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통일비용의 혹세무민](https://img.khan.co.kr/newsmaker/1273/1273_82.jpg)
한반도에 평화의 봄기운이 들기 시작하자, 벌써부터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통일비용이나 남북경협 비용으로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될 것이라는 우려들이다. 몇 년 전 금융위원회는 북한 개발에 500조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그리고 국회 예산정책처는 통일비용이 23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영국 어느 기관도 통일비용이 200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계산을 내놓았다. 일부에서는 이런 수치를 열거하며 남한이 엄청난 비용을 떠안게 될 것이라는 정치적 공격까지 하고 있다. 한마디로 혹세무민이다.
이런 모든 추정은 남한이 북한을 흡수통일하고 그 부담을 남한이 전적으로 떠맡는다는 가정 하에서 계산된 것이다. 우리 정부 기관이 내놓은 앞의 두 추정치는 박근혜 정부 시기 ‘통일대박론’에 편승하여 계산된 것인데, 오히려 흡수통일을 가정한 박근혜식 통일이 얼마나 현실성 없는 것인지 방증할 뿐이다. 영국 기관의 수치 역시 서독이 동독을 일시에 흡수한 독일식 통일을 가정했을 때의 추정치다. 모두 지금의 한반도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어쨌든 북한 개발을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할 텐데, 그 비용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대부분은 북한 스스로 마련해야 하고, 또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지속적인 성장은 불가능하다. 초기 대북지원은 식량이나 의료 등 인도적 지원에 맞춰질 것이다. 그리고 일부 핵심 산업시설과 인프라 개선을 위한 남한과 국제사회의 지원이 있을 것이다. 이를 발판으로 북한은 차츰 생산을 회복하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와 경제개혁에서 성과를 내면 미국 등 국제사회와 무역 및 투자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게 되고, 외국기업의 북한 투자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경제성장은 북한의 재정수입 증가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음 인프라 투자를 위한 재원이 될 것이다. 결국 첫걸음을 떼는 데는 남한과 국제사회가 지원을 하겠지만 그 이후는 북한의 몫이 될 것이다.
저개발국에서 성장과 개발은 단기간 내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점진적이며 단계적인 과정이다. 베트남이 ‘도이모이’를 시작해 지금 국민소득 2000달러까지 오는 데 30년이 걸렸다. 지금 베트남은 세계에서 인프라 투자가 가장 활발한 나라 중 하나이다. 교통·통신 등 인프라에 한 해 약 200억 달러가 투자되고 있다. 이 중 외부 원조로 조달되는 비중은 10% 남짓이며 90%는 국내 재원으로 조달된다. 원조도 대부분 무상지원이 아니다. 결국 개발에 필요한 비용 대부분은 내부에서 조달될 수밖에 없으며, 작은 비중의 외부 지원도 회수되는 대출이나 투자의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니 북한 개발비용을 터무니없이 부풀리고, 마치 우리가 다 부담해야 하는 것처럼 과장을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초기의 지원마저 주저한다면 그것은 평화와 더불어 경제적 기회마저 거부하겠다는 뜻이다. c
<박복영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