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 투자 불패론' 부른 리픽싱.. 주가 떨어져도 전환가 낮추면 그만

하헌형/노유정 2018. 5. 24. 18:5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코스닥 CB 발행 '이상과열'
(2) 증시 양극화 심화
리픽싱 후 주가 반등 땐 고수익
신규 상장 주식 수 늘면
소액주주 지분가치는 '희석'

[ 하헌형/노유정 기자 ] 코스닥시장 상장사인 토필드는 2016년 8월 130억원어치 사모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CB 투자자가 주식 전환 대가로 회사에 지불해야 할 돈(전환가)은 주당 3195원으로 정했다. 이 CB 발행 당일 5070원이었던 토필드 주가는 이후 하락을 거듭해 작년 말 전환가의 절반 수준인 1610원까지 떨어졌다.


토필드는 CB 발행 당시 투자자와 맺은 ‘리픽싱’(전환가 하향 조정) 약정에 따라 2016년 12월부터 7회에 걸쳐 CB 전환가를 1713원까지 떨어뜨렸다. 토필드 주가는 지난 3월 이후 급등해 4290원(24일 종가)까지 올랐다. CB 투자자들은 지난 17일과 21일 보유 중인 CB 전량을 주식으로 바꿔달라고 회사에 청구했다. 토필드 주가가 지금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하면 CB 투자자들은 다음달 5일 신주 상장 때 약 147%의 평가이익을 보게 된다.

‘큰손’ 개인투자자와 벤처캐피털 등 일부 기관투자가 사이에서 ‘CB 투자 불패론’이 확산되고 있다. 리픽싱 조항 때문에 CB 발행 후 발행 기업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져도 손해를 볼 게 없는 데다 주식으로 전환하기 전 주가가 반등하면 고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강남 큰손들, 왜 CB에 열광하나

CB 리픽싱 제도는 2002년 4월 투자자 보호 목적으로 국내에 처음 도입됐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CB 발행사의 주가 하락에 따른 개인투자자의 투자 손실 위험을 최소화하자는 차원에서 도입됐다”고 말했다. 사모로 발행된 CB에는 발행 후 1년간 보호예수(주식 전환 및 분할 금지) 조건이 달려 있다.

CB 발행 기업은 최초 전환가보다 최대 30% 낮은 가격까지 전환가를 하향 조정할 수 있다. 다만 CB 발행 후 감자(자본금 감액)나 신주 할인 발행(유상증자)이 이뤄진 경우 CB 액면가까지 낮출 수 있다. 반면 발행 기업 주가가 올라도 전환가가 상향 조정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CB를 인수한 뒤 발행 기업 주가가 하락하는 것을 오히려 반기는 투자자들도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 증권사 채권운용부장은 “발행사 주가가 하락하다 ‘유(U)자형’ 상승세를 타면 CB 투자자는 대폭 낮아진 전환가에 주식을 살 수 있어 높은 평가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50억원 규모의 주식 전환이 이뤄진 코스닥시장 상장사 쏠리드 CB가 대표적이다. 2016년 5월 이 CB 발행 당시 3900원대였던 쏠리드 주가는 작년 4월 1800원대까지 급락했다가 지난달 4000원대 후반까지 반등했다. 이 CB에 투자한 네 개 사모펀드는 65%가 넘는 주식 평가이익을 올렸다.

증권업계에서는 일부 코스닥시장 상장사들의 과도한 CB 리픽싱이 증시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형호 한국채권투자자문 대표는 “CB는 기본적으로 발행 기업의 향후 주가 상승에 베팅하는 상품이어서 리픽싱 조건이 붙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국내에 CB 리픽싱이 만연한 것은 성장성이 낮은 기업의 CB 발행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해 이후 CB를 발행한 코스닥시장 상장사를 시가총액별로 분류한 결과 전체 CB 발행액 가운데 시가총액 2000억원 미만 소형주의 발행액(4조6084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85%에 달했다.

◆개미 울리는 ‘리픽싱 폭탄’

증권업계에서는 그동안 CB 리픽싱을 한 해 최대 네 차례 하는 게 관행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매달 전환가를 조정하는 상장사들이 늘고 있다. 이달 주식 전환이 이뤄진 CB 41개 중 10개(24.4%)는 발행 후 한 달마다 전환가를 조정할 수 있는 조항이 달려 있다. 현행 규정상 리픽싱 횟수 제한은 없다.

리픽싱으로 전환가가 계속 낮아지면 신규 상장하는 주식 수가 늘어 기존 소액주주들의 주식 가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가령 한 상장사가 전환가를 1만원(액면가 5000원)으로 잡아 100억원어치 CB를 발행했다고 하자. 원래 전환가대로 CB가 주식으로 전환되면 발행될 신주는 100만 주지만 전환가가 5000원으로 떨어지면 200만 주의 신주가 발행돼 기존 주주 지분율이 그만큼 떨어진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도한 리픽싱은 주주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며 “기존 주주와 CB 투자자 간 이해 상충 문제를 해소하는 보완 장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 CB(전환사채)

convertible bond. 발행 후 일정 기간이 지났을 때 투자자가 원하면 발행 기업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채권. CB 투자자는 채권 원금이나 추가 현금 지급을 통해 미리 정해진 가격(전환가)에 발행사 주식을 인수할 수 있다. 통상 발행사 주가 흐름에 따라 전환가가 하향 조정(리픽싱)되는 조건이 붙는다.

하헌형/노유정 기자 hhh@hankyung.com

[한경닷컴 바로가기] [글방] [모바일한경 구독신청]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