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초반 한화 이글스의 비상이 놀랍다. 연이틀 선두 두산 베어스의 발목을 잡은 상황에서 '수호신' 정우람의 완벽투가 빛났다. 50세이브 신기록 달성보단 강팀 한화가 되는 게 먼저라고 강조한 정우람의 얘길 들어봤다.

올 시즌 한화 마무리 정우람의 세이브 달성 페이스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올 시즌 한화 마무리 정우람의 세이브 달성 페이스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엠스플뉴스=대전]

“어제 경기는 꼭 이기고 싶었습니다.”

5월 23일 대전구장에서 만난 한화 이글스 한용덕 감독은 선수단을 향해 흐뭇한 눈길을 보냈다. 전날 석가탄신일의 짜릿했던 승리를 다시 떠올린 까닭이었다.

선두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 차를 줄일 한화의 기회였다. 경기 초반 흐름은 좋았다. 한화는 3회 말 5득점 빅 이닝으로 6회까지 6-1 리드를 잡았다. 하지만, 올 시즌 철옹성 같았던 한화 불펜진이 흔들리면서 8회 초 6-7 역전을 허용했다.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다른 반전이 있었다. 한화는 9회 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제러드 호잉이 동점 솔로 홈런을 날리면서 연장전으로 승부를 끌고 갔다.

7-7로 맞선 10회 초 2사 2루에서 한 감독은 상대 타자 지미 파레디스를 고의4구로 내보내는 결단을 내렸다. 마무리 정우람을 좌타자 류지혁과 상대하게 만들기 위한 결정이었다. 이 경기는 잡아야 한단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장면이기도 했다. 정우람의 안정감은 대단했다. 정우람은 10회 초 2사 1, 2루 위기를 범타 유도로 넘긴 뒤 11회 초까지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정우람의 호투에 한화 타선은 11회 말 송광민의 끝내기 적시타로 응답했다.

“예전엔 선두 팀을 상대로 그렇게 따라잡히면 그대로 패하면서 끝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어제 경기는 선수단 모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우리 팀이 달라진 걸 보여준 하루였어요. 꼭 이겨야겠다고 생각했기에 정우람을 투입했습니다.”

이렇게 한 감독의 필승 의지를 담은 카드가 바로 동점 상황에서 나온 정우람이었다. 올 시즌 리그 최고의 마무리로 평가받는 정우람이기에 당연한 선택이기도 했다. 정우람은 23일 대전 두산전에서도 5-3으로 앞선 9회 초에 등판해 세이브를 따냈다. 정우람은 올 시즌 23경기(22이닝)에 등판해 2승 18세이브 평균자책 0.82 23탈삼진 4볼넷 WHIP(이닝당 평균 출루율) 0.77을 기록 중이다. 마무리가 고민인 팀이 수두룩하지만, 한화는 뒷문 걱정이 전혀 없다.

이 흐름대로라면 정우람은 산술적으로 올 시즌 53세이브를 달성할 수 있다. KBO리그 한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인 오승환(2006년·2011년)의 47세이브를 넘기는 숫자다. 하지만, 정우람은 50세이브라는 대기록 달성보단 강팀 한화가 먼저라고 거듭 강조했다. 10년 넘게 풀지 못한 가을 야구라는 숙원을 푸는 게 정우람에게 더 중요한 일인 까닭이다.

“강팀 한화를 원한다.” 베테랑 정우람의 품격

올 시즌 정우람의 마무리 등판은 곧 승리를 뜻한다(사진=엠스플뉴스)
올 시즌 정우람의 마무리 등판은 곧 승리를 뜻한다(사진=엠스플뉴스)

석가탄신일에 나온 극적인 역전승이 대단했습니다. 물론 정우람 선수의 호투가 대단했어요(웃음).

(고갤 내저으며) 제가 한 건 없어요. 호잉이 다 한 거죠(웃음).

올 시즌 가장 기억에 남을 승리가 됐습니다.

그렇죠. 선두 두산이 강팀이잖아요. 마지막까지 어려운 흐름으로 갔는데 이겨서 다행입니다. 중요한 승부처에서 승리했네요.

세이브 쌓이는 속도가 무시무시합니다. 이 흐름대로라면 50세이브를 넘길 수 있는데요.

그건 힘들지 않을까요(웃음). 시즌 초반부터 세이브 기회가 많이 찾아왔어요. 좋은 흐름이 빨리 온 것 같습니다. 세이브 개수는 전혀 신경 안 쓰고 있어요.

이미 팬들의 기대치는 올라갈 때까지 올라갔습니다(웃음).

팬들의 기대를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도 전 제 세이브 기록보다 팀이 강해지는 게 더 중요해요. 우리 팀은 만들어지는 과정이라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젊은 투수들이 경험을 쌓는 과정에서 제가 도움이 되고 싶어요.

베테랑의 품격이 느껴지는 말입니다.

팬들도 제 세이브 기록보단 한화가 장기적으로 강팀이 되는 걸 원하실 거예요. 저도 똑같이 생각합니다. 그 목표를 위해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고 있어요.

정우람 “마무리라면 ‘4연투’도 불사해야죠.”

