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문가 무시해?" 배명진 교수는 왜 'PD수첩'에 화를 내나

하성태 2018. 5. 23.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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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의 사이드뷰] MBC < PD수첩 > 검증 요구 거부한 소리박사, 납득 안 가

[오마이뉴스 하성태 기자]

22일 방송된 <PD수첩>의 한 장면. ⓒMBC

"있잖아요. PD면 좀 유식해야 되잖아요. 모르면 물어 봐야지."

취재를 하러 간 PD를 무턱대고 닦달하고 타박하는 이 남자. 이른바 소리음향·소리공학 전문가다. 상식적인 검증을 요구하는 PD와 제작진의 카메라를 향해 부술 듯 달려드는 이 남자가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한 말은 이렇다.

"우리 소리공학연구소가 25년 됐어요. 그럼 전문가예요, 아니에요?"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연구를 준비 중이란다. 언론과 방송에 7000번 출연했다고 윽박지른다. 연구소를 25년 운영했단다. 그것이 자신의 권위를 입증하는 증거라고 한다. 그러나, 그 것만으로 '과학'의 이름을 빌려올 순 없을 것이다. 과학의 기본 전제는 '검증'이지 않은가. 그런데, 그 전문가가 데이터의 검증을 거부한다. 그 전문가의 이름이 '소리박사' 배명진이다.

22일 방송된 < PD수첩 > '목소리로 범인을 찾아 드립니다 - 소리박사 배명진의 진실'편이 추적한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배명진 교수는 참으로 희귀한 케이스였다. 언론과 방송 출연을 자신의 권위를 입증하는 무기로 내세우는 사람이 데이터를 검증하자는 방송 제작진의 요구에 폭력에 가까운 저항을 보인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다. 그에 앞서, < PD수첩 >이 제기한 의혹은 이랬다.

25년 전문가는 왜 데이터 검증 요구에 화를 내나

22일 방송된 <PD수첩>의 한 장면. ⓒMBC
'과학'과 '검증'을 거치지 않은 배 교수의 '의견'이 낳는 폐해가 너무 크다는 것이 < PD수첩 >이 제기한 의혹의 본질이다. 배 교수는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언론은 그를 십분 활용한다. 사실과 다를 경우 누구도 책임은 지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배 교수의 명성은 부풀려진다. < PD수첩 > 제작진이 예로 든 사례는 차고도 넘친다.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태 당시 온라인에서는 대전 터미널에서 막말을 쏟아내는 여성이 정유라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 TV조선 >은 이를 보도했고, 배명진 교수는 음성 그래프를 보여주며 '정유라와 그 영상 속 여성의 음성이 85%에서 90% 일치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런데, 대전터미널 관계자는 해프닝으로 끝난 사건이라며 "정유라씨랑 전혀 얼굴자체도 다르다"고 일축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배 교수는 2012년 군인 사망사건 용의자에 관해서도 의견을 낸다. SBS <궁금한 이야기 Y>에 출연한 배 교수는 군인의 시체를 발견하고 공중전화를 통해 최초로 신고한 이의 목소리와 그 군인을 생전에 질책했던 선임 군인의 목소리가 일치한다는 의견을 냈다. 단언 수준이었다.

유족들은 이를 철썩 같이 믿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두 달 후 경찰 조사를 통해 그 선임은 범인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애먼 관계자가 배 교수의 단언으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다. 심지어 다른 연쇄살인사건과 관련한 인터뷰에서 그는 "아무리 성대모사를 하고 아무리 변조를 하더라도 그 목소리 그 사람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밝혀낼 수 있습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러한 배 교수의 단언에 한 음성학자는 "분명히라는 말은 100%인데, 그런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잘 모른다고 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 PD수첩>은 이밖에도 "큰일났네"라는 문장으로 더 유명해진 최순실의 녹취록과 관련한 배 교수의 문제제기, 영화 <그 놈 목소리>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왔던 범인의 목소리를 두고 "26세에서 27세 목소리"라고 확인했던 배 교수의 의견 등 모두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과학과 검증의 문제

22일 방송된 <PD수첩>의 한 장면. ⓒMBC
과학을 다루는 전문가들이 정반대의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렇다면 납득할 만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이를 요구하는 < PD수첩 > 제작진을 향해 배 교수는 기밀이라느니, 노하우라느니 과학자로서 납득하기 힘든 주장으로 일관한다.

문제는 이러한 언론과 방송이 만들어낸 배 교수의 권위가 방송 프로그램의 '재미'와 '흥미' 요소를 넘어 기이한 방향으로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 PD수첩 >도 바로 이 점을 꼬집고 나섰다고 볼 수 있다.

성완종 녹취록 관련 재판이 대표적이다. 고 성완종 경남기업 대표의 녹취록을 두고 배 교수는 일정 대목에서 "목소리의 진실성" 운운하고, 이완구 전 총리는 "성완종의 말은 거짓"이라는 취지가 담긴 배 교수의 감정을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하기까지 했다. 물론 사례를 치르고 한 유료 감정서였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모두 신뢰성을 의심했다. 목소리를 통한 거짓말의 판별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의견이었다. 배 교수는 이에 그치지 않고 사례를 받고 의뢰인에 유리한 감정을 통해 돈을 벌고 있었다. 유명 아이돌 그룹 워너원의 욕설 파문 당시 팬들이 의뢰한 감정 역시 유사한 형태였다.

검증을 거부하면서도, 노벨상을 받을 연구를 하고 있다는 소리공학자는 이제 언론이 만든 '괴물'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황우석이 떠오른다

"이건 뭐지? 어디서 봤는데... 그러네. 데자뷰네. 황우석."

송일준 광주 MBC 사장은 < PD수첩 > 방송 직후 이런 감상평을 남겼다. 실로 그러하다. 과학이라는 이름 하에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전문가가 어떤 사기극을 벌일 수 있는지 우리는 이미 크나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면서 확인한 바 있다. 스스로에게 과학자라는 자의식이 있다면, 배 교수는 "노벨상"이나 "25년 경력" 운운하기 전에 어떤 형태의 검증이든 응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납득하기 힘든 배 교수의 '단언'들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아주 오랫동안 침묵했던 학계와 그에 편승해 자신들의 방송과 보도를 위해 배 교수의 그 '단언'들을 흥미 위주로 편집하고 내보냈던 언론과 방송들도 문제다.

그만큼 자신있다면, 배 교수는 지금에라도 신뢰할 만한, 업계와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상식 수준의 검증에 응하시라. 단순한 그래프와 단지 몇 퍼센트로 가늠되는 본인이 창조한 수치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응당 전문가가 취해야할 자세 아니겠는가. 배 교수 본인이 당당하다면 더더욱 말이다. < PD수첩>의 후속 취재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도 마찬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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