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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파워풀한 파란 병 블루보틀

입력 : 
2018-05-24 14:54:33
수정 : 
2018-05-24 16: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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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에 블루보틀이 오픈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많은 이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아마도 그중 절반은 푸른색 병이 그려진 매장 앞에서 인증샷을 찍을 꿈에 부풀었으리라. 블루보틀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다양한 비결 중 단순한 파란 병 로고가 미친 영향은 얼마나 될까? 혹자는 블루보틀의 힘은 그 청명한 터키블루의 비뚜름한 그림에서 나온다고 한다. 마치 삼손의 머리카락처럼 말이다.

사진설명
오클랜드 본사. 최근 오픈한 교토 매장에도 오직 눈에 띄는 건 저 강력한 푸른 병뿐이다.
흔히들 말한다. 블루보틀은 커피업계의 애플이라고. 고집스럽게 오너 자신의 철학을 밀고 나가는 방식, 소비자에게 자신의 방식을 주입시키는 방식, 닮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 표현을 듣고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는 각자의 로고 플레이에 있지 않을까. 애플의 사과, 블루보틀의 푸른 병. 그 직관적인 그림이 사람들의 뇌에 각인되어 가는 과정과 방식 말이다. 구구절절 브랜드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브랜드. 이렇게 단순하고도 명확한 정체성을 가진 디자인을 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블루보틀의 방식은 주목해볼 만하다. 매장 전면, 간판 대신 흰 벽면에 그려진 푸른 병은 한 번 보면 잊기 어렵다. 사진으로 찍어 남기겠다는 충동과 더불어 그 그림이 박힌 물건을 소유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솟구친다. 한동안 인스타그램에는 뉴욕이나 도쿄의 블루보틀 매장을 찾아 인증샷을 올리는 게 붐이었다. 애플 로고가 새겨진 물건이라면 모든 신상을 구매해야 직성이 풀리는 애플 마니아처럼 말이다. 기존 커피 업계의 로고와는 사뭇 다른, 아니 전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이 엠블럼은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사진설명
심플한 푸른 병을 전 상품에 강조해 적용한 블루보틀. 소비자들은 그 강렬한 마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터키블루는 블루보틀의 시작점을 상징한다.
2002년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제임스 프리먼이 캘리포니아 작은 창고에서 시작한 블루보틀. 커피 마니아였던 그는 오스트리아 빈 최초의 카페 이름이 ‘푸른 병 밑의 집’이었던 것에 착안해 브랜드명을 지었다. 1600년대 후반 빈 사람들은 전쟁 후 터키군이 남기고 간 파란 병 안에서 작은 알갱이를 발견했다. 다들 이것이 낙타 먹이라 생각했는데 프란츠 콜시츠키는 달랐다. 아랍에 거주한 경험이 있던 그는 병 안의 물건이 커피콩이란 사실을 금세 알아차렸다. 그는 터키군이 남기고 간 커피를 모두 사들여 빈 최초의 커피 전문점을 오픈했다. 이 가게 이름에 영감을 받아 자신의 브랜드 명을 ‘블루보틀’로 한 것은 최초의 커피숍, 그 정신을 잊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 브랜드의 상징 색이 그냥 블루가 아니라 ‘터키블루’인 것도 이 브랜드명의 유래에 그 이유가 있다. 사실 창업 당시부터 프리먼이 지금의 로고를 쓴 것은 아니다. 초창기 블루보틀의 로고는 푸른 병에 ‘Blue bottle coffee co.’라는 글자가 쓰인 평범하고 다소 산만한 모습이었다. 그러다 2015년 일본 진출을 계기로 업그레이드했다. 고즈넉하고 소박한 도쿄의 기요스미 시라가와 매장은 동네 분위기에 어울리게 하기 위해 외관을 간결하게 디자인했는데 그때 매장의 간판이라 할 파란 병 밑의 타이포그래피를 빼 버린 것. 브랜드 태동과 함께한 로고. 그것도 그림과 브랜드명이 함께 한(보통 창업주들은 이런 형태를 완벽하다 생각하곤 한다) 형태에서 이름을 삭제하는 과감한 결정은 쉽지 않다. 엄청난 자신감 아니고는 말이다. 그런데 이게 신의 한수였다. 하얗게 칠해진 네모 반듯한 건물, 거기에 화룡점정이 된 푸른색 병 하나. 어린이가 그린듯 자연스럽게 칠해진 이 그림은 방점이 되었고, 마술같은 생동감을 불어 넣었다. 너도나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인증샷을 퍼 나르기 시작했고 블루보틀은 모든 제품에 브랜드명을 빼고 이 그림만을 사용했다.

다수의 대중에게 친절한 방식은 아니지만 마니아에겐 자랑스런 가문의 문장 같은 것이다. SNS 시대에서 단순함은 최고의 미덕이다. 제임스 프리먼의 책을 보면 블루보틀은 48시간 내 로스팅한 원두로 드립 커피를 내려 준다는 초심으로 만들어진 ‘말도 안 되는 콘셉트’의 커피숍이다. 당연히 느리고 불편하다. 하지만 스페셜티의 가치, 브랜드 철학을 중시하는 제3세대 커피 문화가 대중화된 요즘, 조금은 불편한 이 콘셉트가 오히려 소비자의 충성심을 불러일으킨다. 브랜드 철학은 진중하게, 디자인은 단순하게! 이것이야말로 지금의 소비자를 사로잡는 양손 전략이다.

[글 한희(문화평론가) 사진 블루보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30호 (18.05.29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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