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와 숲을 사랑한 巨木, 한 그루 나무 곁에 잠들다

전수용 기자 2018. 5. 2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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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 LG 회장 타계 (1945~2018)]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서 발인
具회장, 1997년 상록재단 세워 화장·수목장 문화 확산에 앞장
모친인 故하정임 여사도 화장

숲과 새와 나무를 사랑했던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생전에 아끼던 나무 아래 묻힌다.

LG그룹에 따르면 지난 20일 별세한 구 회장의 발인식이 22일 오전 8시 30분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다. 이후 고인의 유해는 화장(火葬)된 뒤 수목장(樹木葬)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장지(葬地)는 경기도 곤지암 인근지역이다. 수목장은 화장된 골분(骨粉)을 지정된 나무뿌리 주위에 뿌리거나 별도의 단지에 넣어 묻는 장례 방식이다. 비석 등 인공 구조물 없이, 유해를 묻는 나무에 식별만 남기는 방식이어서 자연환경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다. 1990년대 말 스위스에서 처음 시작했고, 국내에선 김장수 고려대 명예교수가 2004년 "죽어서 나무로 돌아가겠다"면서 50년생 굴참나무 아래에 묻히면서 수목장이 주목받은 바 있다. LG는 "고인의 뜻에 따라 장례식은 최대한 간소하게 진행될 것"이라며 "가족장인 만큼 장지 등 세부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러스트 이철원

구 회장 장례가 수목장으로 치러지는 건 1990년대부터 우리나라 장묘문화를 바꾸려 노력해 온 고인의 뜻에 따른 것이다. 고인은 평소 주변에 "매장 위주의 장묘문화로 전 국토가 산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의 땅으로 변질하고 있다. 전국 명당이라는 곳마다 산소가 만들어져 안타깝다"고 했다. 매장 중심의 우리나라 장묘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게 고인의 지론이었다. 구 회장은 과거 가족의 장례를 수목장으로 치르려 한 적이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수목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없었고, 관련 법규조차 없던 시절이어서 수목장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구 회장이 1997년 LG상록재단을 설립한 것도 자연보호·연구와 함께 장묘문화 개선 목적도 있었다. 상록재단은 1998년부터 한국 장묘문화 개혁을 목표로 내세운 단체를 지원하고, 각종 사업이나 캠페인을 후원해왔다. 구 회장은 이때 고건 국무총리 등과 함께 사후 화장 서약도 했다. 상록재단은 화장 문화 확산을 위해 '자연 속에 고인을 추모하는 공원을 짓자'는 취지로 추모공원 조성도 추진했지만 지역 주민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다.

고인의 부친인 구자경 LG 명예회장 역시 "땅도 모자라는데 다 화장해야 한다"면서 경기도 이천 LG인화원 뒤편에 가족 납골당을 조성했다. 2008년 아내 하정임 여사가 별세하자 화장해 이곳에 안치했다.

국내에서 대기업 총수 장례가 수목장으로 치러지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앞으로 장묘문화 개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98년 별세한 최종현 SK그룹 회장이 화장을 유언으로 남기고, 유족이 이를 받아들여 화장하면서 사회적으로 화제가 됐었다. 이 일을 계기로 1998년 27%이던 화장률이 이듬해 30%로 늘었고, 이후 급증하면서 지금은 80%를 훨씬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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