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트 11회] MB 정부의 쿠르드 사업, 누군가의 목숨까지 앗아가다

고은상 2018. 5. 21. 08:3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취재기자] 고은상 기자 gotostorm@mbc.co.kr

◀김의성▶ 하베스트도 마찬가지 아니었습니까? 사실상 우물이나 다름없는 곳에 4조 5천억 원을 쏟아 부었는데요, 참 이상합니다. 어떻게 이명박 정부 아래의 석유공사 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고은상 ▶ 네, 이명박 정부 시절 자원 외교에 쓴 돈만 수십조 원, 천문학적인 돈이 투자됐습니다. 그런데 돈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정권 차원에서 밀어붙이는 무리한 사업에 성과는커녕 문제만 계속 발생했고, 이에 압박을 받은 실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VCR]

2011년 6월 3일 석유공사 배모 과장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배 과장은 이라크 쿠르드 유전개발 사업 담당자였습니다. 숨진 당일은 쿠르드 측과 추가 협상을 벌이기 위해 이라크로 출장을 가기로 했던 날. 배 과장은 출장 대신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사랑했던 11살과 8살 두 아들과 아내를 두고 스스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석유공사 故 배모 과장 유가족▶ "아침이어서 예상을 못 했고. 잠깐 현관문 앞에 나갔다가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온 거 같았어요. 그래서 '나 조금만 더 누워 있다가 저기 한다'고 그래서,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그런 일을 벌였더라고요."

배 과장은 2009년 12월 중동 사업팀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바로 쿠르드 유전개발 담당 부서였습니다.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유전 탐사에서는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쿠르드 측은 SOC사업 자금 수천억 원을 빨리 내놓으라며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망 석 달전인 2011년 3월 바로 위 상사였던 담당 팀장이 공석이 되면서 쿠르드 협상에 대한 실무 책임이 배 과장에게로 넘어왔습니다.

◀유성규 노무사 (배 모 과장 사건 담당)▶ "동료들 진술서만 보면 (쿠르드 유전 개발) CBSA 계약건과 관련해서 '이러다가 구속될 것이다. 계약 때문에 미치겠네 계약 때문에 죽겠네' 이런 표현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료 직원들이 그 이유에 대해서 물어봤을 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못 하고 그냥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뭐 그런 일들도 있었고요."

숨진 배 과장이 남긴 4권의 업무 수첩에는 2010년부터 1년여 기간 동안 이라크 크루드 사업과 관련된 내용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꼼꼼히 기록돼 있습니다. 배 과장의 업무수첩 곳곳에는 유전 탐사 결과가 좋지 않다는 내용들이 등장합니다.

상가우 노스 광구 산출 실험 결과, 대부분 물이 산출 쿠르드 유전 탐사 자원량 참여 당시 65억 배럴 2009년 44억 배럴 2011년 10억 배럴 석유공사 경영위원회 현재 탐사광구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성이 너무 많아...

게다가 숨지기 20일 전부터는 감사원의 자료 제출 요구가 본격화됐습니다. 석유공사가 매장량을 부풀린 흔적과 엄청나게 쪼그라든 매장량, 점차 불리해져가는 계약 내용이 고스란히 담긴 자료들이었습니다. 만약 이 내용이 외부로 알려진다면 석유공사가 국민을 상대로 뻥튀기 발표를 했다는 단서가 드러날 수도 있는 예민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업무수첩에는 감사를 받을 때 감사원에 자료를 파일 째 주지 말라는 회사의 지시도 적혀 있었습니다. 사실상 은폐, 축소 지시를 받았다고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배 과장은 이렇게 부조리한 상황을 극단적으로 괴로워한 것으로 보입니다.

◀석유공사 故 배모 과장 유가족▶ "그냥 앉아 있다가. 소파에 앉아 있다가 뜬금없이 갑자기 그런 식으로 그냥 툭 한 마디 하더라고요. 감사원에다 확 일러버릴까?"

크루드 유전 사업은 사실상 이명박 인수위 인사가 개입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치적으로 과시됐습니다. 하지만 사업 진행은 석유공사가 모두 떠맡았고 그 뒤처리를 배 과장이 짊어지게 된 것입니다.

◀석유공사 故 배모 과장 유가족▶ "이게 정권이 바뀌면 분명히 문제가 될 텐데. 그 때 가서 그러면 그때는 임원들은 다 없을 거다. 그럼 결국은 그 밑에서 일했던 실무진만 처벌을 받든 할 거다. 그런 얘기는 했었어요."

심지어 근로복지공단도 배 과장의 죽음이 비록 자살이었지만, 업무에서 비롯된 극심한 중압감 때문이라며 산업재해로 인정했습니다.

◀석유공사 故 배모 과장 유가족▶ 평상시 아빠라면 우리를 두고 이런 선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그런 상황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줬어요. 위에서 압력이 내려온 일이었고. 그래서 그게 잘못된 걸 아빠는 끝까지 잘 해보려고 하다가"

세상을 등지기 약 1년 전, 당시 석유공사 강영원 사장의 발언을 적은 메모. 배 과장의 어깨를 짓눌렀을 한 줄의 문장이 무겁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이라크 사업을 강조하고 있음“

Copyright © MBC&iMBC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학습 포함)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