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벽돌, 감자 던져도 '애들'은 처벌 안받는다

이다비 기자 2018. 5. 23. 16:2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벽돌, 아령, 식칼이 떨어진다
100g 감자 한 알이라도 고층에서 떨어지면 ‘흉기’
“헬멧이라도 써야 하나” 시민들 불안
가해자가 만 14세 미만이면 책임 못 물어

“동네에서 다닐 때 헬멧이라도 써야 하나요.”
서울 성북구 아파트에 거주하는 대학생 최준호(28)씨는 요즘 잇따른 ‘흉기 추락’ 뉴스에 불안하다.
지난 19일 경기도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차량에서 내리던 최모(53)씨가 허공에서 떨어진 1.5㎏짜리 아령을 맞아 쇄골이 부러졌다. 지난 20일에는 충남 천안 불당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 길이 25cm가량의 칼이 인도에 떨어졌다.
“괜히 위를 보고 걷게 되고…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고 죽는 게 그런 경우 아닐까요.”

하늘에서 물건이 떨어진다. 얼린 육수, 감자, 머그컵, 킥보드, 소화기, 아령, 식칼, 벽돌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작년 10월 경기 의왕시 아파트 21층에서 어린이 3명이 지상 주차장 쪽으로 감자 한 알을 던져 주차장에 서 있던 BMW 승용차 지붕이 파손됐다.
2016년 1월 충북 청주시에서는 11세 초등학생 두 명이 15층 높이 아파트 옥상에서 ‘낙하실험’을 하겠다며 물컹한 물풍선을 던졌는데, 주차돼있던 제네시스 승용차 뒷유리가 산산조각 났다.

충남 천안서북경찰서는 지난 20일 오후 2시 50분쯤 천안시 서북구 불당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 길이 25cm가량의 칼이 인도에 떨어졌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충남지방경찰청 제공

◇아령·벽돌·감자 떨어지는 하늘… 머리에 맞으면 즉사
이런 물건들은 고층에서 추락하는 순간 흉기가 된다. 100g 감자 한 알이 지상에 닿을 때는 40㎏의 충격이 된다. 20층에서 떨어진 1.5㎏ 무게의 아령은 가속도가 붙어, 부딪히는 순간 500㎏에 달하는 힘이 붙는다. 머리에 맞는다면 즉사(卽死)할 정도의 충격이다.

지난 2015년 경기도 용인시 아파트 화단에서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던 ‘캣맘’이 벽돌을 맞고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경찰은 ‘증오범죄’를 의심했지만, 잡고 보니 18층짜리 아파트 옥상에서 9살 초등학생이 던진 것이었다. 초등학생은 “중력실험을 하려고 (벽돌을) 던졌다”고 진술했다.

벽돌·아령이 옥상에서 떨어지면 살인무기가 되는 이유는 ‘가속’ 때문이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는 “사람 두개골에 금이 갈 정도의 힘의 크기는 73N(뉴턴·힘의 단위)인데, 1.8㎏짜리 벽돌을 1층(3m)지붕에서만 던져도 힘의 크기가 132.8N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즉, 1층 이상 높이에서 떨어지는 벽돌을 맞으면 두개골에 금이 간다는 것이다.

이보다 무게가 다소 가벼운 아령도 마찬가지다. 천병구 한양대 물리학과 교수도 “1.5㎏ 무게의 아령은 20층에서 떨어지면 야구 투수의 구속에 준하는 시속 130km로 떨어져 원래 무게보다 330배 이상의 힘이 가해진다”며 “아령의 좁은 면적에 그만한 힘이 가해지는 셈이어서, 같은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에 부딪히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2016년 1월 충북 청주시 아파트 고층에서 초등학생들이 낙하실험을 한다며 물 풍선을 떨어뜨리면서 승용차 유리창이 박살 났다. /청주상당경찰서 제공

◇가해자가 ‘촉법소년’이면 책임 못 물어… 보상도 쉽지 않아
고층에서 물건을 던지는 범죄는 ‘살인’이나 ‘살인미수’가 적용될 정도의 중(重)범죄다. 문제는 ‘흉기 추락’ 사건의 가해자 대부분이 법 처벌이 불가능한 ‘촉법소년(觸法少年)’이라는 점이다. 촉법소년은 형법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소년을 뜻한다. 흉기를 떨어뜨린 가해자가 촉법소년이라면, 피해자 입장에선 억울하더라도 책임을 물을 수가 없는 것이다.

촉법소년은 형법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소년을 뜻한다./조선DB

유가족 보상은 받을 수 있을까. 법조계에 따르면 원칙적으로는 민사소송으로 촉법소년 보호자에게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사안에 따라서 100% 피해보상금을 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 촉법소년 보호자가 피해자의 과실을 물고 늘어지면서 재판을 길게 끄는 경우다.

“청소년이 가해자라면 보호자들은 ‘아이 전과가 생길 수 있다’는 위기감에 합의금을 마련하는 등 발 빠르게 나섭니다. 하지만 촉법소년은 형사처벌 우려가 없으므로 보호자가 굳이 ‘저(低)자세’로 나서지 않기도 합니다.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2심, 3심으로 끌고 가면서 보상금을 70~80%로 깎는 일도 있습니다.” 노영희 법무법인 천일 변호사 얘기다.

서울지역에서 근무하는 경찰 관계자도 “민법상 부모가 손해배상 책임을 온전히 지도록 하는 구조인데, 실제로는 가해자가 ‘화단으로 떨어진 건데, 피해자가 괜히 그쪽으로 갔다’는 식으로 따져 들면서 법원에서 ‘조정’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