마무리 수난 시대에서 가장 빛나는 공을 던지는 투수가 바로 정우람이다(사진=엠스플뉴스)
마무리 수난 시대에서 가장 빛나는 공을 던지는 투수가 바로 정우람이다(사진=엠스플뉴스)

한화가 강팀이 되는 과정은 맞는 것 같습니다. 올 시즌 한화 불펜진은 리그 최고 전력으로 평가받습니다. 정우람 선수를 중심으로 젊은 투수들의 선전이 돋보이고 있어요.

젊은 투수들은 아직 경험을 쌓으면서 배우는 단계입니다. 기술적인 부분은 코치님이 가르쳐주시지만, 제가 따로 조언해줄 부분도 있습니다. 방심하거나 나태해지는 부분이 있다면 정신적으로 잘 짚어줘야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시즌 후반까지 계속 좋은 활약을 펼칠 거로 믿습니다.

이글스의 마지막 세이브왕인 송진우 투수코치(1992년·17세이브)는 다른 마무리 투수들과 정우람의 차이는 바로 ‘칼날 제구’라고 바라봤습니다. 비교적 낮은 올 시즌 속구 평균 구속(140.1km/h)에도 순항하는 이유 같습니다.

(고갤 끄덕이며) 맞습니다. 제구력 하나는 자신 있어요. 그런 자신감이 없으면 투수는 마운드에 올라갈 수 없죠.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에요. 공 하나를 원하는 곳으로 던지기 위해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즌 초반부터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기에 마무리로서 연투는 피할 수 없는 분위기입니다. 올 시즌엔 3연투를 두 차례 소화했는데요. 연투에 대한 부담감은 어느 정도입니까.

불펜 투수라면 ‘연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연투가 가능하기에 불펜 투수를 하는 거죠. 특히 마무리라면 4연투 이상도 불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 나갈 땐 일주일 넘게 등판 안 할 때도 있으니까요.

다행히 송 코치는 4연투 이상으로 던지는 건 없을 거라고 강조했습니다.

마무리는 모든 게 미정이라고 생각해요. 몸만 괜찮다면 세이브 상황에 계속 나가야죠. 세이브 아닌 팽팽한 상황에서도 종종 올라가잖아요. 지금보다 나이가 어리고 팔 상태가 좋으면 더 무리해도 될 것 같은데(웃음). 그래도 코치님이 관리를 잘 해주시는 거에 감사드립니다.

블론 세이브에 아파하는 청춘들을 위한 조언

한화에서의 가을 야구는 정우람이 간절하게 원하는 유일한 소망이다(사진=엠스플뉴스)
한화에서의 가을 야구는 정우람이 간절하게 원하는 유일한 소망이다(사진=엠스플뉴스)

올 시즌 리그 전체적으로 블론 세이브 개수(올 시즌 5월 23일 기준 240경기 총 69개·지난해 720경기 총 174개)가 급격하게 증가했습니다. 그만큼 마무리 문제로 골치를 앓는 팀들이 많아졌어요.

경기 수가 늘어나고 타고·투저 흐름이 이어지면서 투수들의 기량 발전이 뒤처지는 것 같아요. 또 구위는 괜찮은데 ‘멘탈’ 문제도 있죠. 블론 세이브가 나오면 바깥에서 엄청난 비난이 쏟아져요. 나이가 어린 투수들은 확실히 부담감이 클 겁니다.

블론 세이브의 아픔을 극복할 ‘멘탈’이 중요하네요.

사람이니까 블론 세이브는 피할 수 없어요. 저도 예전에 많이 경험해봤죠. 확실히 야구 외에 다른 곳에서 나오는 반응에 신경 써야 하니까 힘든 건 당연합니다. 주위 반응에 최대한 신경 쓰지 말고 자기가 지닌 공만 자신 있게 보여주면 돼요. 욕을 먹어도 그 상황을 잘 이겨내야 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정우람의 ‘멘탈’이 빛나는 것 같습니다(웃음).

저도 말만 이렇게 하는 거죠(웃음). 밑에서 좋은 후배들이 올라오고 야구의 흐름도 변화해요. 상대 타자들은 제 공을 계속 분석하죠. 저도 계속 노력해야 살아남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 어려운 게 야구에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극복해야죠.

2007년 이후 11년 만의 가을 야구 진출 가능성이 점점 커집니다. 지난해 가을 ‘엠스플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유일한 목표가 팀의 가을 야구였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저에게 한화의 가을 야구는 정말 절실하면서 유일한 목표입니다. 물론 우리 팀은 더 발전해야 할 팀입니다. 지금 2위라고 해서 무조건 가을 야구에 가는 거라 생각 안 해요. 경기는 여전히 많이 남았습니다. 지금의 긍정적인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도록 선수단 모두가 다 노력해야죠.

가을 야구만 11년째 기다리는 한화 팬들에게 할 말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한화 팬들은 정말 최고입니다(웃음). 항상 선수들에게 큰 힘을 주는 존재니까요. 그런 팬들의 사랑에 보답해야 의미가 있습니다. 한화 팬들이 원하는 가을 야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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