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천재들을 만들어내고 흡수한 도시들

문학수 선임기자

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

에릭 와이너 지음·노승영 옮김 |문학동네 | 512쪽 | 1만8500원

오스트리아 빈은 18세기 천재 음악가들의 도시였다. 사진은 슈테판 대성당에서 바라본 빈 시내. 오스트리아 빈 부르크정원에 있는 모차르트상(오른쪽). 출처: 위키피디아

오스트리아 빈은 18세기 천재 음악가들의 도시였다. 사진은 슈테판 대성당에서 바라본 빈 시내. 오스트리아 빈 부르크정원에 있는 모차르트상(오른쪽). 출처: 위키피디아

모차르트가 천재였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는 너덧살 무렵부터 작곡을 했고, 아버지 레오폴트와 함께 마차를 타고 유럽 곳곳을 다니면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연주회장에 모여든 왕족과 귀족들은 눈을 의심하다가 곧이어 환호했다. 얼굴에 젖살이 통통한 꼬마가 어른들도 연주해내기 어려운 테크닉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감탄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물론 그 자리에서 벌어진 일들을 ‘음악’이라는 범주에 포함시키려다보면 왠지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그것은 서커스에 가까운 ‘묘기대행진’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기능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어린 모차르트’는 천재였다. 신동의 음악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넓고 깊어진다.

[책과 삶]천재들을 만들어내고 흡수한 도시들

이 책은 ‘천재’의 비밀을 장소에서 찾으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저자인 에릭 와이너는 미국 NPR(National Public Radio) 방송의 해외특파원을 지낸 저널리스트다.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면서 다양한 분야의 취재를 해온 것으로 보이는데, 책의 앞날개 프로필에는 “철학적 여행가이자 회복 중인 불평분자”라고 적혀 있다. 실체가 무엇인지 약간 아리송한데 어쨌든 인생을 재미있게 살려는 인물이라는 ‘인상’을 주는 소개다. 그는 책의 머리에서 “‘창조성이란 무엇인가?’보다는 ‘창조성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편이 더 낫다”면서 ‘창조적 천재’가 왜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장소에서, 게다가 한 명도 아니라 여럿이 무리 지어 등장했는가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천재를 만들어낸 도시’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천재적 창조성이 폭발한 장소 일곱 곳에 대해 서술한다. 기원전 450년 무렵의 아테네,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 음악의 도시 빈 등을 거쳐 현대의 실리콘밸리에 이르기까지 그곳들은 “대부분 도시”다.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숲을 거닐고 폭포수 소리를 들으며 자연에서 영감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도시에는 창조성을 자극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한 천재를 길러내는 데는 한 도시가 필요하다.”

일곱 곳 중에서도 저자는 오스트리아 빈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사실 오늘날의 빈은 결벽증에 가깝도록 까탈스러운 도시로 손꼽힌다. 하지만 모차르트가 빈으로 들어섰던 1781년의 풍경은 달랐다. 당시의 권좌에는 계몽군주를 자처했던 요제프 2세가 앉아 있었다. 그는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와는 딴판인 권력자였다. 빈 예술계의 막강한 ‘돈줄’이었고 스스로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애호가였다. 말하자면 왕실의 예술 후원이 어느 시절보다 풍성했다. 게다가 아직 몰락하지 않은 예술 애호가 귀족들이 여전히 존재했으며, 새롭게 부상하는 중산층이 음악의 새로운 수요층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음악가들에게 이처럼 ‘물 좋은’ 도시는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었다.

당시의 빈이 다른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열려 있었다는 점도 음악의 융성에 이바지했다. 빈 태생의 유태인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는 이와 같은 빈의 특성에 대해 “모든 모순을 새롭고 독특한 것으로 조화롭게 해소하는 태도야말로 음악도시 빈의 고유한 천재성”이라는 언급을 남긴 바 있다. 저자는 자신이 빈에 대한 통찰을 얻기 위해 츠바이크를 “참고하고 또 참고했다”고 밝히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테네와 마찬가지로 빈은 외국인을 거부하지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흡수하고 종합했으며, 그럼으로써 낯익으면서도 낯선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책과 삶]천재들을 만들어내고 흡수한 도시들

1700년대 말부터 그런 요인들이 거의 동시에 펼쳐지면서 음악이라는 꽃이 만발하기에 적절한 환경을 조성했다. 모차르트뿐 아니라 하이든과 베토벤, 나중에는 슈베르트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가 천재 혹은 거장으로 칭송하는 음악가들이 이 시절의 빈에서 활약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데 그런 창조적 활력의 이면에 엄청난 경쟁이 존재했음도 간과할 수 없다. 말하자면 당대의 음악가들은 그들이 태어난 곳이 어디든 너나없이 빈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다 보니 모차르트가 들어섰을 무렵 그 도시의 직업 피아니스트는 300명이 넘었으며 피아노를 배우는 아마추어들은 6000명에 달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빈은 ‘천재가 태어난 곳’이라기보다는 천재들이 모여들던 곳이었다. 알려져 있다시피 모차르트의 고향은 바로크 시절의 음악도시였던 잘츠부르크다. 모차르트가 빈으로 향했던 것은 ‘큰 물’에서 더 많은 성공을 쟁취하기 위해서였다. 독일의 본에서 태어난 베토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맥락에서 ‘천재의 발상지’라는 책의 제목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천재의 고향은 변방일 수 있으며, 이오니아의 천재들이 존재했기에 아테네의 영광이 가능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천재들을 흡수한 도시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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