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문화

`약 빤 자막` 위해 욕쟁이까지 공개모집한 번역가

입력 : 
2018-05-25 16:02:29
수정 : 
2018-05-25 16:08:59

글자크기 설정

데드풀2 번역가 황석희씨 "주인공 SNS 팔로해 말투까지 연구"
사진설명
24일 신촌 메가박스에서 진행된 '데드풀 2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 참여한 번역가 황석희 씨(오른쪽). [사진 = 김민지 인턴기자]
영화계가 오역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가운데 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약 빤 번역', '초월 번역'이란 평을 받으며 팬덤까지 거느린 번역가 황석희 씨(39). 그는 영어교육과를 졸업했지만 교사가 되고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러다가 "책을 번역하고 싶다"는 생각에 번역계에 발을 들였다. 설명서 번역부터 시작해 2006년부턴 TV프로그램과 드라마까지 활동 영역을 확장했고 2013년 '웜 바디스'부터 본격적인 영화 번역을 시작했다.

'스파이더맨: 홈커밍', '데드풀' 시리즈 등 마블의 오락 영화부터 '쓰리 빌보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등 묵직한 아카데미 수상작까지 요즘 흥행한 외화 곳곳에 그의 손길이 닿았다.

황 씨를 지난 24일 서울 신촌 메가박스에서 열린 '데드풀 2 관객과의 대화 (GV)'행사에서 만날 수 있었다. 영화 '데드풀2' 상영이 끝나고 그가 무대 위로 올라오자 여느 아이돌 부럽지 않을 뜨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사진설명
번역가 황석희 씨(39)가 번역을 맡은 '데드풀2'와 '스파이더맨: 홈커밍' 포스터. 데드풀2에선 자막 크기에 변화를 주고 스파이더맨에선 자막에 이모티콘을 넣는 등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 [사진 = 각 영화사 공식 홈페이지 캡처]
황 씨가 지금의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건 데드풀1 때문이라 해도 지난친 말이 아니다. 거의 매 장면 미국 대중문화를 패러디하고 쉴 틈 없이 미국식 말장난을 쏟아내는 데드풀을 과연 어떻게 한국어로 번역해 낼 것인지가 관건이었는데 그는 문화와 언어를 '초월한' 미친 번역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그래서 영화 팬들은 "황석희가 '데드풀 2'의 번역도 맡아 다행"이란 반응이었다. 하지만 팬들의 기대는 황 씨에게 부담이 되기도 했다. 그는 "한창 데드풀 2 번역 최종 검토를 하고 있을 때 영화 오역 논란이 일었다"며 "이에 덩달아 부담이 커져 너무 스트레스 받았는데 무사히 작업을 마쳐 다행"이라 말했다. 최근 다른 번역가가 맡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대사 일부가 오역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사진설명
지난 4월 황 씨는 개인 페이스북 계정으로 전국의 '욕쟁이'를 모집한 바 있다. [사진 = 황석희 페이스북 캡처]
데드풀을 더 잘 번역하기 위해 주인공 배우의 평소 말투를 연구하기도 했다. 데드풀2의 '데드풀' 역을 맡은 라이언 레이놀즈는 각본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고 애드립을 많이 날리는 편이다. 그래서 황 씨는 레이놀즈의 SNS를 팔로해 그의 농담 스타일과 말투를 '수학 문제 풀 듯' 연구했다. 황 씨는 번역할 때 등장인물의 말투에 신경 쓰는 편이다. 그는 "구어체 영어를 번역하기 때문에 극 중 인물의 말투나 성격, 상황에 따라 뜻이 확 바뀐다"며 "데드풀도 '얘들아 뭐 할래?'같은 어린애 말투를 구사하는데 그 점을 자막에 녹였다"고 밝혔다.

데드풀에 나오는 찰진 욕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전국의 '욕쟁이'를 모집한 적도 있다. 그는 지난달 개인 페이스북 계정에 "패드립과 욕설 잘 하시는 분 계시면 써주실 수 있을까요"란 글을 올려 화제가 됐다. 그는 "댓글엔 많은 욕이 달렸는데 데드풀을 번역할 땐 쓰이지 못했다"며 "댓글의 욕은 스크린에 올리기엔 너무 수위가 셌다"며 웃었다.

사진설명
번역가 황석희 씨. [사진 = 황석희 인스타그램 캡처]
자막에 이모티콘을 넣거나 글자 크기에 변화를 주는 등 새로운 시도에도 거침없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선 자막에 이모티콘을 넣었었는데 이번엔 욕설 중간에 글자 크기를 달리해 원대사를 재치있게 한국식으로 바꿨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미국에 있는 자막 담당 회사에 직접 연락했다. 황 씨는 "(영화 자막의) 두 줄짜리 정해진 형식 안에서 제약을 뛰어넘을 방법을 찾으려 나름 노력한다"며 "물론 아무 때나 형식을 무시하면 안 되지만 관객에게 의미를 더 잘 전달할 수 있다면 이런 시도는 좋은 것 같다"고 밝혔다.

한 관객이 "어떻게 젊은 감각을 유지하냐" 질문하자 황 씨는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라 답했다. 그는 높아진 관객 수준에 맞추기 위해 각종 문화 콘텐츠뿐만 아니라 온라인 게시판도 모두 챙겨보는 편이다. 그는 "멍청하게 그냥 있으면 관객들 수준을 따라갈 수 없다"고 덧붙였다.

[디지털뉴스국 김민지 인턴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