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던 부영의 급정거..회사에 무슨 일이?

이진혁 기자 입력 2018. 5. 21. 09:35 수정 2018. 5. 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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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사업이란 사실상 단 하나의 업종으로 재계 서열 16위까지 오른 부영그룹. 얼마 전까지 서울 수도권의 덩치 큰 빌딩과 부동산을 잇따라 사들일 정도로 남부러울 유동성을 자랑했던 부영이 흔들리고 있다.

회삿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하고 세금을 탈루한 혐의 등을 받는 이중근(왼쪽에서 세번째) 부영그룹 회장이 올해 초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으로 출석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이중근 부영 회장이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으면서 회사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캐시 카우(cash cow·현금 창출원) 역할을 톡톡히 하던 임대사업은 부진에 빠졌다.

신규사업으로 추진하는 레저·관광사업도 삐걱대며 부영그룹의 고속 성장이 한풀 꺾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회사 설립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은 셈이다.

◇이중근 회장 부재, 그룹 경영에 치명타

부영그룹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는 달리 그동안 재계에서 잘 언급되지 않던 기업이었다. 소비재를 주력으로 파는 것도 아닌 데다, 임대주택을 지어 공급하는 회사라 미디어에 광고나 홍보를 많이 하는 회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앙 한 쌍이 상징인 ‘사랑으로’ 브랜드가 가끔 소비자들에게 언급되는 정도였다.

조용했던 회사가 시끄러워진 건 지난해부터. 경기도 화성 동탄2신도시에 지은 아파트에서 대량의 하자가 발생하면서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지난해 8월 특별점검과 선분양 제한 등의 대책을 꺼내 들었다. 국토교통부는 부영주택의 12개 단지를 특별점검했고 올해 2월 벌점 9점과 3개월 영업정지 처분도 내렸다.

국회도 거들고 나섰다. 자유한국당 김성원 대표 발의로 건축법 등을 위반해 하자가 발생했을 때 입주민에게 피해액의 최대 3배까지 보상하는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이 제출됐다. 이른바 ‘부영법’이다.

이중근 회장도 ‘불똥’을 피할 수 없었다. 2016년 국세청으로부터 시작된 이 회장의 혐의를 검찰이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결국 4300억원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대상 횡령·배임, 조세포탈, 공정거래법 위반, 입찰 방해, 임대주택법 위반 등 12개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실제 공사비보다 높은 국토부 고시 표준 건축비를 기준으로 분양 전환가를 매겼다는 혐의다.

부영은 회사 규모에 어울리지 않는 수직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있다. 쉽게 말해 이 회장이 조직의 사소한 부분까지 의사결정을 대부분 좌우한다. 소규모 시행사의 경우 이런 사례가 많지만, 이 정도 규모의 회사에선 매우 특이한 경우다. 부영 지분의 93.79%를 이중근 회장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다 보니 이 회장이 구속기소되면서 회사도 방향을 잃었다. 지난해 대형 오피스를 연달아 사들이며 자금력을 과시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지난해 12월 공급했던 광주전남혁신도시 사랑으로 부영 이후 아파트 분양도 멈췄다. 결국 부영그룹은 18일 신명호 아시아개발은행(ADB) 전 부총재를 직무대행 회장으로 선임해 급한 불 끄기에 나섰다.

◇6년 만에 적자, 부실 시공사 낙인에 임대주택 사업 전망도 불투명

부영을 현재의 위치로 이끈 임대주택 사업도 부진에 빠졌다. 부영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부영주택은 지난해 1555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2011년 이후 6년 만에 낸 적자다. 매출액은 2016년 1조5596억원에서 지난해 8981억원으로 반 토막이 났다. 2016년 1조4454억원에 이르던 분양수익이 작년 7730억원으로 감소한 게 영향을 미쳤다. 이 탓에 지주사격인 부영도 2300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2004년 이후 13년 만의 적자다.

남경필(왼쪽에서 두 번째) 경기도지사가 지난해 7월 경기도 화성시 동탄2신도시 ‘동탄 애듀밸리 사랑으로 부영’ 건설 현장에서 시공 하자를 점검하고 있다. /경기도청 제공

부영주택은 임대 의무 기간이 끝난 주택을 분양전환하면서 이익을 거둬왔다. 하지만 지난해 이런 주택이 많이 없어 해당 수익이 줄었다는 게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분양전환 주택은 2016년 9500가구에서 지난해 380가구로 크게 줄었다. 이는 지난해 초 샀던 옛 삼성화재 을지로 사옥을 1년여 만에 되파는 배경이 됐다.

부영 관계자는 “지난해 분양 물량이 없었던 것이 실적 악화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며 “앞으로 임대주택 전망이 불투명한 걸 감안해 선제 조치로 삼성화재 을지로 사옥을 매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사업 측면에서 보자면 임대주택업 전망이 썩 어두운 것은 아니다. 정부가 앞으로 5년간 100만가구의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을 정도로, 임대주택 건설은 이번 정권의 핵심 부동산 정책 중 하나다.

하지만 부영은 해당 사항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부영은 주택도시기금 지원과 공공택지 우선 배정 등에 힘입어 성장했는데, 부실 시공사로 낙인이 찍힌 이상 앞으로 기금 지원 등에서 배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사업에 참여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부실 벌점이 쌓인 업체에 주택도시기금과 선분양을 제한하는 ‘부영방지법’까지 기다리고 있어서다.

류종하 한국신용평가 수석애널리스트는 올해 2월 낸 보고서를 통해 “건설기술진흥법상의 부실벌점제도 등을 활용해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미달하는 사업주체에 대해서는 선분양을 제한하고, 기준 미달 주체의 주택도시기금 출자나 융자를 제한받는 주택법과 주택도시기금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됐다”며 “부영의 사업 경쟁력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신규 사업도 ‘불안’

설상가상으로 부영이 추진하던 신규 사업도 제동이 걸렸다. 부영은 레저·관광 사업을 신사업으로 밀고 있다. 하지만 7200억원을 들여 인천 연수구 동춘동 일원에 조성하는 송도 테마파크(49만9575㎡)가 최근 인천시와 갈등을 겪으며 지연되고 있다. 인천시가 실시계획 인가 효력 정지를 발표한 것이다. 부영이 더는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는 말이다.

레저·관광사업은 현금 창출력이 큰 사업이다. 무엇보다 개발사업을 통해 대규모 시설을 조성하고, 이를 관리·유지해 이익을 벌어들이며, 인근 땅값을 높여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임대주택사업과도 성격이 비슷하다. 업계도 부영의 레저·관광사업 진출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정작 시작 단계부터 삐걱대면서 첫 단추를 잘 끼우지 못한 셈이 됐다.

또 다른 신규 사업인 오피스 임대 역시 난관에 봉착했다. 부영은 2016년부터 삼성생명 태평로 본관과 삼성화재 을지로 사옥, 송도국제도시 포스코건설 사옥 등을 차례로 사들이며 오피스 임대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들 오피스 건물 모두 공실률이 40%대에 달할 정도로 좀처럼 임차인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안정적인 사업을 벌이면서 순항하던 부영이 이 회장의 구속기소로 창사 이후 최대 위기에 빠졌다”며 “신사업인 오피스 임대와 레저 사업이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하며 제2의 주택임대사업이 될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했겠지만, 시장 침체와 인·허가 이슈 등으로 오히려 회사 위험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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