과학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며 "이번에 라돈 침대에서 논란된 음이온과 육각수, 수소수 같은 여러 기능수(水)가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유사과학은 특정한 이론이나 현상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고 주장하지만 근거나 정당성이 부족한 믿음이나 입장을 뜻한다. 이 교수는 "처음 음이온을 유사과학으로 지적한 게 2005년이었는데 그동안 달라진 게 없다"며 "라돈 침대는 곪았던 게 터진 것이고, 유사과학이 계속 판치면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민방사능감시센터는 지난 16일 성명에서 "음이온 제품 18만개에 대한 전반적 실태조사와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허청에서 특허를 내준 음이온 상품은 팬티·생리대·소금·화장품·마스크·정수기 등으로 생활 전반에 걸쳐 있다.

지난 3월 나온 책 '과학이라는 헛소리'를 쓴 과학저술가 박재용 작가는 부제로 '욕심이 만들어낸 괴물, 유사과학'을 달았다. 박 작가는 "미신, 속설, 사기가 과학의 탈을 쓰고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일은 셀 수도 없이 많다"며 "유사과학 중에는 약간의 플라시보(Placebo)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허위 광고나 근거 없는 공포 마케팅을 하는 건강식품, 기능성 제품은 건강도 해치고 재산 피해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작가가 지적한 대표적인 상품은 게르마늄 팔찌. 게르마늄에서 배출되는 원적외선과 음이온 효과로 통증 완화, 면역력 강화, 혈액 순환까지 건강 개선에 효능이 있다는 제품이다. 수만원대 커플 팔찌부터 하나에 50만원 하는 일본 수입 제품도 있다. 프로야구 선수를 비롯해 운동선수들도 팔찌, 목걸이를 즐겨 착용한다. 박 작가는 "두 손바닥을 맞대고 있어도 적외선이 나온다"며 "추운 겨울 강당이나 사무실에 있을 때 덜 추운 이유는 우리가 모두 일종의 적외선 난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적외선을 내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박 작가는 게르마늄 팔찌 외에도 육각수와 수소수, 전자파에 대한 과도한 공포 등을 유사과학의 폐해로 지적했다.

유사과학을 비판하는 웹툰까지 나왔다.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4월까지 다음에서 20회 연재된 웹툰 '유사과학 탐구영역'은 전자파 차단 스티커, 수소수, 게르마늄·자수정을 꼬집었다. 6화 '파워 스톤'편에서는 "자연 상태에서 저절로 에너지가 나오는 건 방사선뿐"이라며 "원석 가격이 높지 않은 광물이 건강 마케팅에 자주 이용된다"고 이야기한다.

육각수 다음 수소수, 되풀이되는 논쟁

기능성 제품과 유사과학 사이 논쟁은 되풀이된다. 게르마늄 팔찌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면 희토류 팔찌, 테라헤르츠 팔찌 같은 비슷한 제품이 출시되고 논쟁도 반복된다. 테라헤르츠 팔찌는 1초에 1조 번 진동하는 파장을 내는 광물로 만들어 불안정한 신체의 파장을 안정시켜 준다고 광고한다. 파장이 혈류량과 혈류 속도를 증가시켜 혈액을 깨끗이 하고 창의력, 면역력, 자가 치유력도 향상시킨다고 한다.

육각수(六角水)는 '물 박사'로 불린 고(故) 전무식 한국과학기술원(KAIST) 명예 석좌교수가 1977년 전 세계 최초로 주장했다. 좋은 물은 분자 여섯 개가 결합해 육각형 고리를 이루는데 건강한 사람 몸속 수분은 대부분 육각수이고, 당뇨병이나 암 환자는 육각수가 오각수로 바뀐다는 이론이다. 1990년 중반 정수기, 냉장고 등 육각수 제품이 줄이어 출시됐는데 진짜 효능이 있는지 논란이 벌어졌다. 1995년 한국소비자연맹은 육각수 냉장고를 출시한 가전 3사 연구원과 전 교수와 함께 '육각수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가 '노화 방지에 좋은 물'을 만든다는 가전 3사의 육각수 냉장고 광고를 과장광고로 조사했기 때문이다. 토론회는 각 업체 의견 제시와 육각수 이론에 대한 전 교수 설명으로 합의 없이 끝났다.

시간이 흐르며 육각수는 관심에서 멀어졌고 최근에는 몸에 해로운 활성산소를 잡아준다는 수소수가 뜨고 있다. 몸속에서 산화된 활성산소가 생체 조직을 공격해 세포를 손상시키는데 수소수는 이를 막아준다는 것. 마그네슘 막대를 물에 넣어 용해하거나 물을 전기로 분해하는 방식으로 물속 수소를 늘릴 수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휴대하며 수소수를 만들어 마실 수 있다는 수소수 텀블러도 인기인데 비싼 제품은 개당 60만원을 넘는다.

수소수 제품 광고에 많이 인용되는 논문은 지난 2007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실린 '활성수소 가스가 활성산소를 중화시킨다'는 일본의과대학팀의 연구. 논문 공동저자인 일본의대 오타 시게오 교수는 그러나 "최근 수소수 인기와 함께 사기 제품도 많이 나돌고 있는데 페트병에 들어간 물 중에 수소를 함유한 제품은 없었다"며 "활성수소, 이온 플라스마 수소 등으로 팔리는 여러 제품은 연구와 무관하니 사기 제품에 주의하라"고 말한다. 지난 24일 네이버에서 '수소수'를 검색했더니 일본 제품과 국내에서 만든 수소수 관련 제품은 4431건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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