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요청에 학생 휴게소 맡겼는데.. 교사에 벌금형

유소연 기자 입력 2018. 5. 21. 03:05 수정 2018. 5. 2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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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기본적 보호조치 안했다"
교원 단체 "편파적 판결" 반발

"(버스를 타고) 현장학습을 가던 중 학생을 휴게소에 내리게 해 벌금을 받은 교사를 구제해달라"는 글이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장염에 걸린 채 현장체험학습을 가던 초등학교 6학년 학생(A양)이 용변을 급하게 호소하자 버스에서 용변을 보게 한 뒤 휴게소에 학생 혼자 남겨둔 채 다른 학생들을 이끌고 떠났다는 이유로 800만원 벌금을 선고받은 대구 모 초등학교 교사 B씨 사연이었다.

대구지법 형사 10단독 김부한 부장판사는 지난 18일 "A양의 보호자가 올 때까지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A양을 안전한 장소로 인도하거나 믿을 수 있는 성인에게 보호를 의뢰하는 등 기본적인 보호 조치를 전혀 하지 않고 방임했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아동복지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B씨는 향후 10년간 학교·학원·교습소 등 아동 관련 기관에서 일할 수 없게 된다.

대구교총에 따르면 A양은 지난해 5월 대구 한 초등학교에서 출발해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현장학습을 가던 중이었다. 이날 아침부터 배가 아팠던 A양은 휴게소를 10여분 남겨놓고 "화장실이 급하다"고 담임교사인 B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B씨는 운전기사에게 차를 갓길에 세워달라고 했지만 사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기사는 정차를 거부했다.

B씨는 학생들을 버스 앞쪽으로 모으고 뒷자리에 A양이 용변을 볼 공간을 마련해줬다. B씨의 연락을 받은 A양 어머니는 "아이를 휴게소에 내려두고 가면 데리러 가겠다. 지금 바로 출발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B씨는 휴게소에 내려 커피숍 직원에게 A양을 봐달라고 하고 다른 학생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떠났다. 당시 버스에는 B씨 외에 교과 담당 교사 한 명이 있었지만 휴게소에 남은 교사는 없었다. B씨는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수차례 A양과 A양 어머니에게 전화로 상황을 확인했다.

한 시간 정도 휴게소에 홀로 있던 A양은 데리러 온 어머니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렸다. A양 학부모는 학교 측과 교육청에 B씨를 아동학대로 민원을 넣었고, 학교 측은 B씨를 아동학대기관에 신고하고 직위해제했다. 이후 다른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탄원서를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제출해 "처분이 과하다"는 이유로 직위해제는 취소됐다.

이 판결에 대해 교원 단체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한국교총은 20일 "학부모에게만 초점을 맞춘 편파적 판결"이라며 "교사는 (용변을 마친) A양이 체험학습에 끝까지 가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했으나 학부모가 (휴게소에 내려달라고) 강력히 요청해 어쩔 수 없었다. 10년간 취업 제한하는 800만원 판결은 과도한 처사"라고 했다. 한국교총은 사건이 터졌을 때부터 B씨에게 법률 지원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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