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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산적한 고조선사, 각론보다 총론 연구 필요"

송고시간2018-05-2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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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형동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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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우리 민족사에서 첫 장을 연 고조선(古朝鮮)은 중국 동북부에서 한반도까지 세를 떨친 국가다.

하지만 우리가 고조선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실은 많지 않다. 학계에서도 고조선사는 문헌 사료와 고고학 유물이 부족해 연구가 미진했다.

그나마 중국 정부가 자국 영토 안에서 일어난 사건을 모두 중국사로 편입하려 한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펼치면서 고조선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한국고고학회는 지난해 처음으로 고조선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북아역사재단 한중관계연구소는 2000년 이후 한국, 중국, 일본에서 이뤄진 고조선사 연구를 정리하고, 쟁점과 과제를 점검한 신간 '고조선사 연구동향'을 펴냈다.

서울시립대에서 고조선 교역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박선미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책에 실은 글 '고조선사 연구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과제'에서 "고조선이 언제 등장했는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언제 국가로 성장했는지, 수도는 어디였는지, 강역은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해 우리 학계는 이렇다 할 해답을 명확히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박 연구위원의 지적은 우리가 고조선의 실체를 거의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조선은 1392년 태조 이성계가 건국했고, 수도를 한성으로 삼아 도성과 궁궐을 지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박 연구위원은 고조선 등장 시기만 하더라도 역사서에 기반을 둔 역사학과 유물을 중시하는 고고학 사이에 간극이 크다고 설명한다.

역사학자들은 유향(劉向)이 기원전 1세기에 편집한 '관자'를 토대로 빨라야 기원전 7세기를 고조선 등장 시기로 보지만, 고고학자들은 비파형동검문화를 근거로 기원전 10세기에 고조선이 정치체로 성장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기원전 30세기 초에 단군조선이 성립했다는 북한 학계 견해를 더하면 고조선 등장 시기는 더욱 불확실해진다.

고조선 중심지가 어디였는가도 주된 쟁점이다. 중국 요동설과 평양설이 대립하고, 요동에서 평양으로 옮겼다는 이동설도 존재한다.

아울러 고조선이 연, 한과 각각 경계를 이뤘다는 만번한(滿番汗), 패수(浿水, 沛水) 위치도 규명되지 않았다. 관련 기록이 단편적인 데다 후대에 작성한 주석에 당대의 독특한 인식이 담겼기 때문이다.

박 연구위원은 이처럼 다양한 고조선사 쟁점을 서술한 뒤 고조선 정체성 탐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는 "그동안 주제별 각론에 집중하다 보니 고조선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전 시대를 아우르는 기본 뼈대를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며 "중국 동북 지방에서 한반도를 아우르는 고고학 자료와 고조선·예·맥 등을 포괄해 이해할 수 있는 담론을 위한 토대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어 "외국과 학술교류를 통해 고조선 관련 유적과 유물을 직접 관찰하고, 기록이 드문 정치체에 대한 학문적 성과를 축적한 유럽과 공동 연구를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책에는 이외에도 한국, 북한, 중국, 일본 고조선 연구에 대한 논문이 담겼다. 박준형 해군사관학교 교수, 오대양 단국대 연구교수, 조법종 우석대 교수, 이양수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이 필자로 참여했다.

236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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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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