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팩트체크] '버스 용변사건' 교사는 정말 최선을 다했나, 법원판결문 뜯어보니

박현익 기자 입력 2018.05.21. 14:24 수정 2018.05.2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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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교사 할 몫 해” “부모가 더 문제”
법원 “수치심에 울던 학생 홀로 방치해”
법조계 “책임은 전적으로 교사가, 처벌 당연”

“장염을 앓던 것을 알면서도 보낸 부모에게도 책임이 있는거 아니냐.”
“돌발 상황에서 교사가 어디까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초등학생을 버스에서 용변을 보게 한 뒤 홀로 내려놓고 떠난 교사에게 800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그러자 지난 1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사건과 관련해 “학부모 처벌과 재판장 징계를 요구한다”는 청원 글이 올라왔다. 21일 오후 12시 현재 이 청원은 4만8000여명이 동의해 최다 추천 목록 상위에 올랐다.

청원을 올린 네티즌은 “교사가 학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배려하였고 함부로 방치한 것이 아님에도 부모가 고소했다”면서 “앞뒤 정황도 살피지 않고 무거운 형량을 내린 판사를 징계하라”고 적었다. 각종 커뮤니티나 SNS 등 온라인에서도 “용변까지 받아 준 교사에게 너무 가혹하다” “교사가 휴게소 직원에게 맡기고 갔는데 왜 아동학대냐” “부모가 전화로 고성까지 지르는데 어떻게 안 내릴 수 있겠냐” 등 교사를 두둔하는 글이 잇따랐다.

일반인들의 ‘법감정’으로는 장염 걸린 아이를 야외학습에 보낸 보호자도 문제가 있는데, 교사만 강한 처벌을 받은 게 형평성에 어긋나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원은 왜 이런 판결을 내린 것일까.

◇法 “교사, 도움 필요한 아이 방치했다”
법원이 인정한 사실관계는 이렇다.
작년 5월 10일 대구 모 초등학교 남모(55) 교사는 담임을 맡고 있던 6학년 학생들과 버스를 타고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현장체험학습을 가고 있었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10여분 앞둔 지점에서 A양이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교사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비닐을 깔고 A양이 스스로 볼 일을 보도록 했다. 다른 친구들이 다같이 있는 공간이었다. 용변을 다 본 뒤에는 A양에게 뒷처리도 하라고 했다. 당시 버스는 갓길에 세울 수 없는 형편이었다. 9분 뒤 휴게소에 도착했고 A양은 휴게소 화장실에서 울면서 나오지 않았다. 몇 몇 남학생들은 “냄새난다”며 놀려 댔다.

교사는 A양 어머니로부터 “이 상태로 현장체험 학습을 갈 수 있겠느냐, 데리러 가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남 교사는 A양을 달래고 다그치고해서 결국 버스에 태웠다. “안 가면 다른 애들이 더 이상하게 볼 거다, 가야 된다”고 했다.

겨우 A양을 버스에 태우고 출발하자 A양의 어머니로부터 재차 전화가 걸려왔다. “애가 천안까지 안 가려고 한다. 원하는 대로 해달라. 휴게소까지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버스는 30~40m를 움직인 상황이었다. 교사는 A양에게 “내릴 거야, 말 거야, 다른 애들이 너 때문에 피해를 보잖아”라고 말했다. 결국 A양이 홀로 버스에서 내렸다. 이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수사기관은 교사의 행동이 아동복지법상 유기·방임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재판에 넘겼다. 1심 법원은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끼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성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휴게소 보호소 등 안정한 장소에 데려다 주거나 믿을 수 있는 성인에게 보호를 부탁하는 등 기본적인 보호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며 남 교사에게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

/조선DB

◇법조계 “원래는 징역형이 맞는다”
한 중견 변호사는 “부모에게 다시 자녀를 돌려보내기 전까지 교사가 아이를 방치한 게 확실하다면 처벌받는 게 당연하다. 교사가 학생을 유기·방임하는 것은 큰 죄”라고 말했다.

아동복지법은 아동에 대한 성적·신체적·정서적 학대 등을 금지하면서 보호·감독 대상인 아동(18세 미만)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양육·치료 및 교육을 소홀히 하는 방임행위를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고 있다. 형법상 유기죄(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보다 무겁게 처벌된다.

또 다른 변호사는 “단순히 학교·병원에 제대로 보내지 않았다거나, 굶기거나, 혹은 내다버리는 행위보다는 더 넓게 보호범위를 따지는 게 아동복지법의 취지”라고 했다. 판사들이 형량을 정할 때 참고하는 대법원 양형기준은 아동복지법을 위반해 유기죄 등을 저지르면 기본적으로 징역 6개월~1년 6개월을 권고하고 있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도 “언론보도 등으로 사건 내용을 처음 접하고서는 상식적으로 교사가 애를 괴롭히려고 두고 갔겠나, 전체 학생을 기다리게 할 수도 없는 노릇아닌가 생각했다”면서 “피해 경위나 당시 아동이 처한 상황을 곰곰이 따져보니 유죄 판결이 맞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