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만큼 썼다".."당신 같은 분 다신 없어"

김향미 기자 2018. 5. 23.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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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필립 로스 타계
ㆍ‘아버지의 유산’ 등 유작 30여권…미국인 신경증·집착 파헤쳐
ㆍ전미도서상·비평가상·펜포크너상 수상…매번 노벨상 거론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필립 로스(왼쪽)가 22일(현지시간) 8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사진은 2011년 3월2일 로스가 워싱턴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국가 인문학 훈장’을 받는 모습. 워싱턴 | AP연합뉴스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필립 로스가 22일(현지시간) 맨해튼의 한 병원에서 타계했다고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사인은 울혈성심부전인 것으로 전해졌다. 향년 85세.

1933년 미국 뉴저지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로스는 시카고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졸업 후 같은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쳤다. 1959년 유대인의 풍속을 묘사한 단편집 <굿바이, 콜럼버스>를 발표하고, 이듬해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로스는 데뷔 이후 약 30권의 소설을 집필했다. 전미도서상과 전미비평가협회상을 각각 두 번, 펜포크너상을 세 번 수상했다. 매번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다.

미국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은 1991년작 <아버지의 유산(Patrimony)>과 1998년 그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미국의 목가(American Pastoral)>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로스는 특히 <남자로서의 나의 삶>(1974), <유령작가>(1979), <주커먼 언바운드>(1981), <해부학 강의>(1983) 등에선 작가의 분신 격인 네이선 주커먼을 통해 자전적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자전적 이야기와 허구의 경계를 오가는 그만의 작품 스타일을 구축했다는 평이 나온다. 로스는 자신의 삶에 기반을 둔 작품을 썼지만 그의 작품은 미국 사회의 정치·사회적 질문으로 확장돼 읽혔다. 로스의 작품들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유대계 미국인의 신경증과 집착을 파헤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로스는 2010년 폴리오 유행병을 소재로 한 <네메시스(Nemesis)>를 마지막으로 돌연 절필을 선언했다. 그는 2012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했다”면서 “쓸 만큼 썼다”고 말했다. 로스는 2014년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도 “나는 끝에 도달했다. 나에게 더 이상 쓸 것이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다 지난해 1960년대부터 2013년까지 쓴 수필과 논픽션 단편을 <왜 쓰는가?(Why Write?)>라는 책으로 엮어냈다.

로스의 부음에 미국 작가들과 명사들은 애도의 뜻을 전했다. 미국 작가 게리 슈테인가르트는 트위터에 “로스와 같은 인물은 지금도, 앞으로도 없다”고 적었다. 영화감독 제임스 건은 트위터에 “필립 로스에게 배웠고, 거대한 영향을 받았다.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겼다”며 <카운터라이프>(1986)의 책 표지를 함께 올렸다.

<미국의 목가> <네메시스> 등 로스의 작품을 국내 번역한 정영목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는 최근 펴낸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문학동네)에서 로스 소설의 매력에 관해 “그의 소설이 진실을 파악하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로스는 “한 인간으로서, 작가로서, 유대인으로서, 미국인으로서의 (삶의) 의미를 탐구한”(뉴욕타임스) 작가였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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