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북·미]복귀 중 회담 취소 접한 기자단 "북 당국자들 표정 심각했다"
[경향신문] ㆍ기자단·북 관계자들, 원산 숙소 도착해 함께 관련 뉴스 읽는 등 촉각
ㆍ북, 폐기 현장에서는 “개울물 마셔보라”…‘방사능 오염 없다’ 강조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취재한 국제 기자단에도 25일 북·미 정상회담 취소 소식이 전달되면서 화두가 됐다. 북측 관계자들도 국제 기자단이 머문 숙소에서 관련 뉴스를 함께 보며 관심을 보였다.
■ 복귀 열차에서 “회담 취소” 웅성
국제 기자단은 지난 24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취재를 마치고 숙소가 있는 원산으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북·미 정상회담 취소 소식을 접했다. 남측 기자단은 당일 오후 11시30분쯤 열차 안에서 화장실을 이용하는 동안 다른 객차에서 북·미 정상회담 취소와 관련된 대화를 듣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취소한다고 공식 발표했다”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온 것이다.
CNN은 북·미 정상회담 취소 사실이 기자단에 충격을 줬다고 전했다. 열차에 함께 타고 있던 북측 관계자들은 어색하고 불편한 반응을 보이며 상부에 전화로 보고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윌 리플리 CNN 기자는 “그들은 이 상황이 북·미관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며 그래서 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했다. 영국 영상전문매체 APTN 라파엘 워버 기자는 일본 NHK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북한 당국자는 놀란 모습으로 향후 미국과의 협상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강한 관심과 우려를 보였다”고 했다.
남측 기자가 “한반도에 전쟁이 없으면 좋겠다”고 하자, 북측 관계자는 “호텔로 돌아가면 그간 진행된 상황(북·미 정상회담)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북한 당국자들도 북·미 정상회담 결렬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채 “일단 (숙소에) 도착해 한국 뉴스를 보라”고만 했다.
남측 기자단이 25일 오전 원산 숙소 내 프레스센터에서 노트북으로 북·미 정상회담 취소와 관련된 기사를 보자 북측 관계자들도 모니터 앞에 모여 함께 읽었다. 외신 기자들은 북·미 정상회담 취소 소식에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기자단은 당초 이날 오후 원산 갈마지구를 둘러볼 계획이었지만, 북측은 계획을 취소했다. 오후 2시쯤부터 2시간40분 동안 숙소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다. 리플리 기자는 트위터를 통해 숙소 인근에 있는 공항에 비행기 오가는 소리가 들렸다고 썼다. 북한 고위급 인사가 원산을 방문했던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 “갱도 앞 개울물 마셔봐라”
지난 24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에서 북측은 방사능 오염이 없다는 점을 국제 기자단에 강조했다. 3번 갱도 앞 개울에서 북측 매체 관계자는 “(시중에) 파는 신덕샘물이 pH(산도) 7.4인데 이 물은 7.15로 마시기 더 좋다”며 개울물을 마셔볼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군 막사 처마 밑에서 제비를 본 기자가 “제비가 방사능에 민감하다”고 하자 북측 관계자는 “그만큼 방사능이 없다는 얘기다. 개미도 방사능에 민감한데 엄청 많다”고 말했다. 당초 남측 기자단은 방사능측정기를 반입하려 했으나 입경 과정에서 압수됐다.
북한은 국제 기자단에 휴대전화 유심칩을 끼워준 뒤 요금을 지불하고 전화통화를 할 수 있게 했다. 남측 기자단은 24일 풍계리에서 핵실험장 폐기 취재를 마치고 원산으로 이동하는 열차 안에서 전화를 이용해 관련 소식을 서울로 타전할 수 있었다.
열차 객실 안에는 4명이 잘 수 있는 침대와 일본제 에어컨이 구비됐고 각종 음료와 재떨이가 비치됐다. 북측은 열차 이동 중 바깥 풍경이 노출되는 것을 경계하는 듯 차광막을 올리지 말 것을 취재단에 요청했다. 남측 취재진은 26일 중국 베이징으로 이동한 뒤 귀국한다.
<풍계리 | 공동취재단·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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