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경제]<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 주간경향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나는 네가 되고 싶어! ‘카니발리즘’

카니발리제이션이란 한 기업이 신상품을 출시하면서 기존 자사제품의 시장이 축소되는 ‘제살깎이’ 현상을 말한다.

벚꽃처럼 화려하게 만개했다가 단번에 사라지는 사랑. 일본 대중문화 속에는 유독 이런 사랑이 많다. 작품을 덮은 뒤 남는 잔상은 온통 분홍. 애절한 그 빛깔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츠키카와 쇼 감독의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도 딱 그런 영화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나면 천장 위로부터 벚꽃이 우수수 떨어질 것만 같다.

[영화속 경제]<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하루키(키타무라 타쿠미)는 타인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외톨이 소년이다. 어느날 병원에서 대기하다 ‘공병문고’라 쓰인 책을 줍는다. 같은 반 사쿠라(하마베 미나미 분)의 일기다. 밝고 활발해 학급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소녀다. 알고보니 사쿠라는 췌장에 병이 나 죽어가고 있다. 사쿠라는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소년과 나누고 싶어한다. 숫기 없는 소년은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점차 사쿠라에게 마음이 끌린다.

소녀는 당돌하다. “췌장을 먹고 싶어”. 소년이 어이없어 한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카니발리즘에 눈이 뜬 거야?” 소녀가 답한다. “옛날 사람들은 아픈 곳이 있으면 다른 동물의 그 부위를 먹는대. 그러면 병이 낫는다고 믿었대.”

카니발리즘(cannibalism)이란 사람이 사람을 먹는 습관을 말한다. 어원은 카리브족(Carib)에서 나왔다. 신대륙을 발견할 당시 카리브해 섬에 사는 카리브족이 사람을 먹는 식인종(cannibal)이라고 유럽에 알려졌다.

카니발리즘에서 파생된 경제용어가 있다. 카니발리제이션(cannibalization)이다. 한 기업이 신상품을 출시하면서 기존 자사 제품의 시장이 축소되는 ‘제살깎이’ 현상을 말한다. 우리말로는 ‘자기 잠식’ 또는 ‘자기 시장 잠식’으로 번역된다.

예컨대 다이어트 콜라를 출시하면 코카콜라의 판매량이 줄 수 있다. 음원을 출시하면 CD 시장이 위축된다. 이 때문에 시장지배적 사업자들은 시장의 판을 바꿀 수준의 신제품을 내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자율주행자동차와 전기차 개발을 기존 자동차 제조사가 아닌 정보통신(IT)업체인 구글과 신생기업인 테슬라가 주도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대세는 거스를 수 없다. 신제품 개발을 주저하다간 한순간에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수 있다. 휴대폰 세계 1위 업체였던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장에 늦게 진출했다가 새 시장의 주도권을 뺏기고 결국 퇴출됐다. 디지털카메라를 가장 먼저 개발했던 코닥도 필름 시장이 위축될 것을 우려해 투자를 기피했다가 결국 문을 닫았다.

온라인 판매가 늘어나면 오프라인 가게가 어려워지는 ‘온라인 카니발리제이션’도 있다. 롯데홈쇼핑과 롯데닷컴의 매출이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할수록 롯데백화점의 매출이 줄어드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췌장암은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를 앗아간 난치병이다. 사쿠라는 ‘좋은 친구 사이’인 하루키에게 제안한다. “내가 죽으면 내 췌장을 (네가) 먹게 해줄게. 누가 먹어주면 영혼이 그 사람 안에서 계속 살 수 있대.” 실제 식인종들은 인육을 배가 고플 때 먹기도 했지만 병을 고치기 위해, 복수를 하기 위해, 죽은 자와 하나가 되기 위해 먹기도 했다.

하루키는 독백으로 답한다. “나는 네가 되고 싶어. 나는 사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사쿠라도 도서관에 숨겨놓은 편지에 속마음을 남긴다. “나는 하루키가 되고 싶어. 나도 역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완성될 수 없는 사랑 앞에 놓인 두 사람의 흔치 않은 사랑 고백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영화속 경제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