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상재 선생, '위기의 조선 구하기' 美외교전 기록 나왔다

2018. 5. 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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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선(大朝鮮) 개국(開國) 496년.'

문서의 시작마다 청의 연호가 아닌 조선의 독자적인 개국 연호가 꼬박꼬박 적혀 있다.

이 문서를 검토한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외교관으로서 파악해야 할 현지의 기본 정보들을 세밀하게 적어 놓은 외교문서"라며 "월남 선생을 비롯한 당시 초대 주미 공사관원들이 치열하게 펼친 외교활동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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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주미 외교관으로 쓴 '미국공사왕복수록' 첫 공개

[동아일보]

22일 113년 만에 재개관하는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월남의 4대 종손 이상구 씨가 이곳에서 태극기를 게양한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대조선(大朝鮮) 개국(開國) 496년.’

문서의 시작마다 청의 연호가 아닌 조선의 독자적인 개국 연호가 꼬박꼬박 적혀 있다. 문서가 작성된 것은 1888년. 임오군란(1882년)이 발발한 후 청나라의 내정간섭이 극심한 때였다. 그러나 당시 주미 조선공사관의 초대 2등 서기관으로 활동했던 월남(月南) 이상재(1850∼1927·사진)가 쓴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私往復隨錄)’에는 자주 독립 국가를 꿈꾼 외교관의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최근 월남이 공사관 재직 시절 직접 작성한 ‘미국공사왕복수록’의 존재가 확인됐다. 월남의 4대 종손인 이상구 씨(73)가 소장해 오다 본보에 공개한 것. 서울 중구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16일 만난 이 씨는 “집안의 소중한 가보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외교역사를 보여주는 문서”라고 말했다.

월남은 구한말 YMCA를 이끌고 일제강점기 국내 최대 항일민족단체인 신간회 등을 조직한 대표적인 애국지사다. 1881년 신사유람단의 단원으로 일본을 둘러본 뒤 개화사상을 적극 알린 인물이기도 하다. 1887년 7월 초대 주미공사인 박정양과 함께 공사관원으로 임명된 후 1888년 1월 1일 미국에 도착해 외교관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미국공사왕복수록’은 월남이 1888년 1년간 미국에서 외교활동을 펼치며 작성한 각종 공문서 및 외교편람에 해당한다.

월남 이상재의 4대 종손 이상구 씨가 1888년 월남이 초대 주미 공사관 서기관 때 작성한 외교문서 ‘미국공사왕복수록’을 공개했다. 이 문서는 주미 공사관의 공식 인장과 ‘대조선흠차주미공사관’이라고 적힌 판심(版心·책장이 접힌 가운데 부분)이 선명해 가치가 높은 사료로 평가받는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이 문서가 더욱 뜻깊은 것은 월남이 활동했던 주미 공사관에 113년 만인 22일 다시 태극기가 게양되기 때문이다. 22일은 미국과의 첫 외교관계 수립일인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136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1.5km 거리에 있는 대한제국공사관 청사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강탈당하면서 강제로 문을 닫아야 했다. 이후 한일 강제병합 직후인 1910년 이 건물은 단돈 5달러에 일제에 빼앗겼다. 2012년 문화재청이 350만 달러(당시 약 40억 원)를 주고 매입해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 역사적인 장소에서 초대 외교관 월남의 종손인 이 씨가 직접 태극기를 내건다. 이 씨는 “당시 주미공사관 사진에도 태극기를 당당하게 건 모습이 또렷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미국공사왕복수록’에는 미국 정부에 아그레망(상대국의 동의)을 요청한다는 내용부터 미국 정부와의 교섭 일지 등 일상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 ‘法部長官 아톤이 젠느랄(Attorney General)’, ‘外部長官 씨크래터리 오브 씨테이테(Secretary of State)’처럼 미 행정부의 주요 인사 명단을 국한문 혼용으로 기록해 놓았고, 재미교포들의 연락처와 명함들 역시 꼼꼼하게 다뤘다. 이 문서를 검토한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외교관으로서 파악해야 할 현지의 기본 정보들을 세밀하게 적어 놓은 외교문서”라며 “월남 선생을 비롯한 당시 초대 주미 공사관원들이 치열하게 펼친 외교활동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이 씨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극동정유(현대오일뱅크)에서 30여 년간 회사원으로 근무했다. 이후 12년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봉사단원으로 중국과 베트남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 씨는 “교육과 외교 활동을 강조한 월남 선생의 뜻 덕분인지 해외에서 한국과 관련된 교육 활동을 계속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시는 대한제국공사관 청사에 태극기가 내려올 일이 없도록 후손들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참혹했던 시기에도 청년들의 당당한 꿈과 희망을 강조한 월남 선생의 가르침이 계속해서 이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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