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 &] '라돈 침대'가 부른 공포..방사선이 뭐길래

원호섭 2018. 5. 2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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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선 촬영 세번만 해도 연간 방사능 허용치 '훌쩍'
피폭량보다 장기간 노출이 더 위험하다는데..
"라듐이 범죄자 손에 들어가면 위험한 물질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자리에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자연의 비밀을 캐는 것이 인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 비밀을 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인류는 성숙한가?" 1903년 열린 노벨물리학상 시상 기념연설에서 마리 퀴리의 남편이자 퀴리 부인과 함께 방사성물질 '라듐'을 발견한 피에르 퀴리는 이같이 말했다. 물질에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방사성물질 라듐을 발견하고 연구 업적을 인정받는 자리에서 퀴리는 방사성물질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음을 걱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라듐 원소 발견이 인류에게 불행이 아닌 번영을 가져오는 데 사용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퀴리 부부의 우려는 2018년 한국에서 라돈 침대로 현실이 됐다. 발암물질 라돈은 '라듐'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기체로 발암물질에 속한다. 라돈과 같은 방사성물질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이어서 대중의 염려를 키울 수밖에 없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라돈 침대에서 오랜 시간 생활했더라도 당장은 몸에 나타나는 변화가 방사성물질 때문인지 아닌지 명확하게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라듐은 위험한 방사성물질이지만 처음 발견됐을 때는 '방사선'이라는 개념이 부족했다. 별다른 전원을 연결하지 않아도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물질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질병 치료는 물론 미용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스타킹, 연고, 치약 등 생활필수품 여러 곳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물리학자 앙리 베크렐이 "라듐을 팔에 묶고 다녔더니 수포와 궤양이 생겼다. 쥐에게 쏘이자 죽었다"고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결국 여러 부작용이 발견되고 난 1931년이 돼서야 시판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피에르 퀴리는 마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지만 마리 퀴리는 1934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방사성물질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기준치 이상의 많은 방사선에 노출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방사선이 나오는 원소를 '방사성원소', 물질을 '방사성물질'이라고 부르며 방사선의 강도를 '방사능'이라고 한다. 침대에서 방사성물질이 검출됐을 때 "라돈과 토론이 모두 같은 '라돈'"이라는 말 때문에 고개를 갸우뚱했던 사람이 많다. '동위원소'에 대한 개념이 부른 혼란 때문이다. 동위원소는 화학적 성질이 같지만 질량에서 미세하게 차이가 나는 원소를 말한다. 주기율표에서 원자번호는 같지만 '원자량(원자의 질량을 나타내는 척도)'이 다르다. 공기 중에 떠 있는 수소는 방사성물질이 아니지만 동위원소인 삼중수소는 방사성물질에 해당하는 만큼 같은 원소라 하더라도 성질에 차이가 생긴다. 라돈의 동위원소는 모두 27개가 있는데 토론이 바로 이 같은 동위원소 중 하나다. 동위원소 중에 방사능이 있는 것을 '방사성동위원소'라고 하며 이를 '방사성핵종'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자연 상태에서도 인류는 수많은 방사선에 노출된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 입자 역시 방사선을 내뿜는다. 비행기를 타고 유럽 여행을 했을 때 우주에서 날아오는 방사성물질에 우리 몸은 0.07m㏜(밀리시버트·1000m㏜=1㏜)가량 피폭을 받은 상태가 된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돌과 발밑의 지각에서도 방사선이 나온다. 40억년 전 지구가 처음 생성됐을 때 많은 방사성핵종이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크기가 센 방사선은 거의 사라졌지만 미량의 방사선은 여전히 흘러나오고 있다. 건축물에서 방사선이 나오는 이유 역시 지각으로부터 채취한 흙, 모래, 돌 등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연에서 연간 3m㏜의 방사선을 받는다. 세계 평균인 연간 2.4m㏜보다 약간 높다. 일반적으로 지각에서 1.04m㏜(33.8%), 라돈가스 등에서 1.40m㏜(45.6%)의 자연방사선이 나온다. 이 같은 자연방사선과 원자력발전소나 X선 촬영 시 발생하는 인공방사선은 세기에 차이가 있을 뿐 동일한 방사선이다. X선 촬영 시 0.1~0.5m㏜의 방사선에 피폭된다. 1~2㏜의 방사선에 피폭되면 메스꺼움이나 식욕 부진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2~3㏜에 노출되면 30일 뒤 사망률이 35%에 달한다. 50~80㏜ 세기의 방사선에 노출되면 수 초~수 분 내 사망한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당시 4~6㏜의 방사선에 노출된 소방관은 이후 암에 걸려 사망했다. 전문가들은 자연환경에서 건강에 큰 해를 미칠 정도의 방사선을 내뿜는 방사성물질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도 방사성물질이 포함돼 있다. 1950년대 이뤄진 핵실험으로 발생한 방사성 낙진이 조금씩 땅으로 떨어져 토양이나 야채에 묻은 뒤 방사선을 뿜기도 한다. 또 식품이 함유하고 있는 칼륨의 약 1%는 방사성물질로 이를 먹으면 미세하지만 우리 몸에서도 방사선이 나온다. 다행히 이 정도 섭취는 건강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방사능 침대로 문제가 된 라돈은 조금 다르다. 라돈 역시 지각에서 발견되는 방사성물질이다. 진영우 한국원자력의학원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장은 "라돈은 방사능 세기가 약하고 종이를 투과하지 못하는 만큼 문제가 된 침대에서 나온 방사선이 인체에 미칠 영향은 거의 없다"면서도 "라돈이 기체인 만큼 폐로 흡입했을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라돈은 시간이 지나면 납, 비스무트처럼 인체 조직에 달라붙는 또 다른 방사성물질로 변하는데 이것이 몸 안에서 계속 방사선을 뿜어내게 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라돈을 흡연 다음으로 폐암을 유발하는 원인 물질로 규정한 이유다. 자연방사능의 절반 정도가 라돈으로 알려져 있다.

