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저임금 노동자, 내년 기대 월급보다 10만원 넘게 줄어들 수도

남지원 기자 입력 2018. 5. 25. 21:44 수정 2018. 5. 29. 17: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ㆍ2024년까지 계속 산입범위 늘어 최저임금 인상 효과 반감 불가피
ㆍ낮은 기본급을 복리후생비로 벌충하는 사업장 많아 영향력 클 듯
ㆍ“면밀한 검토 없이 급조” 비판…노동계 “근로기준법 대원칙 훼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25일 의결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의 핵심은 ‘산입범위를 늘리되 저소득 노동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환노위 간사인 임이자 의원은 “연봉 2500만원 미만 근로자는 상여금이나 복리후생비가 최저임금에 산입되지 않고, 그 이상의 고임금은 최저임금에 산입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상여금뿐 아니라 식대와 복리후생비까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들어간 데다, 면밀한 시뮬레이션 없이 급히 개정안을 만들다 보니 실제로는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보지 못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상당수 생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16만원 오를 임금 3만원만 오를 수도

최저임금 산입범위는 내년부터 2024년까지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내년에는 상여금의 경우 최저임금의 25%를 넘는 금액, 복리후생비는 7%를 넘는 금액만 최저임금으로 산입되지만 2020년에는 각각 20%와 5%로 기준이 낮아진다. 2024년에는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전액이 최저임금에 산입된다.

저임금 노동자 ㄱ씨의 상황을 가정해보자. 그는 올해 기본급과 직무수당을 합쳐 꼭 최저임금 수준인 157만원을 받고 식대 15만원과 교통비 10만원을 별도로 받아 세전소득이 월 182만원이다. 만일 산입범위가 바뀌지 않은 채로 내년에 최저임금이 10%가량 올라 시급이 8300원이 된다면 월 최저임금은 173만원이 되고 ㄱ씨의 월소득 총액은 198만원이 된다.

하지만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내년에 시행되면 ㄱ씨의 임금 인상폭은 크게 줄어든다. 개정안에 따라 기본급과 직무수당뿐 아니라 월 최저임금 173만원의 7%를 초과하는 복리후생비 12만8900원이 최저임금을 산정할 때 포함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ㄱ씨의 사업주는 월급을 3만1100원만 올려줘도 기본급과 직무수당, 복리후생비 중 7% 초과분을 합치면 최저임금을 맞출 수 있다. ㄱ씨의 월소득 총액은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기대보다 12만원 가까이 줄어든 186만1100원이 된다. 최저임금이 10% 올라도 소득이 늘어나는 효과가 없는 셈이다. 저임금 노동자들은 상여금은 없어도 식대와 교통비 등 복리후생비는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본급이 낮고 복리후생비로 이를 벌충하는 임금구조를 가진 사업장에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2024년까지 계속 최저임금이 인상되더라도 산입범위가 계속 늘어나는 만큼 임금 인상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 주먹구구로 만들어진 25%와 7% 기준

산입범위 기준선을 산정한 방식이 과학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당연도 월 최저임금의 25%를 초과하는 상여금, 7%를 초과하는 복리후생비’ 기준을 제시해 합의를 이끈 더불어민주당 서형수 의원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월 200만원 미만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한 기준선”이라고 설명했다. 최저임금의 25%에 못 미치는 정기상여금을 받는 노동자는 산입범위 확대와 상관없이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올해 월 최저임금 157만원의 25% 수준인 40만원의 상여금을 매달 받는 경우 월급은 평균 197만원이 된다. 복리후생비도 마찬가지로 월 10만원을 기준으로 잡고 그보다 많은 경우 산입범위에 포함하기로 해 7%라는 기준선이 잡혔다. 기준선을 잡은 객관적 근거나 데이터에 대한 면밀한 분석은 없었던 셈이다.

끝까지 개정안 통과에 반대했던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새벽 1시에 30분 만에 급조된 법안을 충분한 실증적 검토도 없이 강행처리했다”고 비판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취지 자체는 저임금 노동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나, 실제로 구체적 데이터나 개별 임금을 놓고 어떤 효과가 발생할지 따져보는 과정이 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 근로기준법 대원칙 훼손

국회는 사업주가 분기·반기별로 지급하던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넣기 위해 월별로 쪼개서 줄 때 노조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조항도 만들었다.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상여금 지급 시기 등의 취업규칙을 변경하려면 과반수 노조나 노동자 중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소위는 사업주가 상여금 총액의 변화 없이 월 단위로 쪼개서 주도록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는 동의가 아닌 과반수의 ‘의견을 청취’만 하면 되도록 하는 조항을 만들었다.

사업주가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 합법적으로 상여금을 쪼개서 지급하는 방식으로 실질임금을 낮출 길을 열어준 셈이다. 노동계에서는 “근로기준법의 대원칙이 훼손됐다”는 반발이 나온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