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4200만원 대기업 근로자도 여전히 혜택..구멍뚫린 합의안

손일선,김효성,최희석 입력 2018. 5. 25. 16:03 수정 2018. 5. 25.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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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급 25% 넘어선 상여금 산입..7% 초과한 복리후생비도 포함
월별지급 상여금만 산입 대상..月쪼개기지급 변경 특례있지만 단협사항이라 대기업선 무의미

◆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정 ◆

1987년 최저임금제도가 생긴 후 30여 년 만에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변경된다. 노사가 치열하게 대립하면서 최저임금위원회가 제도 개선에 실패한 이후 국회가 공을 넘겨받아 진통 끝에 25일 새벽 결국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합의한 것이다.

우선 내년부터는 매월 지급되는 상여금을 포함해 최저임금을 계산하기로 했다. 올해까지는 기본급만을 최저임금 계산에 포함하면서 실제로는 월 157만원을 넘게 받는 근로자라고 하더라도 기본급이 157만원 이하인 경우 최저임금 인상 혜택을 받았다. 예를 들어 월 300만원을 받더라도 각종 수당과 상여금을 제하고 140만원을 받는 근로자라면 기본급을 월 17만원 더 얹어줘야 했다는 말이다.

특히 올해 최저임금이 16.4% 급등하면서 기업들이 막대한 인건비 추가 부담을 호소했다.

이에 국회가 사업주들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최저임금에 매월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주는 상여금을 포함시켰다. 다만 저임금근로자 보호를 위해 내년에는 최저임금 월급(올해 기준 157만원)의 25%인 약 39만원 이하는 이를 최저임금 계산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했다. 예를 들어 월 단위로 받는 상여금이 50만원인 경우 40만원을 빼고 남은 10만원만 최저임금 계산에 포함시키겠다는 내용이다.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따르면 이와 같은 예외를 점차 줄여서 2024년부터는 월 단위 상여금 전액을 최저임금 계산에 포함시키게 된다.

숙박비, 교통비, 식비 등 현금으로 지급되는 복리후생비도 내년부터는 최저임금 계산에 포함된다. 만약 현금성 복리후생비로 교통비 10만원과 식비 20만원을 받을 경우 30만원 중 최저임금인 157만원의 7%에 해당하는 11만원을 제외하고 19만원은 최저임금에 포함해서 계산한다는 이야기다. 복리후생비도 마찬가지로 점차 최저임금 산입에서 제외되는 부분을 축소해 2024년부터는 모두 포함시키게 된다.

전문가들은 노동계 반발을 의식한 점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미진한 합의"라고 평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합의는 정기상여금을 매월 지급되는 상여금으로 바꾸는 문제로 치환시켜버린 불안정한 합의고, 실제 근로자가 받는 보수 전체를 포함시키지도 못한 불완전한 합의"라고 평했다.

특히 이번 개정안에는 곳곳에 함정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우선 노조가 있는 대기업 근로자들에 대한 실효성 여부다. 국회는 '취업규직 변경 특례'를 통해 사업주가 분기·반기별로 지급하던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넣기 위해 월별로 쪼개서 줄 때 노조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 조항을 만들었다. 원래 사업주는 노동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하려면 과반수가 참여한 노조나 노동자 중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회는 이 특례 조항을 통해 상여금 상당 부분이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노조가 없는 대다수 사업장에서는 이 같은 특례 조항으로 분기·반기별로 주던 상여금을 월별로 지급하는 것이 수월해질 수 있다.

하지만 힘센 노조가 있는 대기업은 무풍지대다. 상여금 지급 시기 등이 사규의 한 종류인 취업규칙보다 상위 개념인 단체협약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일자리전략실장은 "노조가 있는 대다수 대기업이 단체협약으로 상여금 관련 규정을 정해놨기 때문에 이번 특례 조항이 큰 의미가 없다"며 "단체협약 변경을 노조가 동의해주지 않으면 상여금 지급 주기를 월별로 변경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 4000만원이 넘는 고임금을 받으면서도 상여금 비중이 높고 기본급 비중이 낮아 최저임금 인상 혜택을 보는 대기업 근로자가 존재하는 기형적 구조가 여전히 지속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지순 고려대 교수는 "노조가 있는 쪽에서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향후 최저임금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임금체계 전반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지순 교수는 "최저임금은 정말 최저임금밖에 못 받는 저임금 근로자들에게만 영향을 줘야 하는 비시장적 정책"이라며 "현재의 복잡한 임금체계를 유지하면 대기업 노동조합에서 최저임금의 혜택을 볼 수 있는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구체적으로 탈호봉제와 단순화 등 임금체계 개편을 통해서 근로자가 받는 돈이 얼마인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 부산대 법대 교수는 "선제적으로 최저임금에 대한 원칙과 개념을 명확히 하고 그에 맞는 산입범위가 일관되고 논리적인 맥락을 가지고 설정돼야 했다고 본다"면서 "이번 개정안은 지나치게 세부적이고 기술적으로 다루는 바람에 노사가 소모적 갈등을 빚게 될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 돼버렸다"면서 "당장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금지의 원칙에도 예외를 만들어야 하는 복잡성이 나타났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수당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포함돼 있지 않아 현장에서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는 "환경노동위원회 통과안이 복잡하게 되어 있어 어떤 수당이 최저임금에 포함되는지를 두고 노사가 다툴 수 있는 소지가 많다"며 "정부 입장에서도 위반 사업장을 정확히 단속하기 어려워져 현장은 무법천지로 방치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손일선 기자 / 김효성 기자 / 최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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