방사선에 노출됐을 때 얼마만큼 노출됐는지 보여주는 단위가 ㏜(시버트)다. 신체 부위에 피폭된 방사선량을 보여준다. 방사선량은 '표준인'의 전신이 노출됐을 때 피폭되는 양이기 때문에 손이나 얼굴 등 일부가 노출되면 그 양은 뚝 떨어진다. 표준인은 나이, 신체조건, 성별 등의 평균을 내 표준화한 가상의 인물이다. 한국 성인 남성의 경우 171㎝에 68㎏, 성인 여성은 160㎝에 54㎏이 기준이다. 따라서 같은 방사성물질에 노출됐더라도 신체 크기에 따라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다.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어른들보다 두 배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신체 내부에서도 장기별로 방사선에 대한 영향이 다르게 나타난다.

저선량 방사성 인체영향은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가 제시하는 성인의 1년간 방사능 노출 허용치는 1m㏜다. 일반적으로 X선 1회 촬영 시 0.1~0.5m㏜ 수준인데 최대치로 계산할 경우 X선 촬영을 두 번 넘게 하면 1년간 방사능 노출 허용치를 넘어서는 셈이다. 흉부CT 촬영 때는 X선 촬영 때의 10배 수준인 5~10m㏜ 정도의 방사능에 노출된다. 1년간 방사능 노출 허용치를 크게 초과하는 셈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따르면 라돈 침대의 방사선 수치는 원전 작업자에 대한 허용 기준치인 연간 50m㏜보다 낮다. 다만 방사선 피폭은 단순히 얼마만큼 노출됐는지보다는 얼마나 오랜 기간, 꾸준히 노출됐는지가 인체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만약 대진침대를 하루에 10시간씩 10년간 썼다면 최대 93.5m㏜에 노출돼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고선량의 방사선에 피폭되면 일반적으로 DNA에 이상이 생기는 만큼 염색체 검사를 통해 피폭 여부를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진영우 한국원자력의학원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장은 "라돈 침대 피폭량이 작기 때문에 염색체 검사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없다"며 "폐에 발생하는 이상 역시 명확한 인과관계를 찾아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체내로 흡수된 방사성물질이 혈액 검사 등을 통해 검출되기도 하지만 이번 사건은 저선량인 만큼 확인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적은 양의 방사선 노출도 논란이 되는 이유는 미량의 방사선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정확한 실험값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 원폭 피해 생존자나 원전 종사자 집단에 대한 연구 결과 100m㏜ 이상 피폭된 사람들에게서 암 발생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 이하의 방사선에 노출됐을 때는 추가적인 암 발생률을 알기 힘들다. 어떤 실험은 영향이 있다고 나오기도 했고, 또 다른 연구에서는 관련성을 찾기 힘들다는 발표가 뒤따르기도 한다.

2015년 의학학술지 '랜싯'에 발표된 미국과 프랑스 등 국제공동연구진 논문에 따르면 극저선량의 방사선이라 할지라도 장기적으로 노출되면 백혈병이 발생할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30만명 이상의 핵산업시설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시험이었던 만큼 이 논문 결과가 미치는 파장은 컸다. 연구 대상 근로자들은 자연방사선으로 인한 피폭을 제외하고 연간 방사능 노출 허용치를 소폭 넘어서는 평균 1.1m㏜의 방사선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방사선 노출량이 증가할수록 백혈병 위험이 증가했다"며 "지극히 낮은 수준의 방사선에도 이 관계가 성립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7년 학술지 '핵의학지'에 발표된 미국 연구진 논문은 이를 다시 반박하고 있다. 진단 시 발생하는 적은 방사선에 오랫동안 노출된 의료진에게서 암 발생과의 상관관계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방사선 피폭과 관련해 '알라라(ALARA)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1973년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가 처음 제시한 이 원칙은 '합리적으로 달성가능한 한 낮게(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라는 영어 문장의 단어 앞글자에서 따왔다. X선이나 CT처럼 치료 목적으로 어쩔 수 없이 방사선에 피폭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무리 미미한 양이라도 가능한 한 최대한 방사선 피폭량을 줄이도록 노력하라는 얘기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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