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법무부 "낙태죄 폐지? 성교하되 책임 안지겠다는 것"

CBS노컷뉴스 윤지나 기자 2018. 5. 2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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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 요구를 '마약 합법화 '상황을 가정해 설명하기도
임신,출산으로 인한 여성의 신체·사회적 변화 고려하지 않아
법무부.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헌법소원의 공개변론(5월 24일)을 앞두고 법무부가 헌법재판소에 낸 의견이 위헌 주장 측을 '무책임하게 성교하고 책임지지 않는 여성'으로 설정하고 있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또 임신과 출산으로 여성이 겪게 되는 신체·사회적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있어 공개변론에서 적잖은 반론에 부딪힐 전망이다.

CBS노컷뉴스가 23일 입수한 법무부의 변론요지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관련 논란을 '생명권 vs 여성의 자기결정권'으로 전제하고, 여성을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 및 출산은 원하지 않는" 사람으로 폄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시각은 "통상 임신은 남녀 성교에 따라 이뤄지는 것으로, 강간 등의 사유를 제외한 자의에 의한 성교는 응당 임신에 대한 미필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라는 문장에서도 드러난다.

다시 말해 "임신과 출산은 여성에게 충분한 자유가 보장된 '성행위'에 의해 나타난 생물학적 결과"라는 논리이다.

법무부는 이에 대해 "통상적인 임신은 남녀의 성교에 따라 이뤄지는 것으로서, 강간 등의 사유를 제외한 자의에 의한 성교는 응당 임신에 대한 미필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므로 이에 따른 임신을 가리켜 원하지 않은 임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부연 설명하고 있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이와 관련해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은 후보 시절 "결국 태아의 생명권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바로 임신한 여성"이라며 "그런 여성이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낙태를 선택할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을 태아의 생명과 충돌하는 가치로만 볼 것이 아니다"라고 밝혀 법무부의 시각과는 확연한 온도차를 보였다.

심지어 법무부는 낙태죄 폐지 요구를 마약 합법화 상황을 가정해 설명하기도 했다.낙태죄 폐지론자들이 "법으로 임신 중절을 금지하는 경우 임부의 사망률이 증가하므로 여성의 건강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에 대해 법무부는 "네덜란드처럼 대마를 합법화하지 않으면 더 중독성이 강한 화학 물질로 이뤄진 마약에 수요가 몰려 결국 인간의 생명과 신체에 더 위해한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는 주장"이라고 말한 것이다.

법무부는 또 임신과 출산, 나아가 양육이 여성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해 최소한의 현실도 인지하지 못하는 듯한 입장을 변론서에 담았다.

법무부는 일단 임신을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변화"라고 설명하면서 이 기간 여성의 신체가 어떤 부담을 지는지는 물론, 출산 이후까지 일터에서 어떤 조건에 놓이게 되는지에 침묵하고 있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사회에서 여성이 겪게 되는 차별은 "낙태죄에 따른 별개의 간접효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장기의 위치가 변하고 척추가 앞쪽으로 휘게 되는 등의 신체 변화는 차치하더라도, 한국의 모성사망도 2010년 기준 16명(10만명 당)에 이른다. 법무부 표현대로 출산이 '기적'처럼 아름다운 일만은 아닌 것이다.

여성이 피임부터 임신·출산·양육까지 대부분의 책임을 지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다보니, "여성의 평등권이 침해받고 있다"는 주장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고 이들의 주장을 '산술적 평등' 요구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논리적인 허점도 보인다. 임신과 출산이 '자연'스러운 것이라 이를 통제하는 '낙태죄' 역시 옳은 것이라는 논리라면,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국가적 규제나 개입 역시 모두 가능하다는 논리적 귀결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헌재는 24일 오후 2시 헌재 대심판정에서 의사 A씨가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사건의 공개변론을 연다.

현행 형법은 임신한 여성이 낙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한 의사의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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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윤지나 기자] jina13@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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