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여적]손학규의 출마 번복

이중근 논설위원 입력 2018.05.25. 22:41 수정 2018.05.25.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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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시성(詩聖)’ 두보(杜甫)는 마흔 살이 되도록 벼슬은 얻지 못하고 가난에 병까지 겹쳤다.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마저 돌아서자 <빈교행(貧交行)>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개탄했다. “손바닥 뒤집으면 구름이요 엎으면 비가 되니(飜手作雲覆手雨), 이처럼 변덕스러운 무리들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그대 보지 못했는가, 관중과 포숙아의 가난했을 때의 사귐을. 요즈음 사람들은 이 도리를 흙같이 버리고 만다네.” 번수(飜手)는 손바닥을 위로 펴는 것을 말하고, 복수(覆手)는 그 반대로 손바닥을 아래로 뒤집는 것이다. 변덕스러운 소인배의 우정을 이르는 ‘복우번운(覆雨飜雲)’과 입장을 뒤집는다는 ‘번복(飜覆)’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손바닥 뒤집듯 인정이 바뀌는 세태는 고금에 매한가지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복이 끊이지 않는 것은 성공한 사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92년 12월 14대 대선에서 패배하자 곧바로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갔다. 그러다 2년 반이 지난 1995년 7월 지방선거 직후 “그때는 이런 일이 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며 “고뇌에 찬 마음과 죄송한 심정으로” 정계복귀를 선언했다. 누구도 번복을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비판 여론이 비등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 당선으로 논란을 잠재웠다. 요즘 운동선수나 예술인들이 심심치 않게 은퇴 번복을 하지만 성공했다는 평가는 많지 많다. 웬만한 성과로는 긍정적으로 평가받기 어려운 것이 번복이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은 지난 23일까지만 해도 서울 송파을 재선거에 출마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런데 24일에는 “당을 살리기 위해 제가 죽는다는 심정으로 나섰다”고 했다. 25일 아침에는 “당이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분열의 위기로 치달아 저의 생각을 접는다”고 했다. 3일 동안 하루 한 번씩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원로답지 않은 처신이다. 그는 2014년 7월 재·보선에 진 뒤 정계은퇴 한 바 있다. 그러나 은퇴를 번복한 뒤 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으로 가서는 다시 바른미래당으로 옮겨 갔다. 정치 지도자의 덕목 가운데 하나는 진퇴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중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