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核전문가들, '검증절차' 빠진 北풍계리 폐기 방식에 '우려'

송고시간2018-05-21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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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실험금지기구 검증 반드시", "폭발보단 콘크리트로 막아야" 지적도

中 핵개발 원로 "시간벌기 위한 계략일 뿐" 평가절하 하기도

폐쇄 발표된 北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발표된 北 풍계리 핵실험장

(워싱턴 AP=연합뉴스) 북한 전문매체 38노스가 지난 3월말 에어버스 디펜스 & 스페이스 인공위성 사진을 근거로 분석해 제공한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모습.
ymarshal@yna.co.kr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 북한이 예고 대로 23∼25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진행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린 가운데 국제사회에서는 풍계리 핵실험장이 실제 폐쇄된다면 북한 핵문제 해결의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낳고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북핵 전문가들은 객관적인 검증 절차가 누락된 이번 폐쇄 방식에 아쉬움과 함께 우려를 나타냈다.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 고문인 타리크 라우프는 21일 비영리 핵 정보 사이트인 '애토믹 리포터스'에 기고한 글에서 핵실험장 폐쇄를 효과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기관인 CTBTO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라우프는 "일반적 믿음과 달리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핵무기와 핵실험장 폐기 분야가 아니라 민간 핵 프로그램의 모니터링과 검증을 위한 전문가들만 보유하고 있다"며 "IAEA가 핵무기 개발의 '상류'(upstream) 영역을 모니터한다면 CTBTO는 어떤 나라의 핵 개발 의도와 관련한 최종적인 증거인 '하류'(downstream)을 모니터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CTBTO가 북한의 핵실험장 폐쇄를 지켜보고 확인할 국제 전문가들로 구성된 유능한 팀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며 "중국, 일본, 러시아, 한국, 미국 등 북한 비핵화 관련 당사국들은 반드시 북한이 CTBTO의 모니터링팀을 풍계리에 초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BBC는 북한이 기자 외에 외부 전문가들을 초청했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고 전하면서 CTBTO 관계자들이 초청된다면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추가 핵실험이 더는 불가능한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스트리아 빈에 본부를 둔 CTBTO는 평화적 목적의 실험까지 포함한 모든 형태의 핵실험을 금지하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가 1996년 유엔총회에서 결의됨에 따라 후속 검증 작업을 맡기 위해 출범했다. CTBT는 183개국이 서명했지만 미국, 중국, 이란, 이스라엘, 이집트 5개국에서는 아직 비준이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은 서명국이 아니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리사 콜린스 연구원도 영국 일간 텔레그레프에 "만약 그들이 진정으로 폐기하고자 한다면 이것은 첫 번째 단계가 될 것"이라면서도 "그런데 왜 그들은 무기 사찰 전문가를 초대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콜린스 연구원은 일부 기자들만 '폐기 의식'에 초청한 것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 포기를 위한 증거를 외부 세계에 제공하기보다는 단지 '쇼'를 보여주려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는 핵실험장 갱도 폭발 조치가 비핵화 과정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띠는 것은 아니라는 회의 섞인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중국의 원로 핵물리학자인 웨이스제(魏世杰·77)는 "그들(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제작에 필요한 핵심 물질과 기술을 은폐했다"며 "이것(핵실험장 폐쇄)은 북한이 시간을 벌기 위한 계략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웨이스제는 1964년부터 1990년까지 중국의 핵무기 개발에 참여해온 과학자다. 퇴직 후 대중 강연과 저술 등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이곳(풍계리 핵실험장)은 이미 매우 낡고 소용없어진 곳"이라며 "(핵실험장 폐쇄를 위한) 폭발이 이미 연약해진 (지반) 구조의 붕괴를 촉진해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고 생명이 위험하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싱가포르 난양공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등이 참여한 국제 공동 연구진은 지난 11일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한 논문에서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6차례나 핵실험이 이어지면서 넓은 구역에서 지반 붕괴 현상이 일어나 풍계리 핵실험장의 가치가 예전과 같지 않아졌을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서균열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도 방콕포스트에 "날려버리는 방식은 가장 이상적인 방식은 아니다"라며 "덜 드라마틱할 수는 있겠지만 폭발보다는 갱도를 콘크리트, 모래, 자갈 등으로 봉해버리는 것이 최선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의 핵·비확산 전문가인 톰 플랜트는 "북한 핵실험장 폐기는 아주 무의미한 것도 아니겠지만, 매우 의미 있는 것 역시 아닐 것"이라며 "북한이 원하기만 한다면 다른 곳에 쉽게 (핵실험장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핵실험장 폐쇄가 '불가역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는 "북한은 핵 프로그램의 필수적인 요소를 유지하는 가운데 덜 중요하거나 쉽게 대체 가능한 것들을 갖고 미국 및 동맹들과 경제 또는 안보 분야의 양보와 맞바꾸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은 오는 23∼25일 갱도 폭파 방식으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겠다면서 중국·러시아·미국·영국·한국 기자들의 현지 취재를 허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전문가와 기자를 핵실험장 폐쇄 행사에 초청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북한은 이후 전문가를 빼고 기자만 명시적으로 초청한 상태다.

북한이 지난 16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내세워 북미 정상회담 재고 가능성을 언급하고, 한미 군사훈련 등을 구실로 남북관계를 급랭시키면서 국제사회에서는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행사를 예정대로 진행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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