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네가 두른 그 명품, 진짜 맞아? 증명해봐" 한국판 가십걸들의 전쟁

이혜운 기자 2018. 5. 2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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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천 前 약혼녀까지 휘말린.. 여왕과 시녀들의 인스타 싸움
/그래픽=이철원

가수 박유천의 전 약혼녀이자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인 황하나(30)씨가 사이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25일 서울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황씨는 20대 여성 이모씨에게 사이버 명예훼손과 방조 및 교사죄 혐의로 피소됐다. 온라인에서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이 이씨라고 오해해, 지인을 동원해 인신공격 및 모욕적인 댓글을 달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황씨와 지인들이 주고받은 메시지 내용 등을 경찰에 제출했다.

황씨와 이씨는 일면식도 없다. 학·경력도 겹치지 않는다. 이들의 공통점은 둘 다 인스타그램의 셀러브리티(유명인사·이하 '인스타 셀럽')라는 것. 이들의 이야기는 1년 전부터 시작한다.

셀럽들의 진짜 인증 싸움

영재고와 카이스트를 나와 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니는 이씨는 지난해 5월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들어간 황씨의 인스타그램에서 그녀가 든 가방에 대해 구입을 문의하는 다이렉트 메시지(DM)를 보냈고, 황씨는 답장을 보냈다. 황씨는 이미 이 세계의 유명인사였다. 황씨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버지가 하는 식품 사업뿐 아니라 지인들의 제품을 종종 소개했다.

이후 황씨 못지않게 이씨의 인기도 높아졌다. 어린 나이엔 사용하기 어려운 에르메스백, 모피 등 고가 물품, 화려한 외모와 상반된 엘리트 경력 등이 그녀를 스타로 만들었다. 그러자 '인증을 요구하는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모피 코트가 진품인지 인증하라", "영재고, 카이스트 졸업한 것을 증명하라", "어머니가 착용한 보석 브랜드 그라프의 시계를 어떻게 구입했는지 인증하라" 등의 내용이었다. 이씨가 사진을 찍어 올린 어머니가 착용한 그라프의 시계는 전 세계에 단 두 개인 한정품이다. 이씨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이 시계는 국내 재벌 딸도 살 수 없을 것"이라며 공격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모피 구입 영수증과 졸업증명서 등을 올리고, "어머니가 착용한 그라프 시계는 산 것이 아니라 착용만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결국 이씨가 자신을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B에게 항의하자 B는 자신이 한국 팔씨름왕으로 유명한 A씨와 황씨로부터 제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충돌 과정에서 이씨와 황씨의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이러던 중 지난 16일 인스타그램에는 '동충화초'라는 익명 계정이 생성됐다. 하루 만에 6000명이 넘는 구독자를 모은 이 계정은 황씨와 그 지인들을 공격하는 수위 높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2년 전 만들어졌다가 계정 주인이 구속되며 사라진 '강남 패치'(일반인 여성의 문란한 사생활을 폭로하는 인스타그램 익명 계정)와 유사한 형태였다. 이 계정을 본 황씨는 계정 주인이 이씨라고 판단해 자신의 지인들을 통해 공격하도록 했고, 이에 이씨가 황씨를 고소한 것이다. 원래는 황씨의 지인이었던 B는 황씨와 거리가 멀어진 후, 황씨와 카카오톡으로 나눈 대화 내용을 이씨에게 넘겼다. 이씨는 이 대화 내용을 증거 자료로 경찰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황씨는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이 모든 것이) 카톡 조작, 인스타 다이렉트 조작, 포토샵 조작"이라며 반박 글을 올렸다가 현재는 삭제한 상태다.

인스타 속 한국판 '가십걸'

소셜미디어 속 모습들이 어느 정도 거짓이 있다는 건 대다수가 감안하고 보는 부분. 그런데 왜 이들은 '진짜 인증 요구'를 하며 싸우는 것일까. 국내 인스타 세계에는 미국 드라마 '가십걸' 같은 '허세형 권력관계'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뉴욕 사립고에서 일어나는 내용을 다룬 청춘드라마로 여주인공인 세레나와 블레어는 교내 여왕과 같은 역할이다. 이 둘에게 밉보이면 학교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이들을 따르는 학생들이 있다.

국내 인스타에도 셀럽으로 불리는 '여왕'이 있고, 이들을 따르는 '시녀'가 있다. 여왕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의 재력 ▲학벌 ▲멋진 남자친구 ▲많은 해외 경험 ▲미모 등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이를 충족하는 과정에서 '거짓말'이 생겨난다. 그 과정에서 인스타 여왕(셀럽)들의 거짓을 밝혀내는 것 역시 시녀들의 중요한 '임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여왕-시녀'의 관계를 맺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돈. 여왕으로 불리는 이들의 팔로어 수는 5만명 이상이다. 일부 셀럽은 연예인보다 팔로어 수가 많다. 이들의 시녀로 활동하는 이들 대부분은 인스타그램·네이버 등을 통해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들이다. 여왕의 눈에 띄어 그들의 물건을 게시판에 올려주면 홍보 효과는 엄청나다는 것. 이들이 판매하는 물건은 정식 유통 채널을 통하지 않는 의류, 다이어트 식품, 가방 등이 대부분이다. 한 관계자는 "인스타를 통해 한정판매 공동구매 형태로 제품을 판매하면 하루 이틀 정도 사이에 몇천만원의 현금이 들어온다"며 "이들의 영향력이 커지다 보니 백화점 등 기본 유통 채널에서도 인스타 셀럽들을 연예인 대신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셀럽의 시녀로 알려진 인스타 블로거를 예로 들면, 명품 카피 원피스를 한 장당 20만원 선에서 판매하고, 이 원피스를 100명 이상이 구입한다. 대략적으로만 계산해도 2000만원이다. 이들 제품은 대부분 중국 등에서 사 오기 때문에 원가는 낮고, 세금을 내지 않는 판매자도 종종 있다. 한 관계자는 "좀 알려진 인스타 판매자들의 경우 기본 수익이 월 1000만원 이상"이라며 "어지간한 개인병원 의사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번다"고 말했다. 심리적인 요인도 있다. 관심을 받고 싶은 욕망, 잘나가는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은 심리 등이다. 현재 인스타 셀럽이 된 D씨의 경우 이들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집안과 학력, 경력 등을 부풀린 것으로 알려졌다. 의학적으로도,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허구의 세계만을 진실로 믿으며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일삼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한다.

'리플리 증후군' 양산하는 인스타

그런데 왜 유독 이런 '가짜 세계' 문제가 소셜미디어 중 인스타그램에 더 많이 나타나는 것일까. 먼저, 인스타그램은 회원 가입을 해 계정을 만들 때 실명 인증 절차가 없기 때문이다. 싸이월드나 페이스북은 실명 인증이 필요할 뿐 아니라, 기존 지인 중심이기 때문에 자신의 커리어를 적는 과정에서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자체 검열 과정이 있다. 또한 인스타그램은 게시 내용이 글이 아닌 사진·동영상 위주이기 때문에 조작이 더욱 쉽다. 글은 대필하지 않고서는 쓰는 사람의 지적 수준이 어느 정도 드러난다. 그러나 사진이나 동영상은 포토샵 등을 통해 조작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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