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로드킬당하는 동물 수, 추정치보다 많다

김기범 기자 입력 2018. 5. 20.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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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 발표
ㆍ‘스캐빈저’ 활동 고려해보면 실제 발생 수, 6배가량 많을 듯
ㆍ영국 로드킬 연간 천만 건 이상

최근 지리산을 벗어나 잦은 ‘외출’을 다니는 반달가슴곰 KM-53이 교통사고를 당한 사실이 알려졌다. 반달가슴곰 KM-53은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다수의 동물들은 교통사고를 당한 뒤 현장에서 또는 부상당한 몸으로 먹이를 찾지 못해 죽게 된다. 경북 울진에서는 역시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산양이 로드킬을 당하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고속도로나 국도는 물론 지방도 곳곳에는 로드킬당한 다양한 동물들의 사체 흔적들이 남아있다. 인간이 닦은 도로로 인해 서식지가 쪼개지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세계적으로는 멸종위기종이지만 국내에선 개체 수가 많다는 이유로 찬밥 신세인 고라니의 경우 연간 6만마리가량, 길고양이는 약 10만마리가 로드킬로 생명을 잃는다는 추정도 있다. 한국도로공사, 국립생물자원관 등의 공식 통계에선 한 해 1만~2만마리 정도가 확인되고 있는데 이는 극히 일부 도로에서만 집계된 것이다.

실제 로드킬당하는 동물의 수는 기존 추정보다 훨씬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으면서 생태계의 청소부 역할을 하는 ‘스캐빈저’들의 활발한 먹이활동으로 인해 로드킬당하는 동물의 수가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지난 14일 발표했다. 연구진은 영국 웨일스지역의 도시 카디프에서 무인카메라를 설치해 스캐빈저들을 관찰한 결과 로드킬당하는 동물의 수는 과학자들의 기존 추정보다 6배가량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카디프의 주거지역 6곳과 공원 지역 6곳에 닭머리를 미끼로 놓은 뒤 무인카메라를 설치하고 스캐빈저들의 출몰을 관찰했다. 관찰된 스캐빈저는 까마귀, 까치, 고양이, 개, 갈매기, 여우 등이었다. 여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국내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동물들이다. 관찰 결과 생태계 청소부로서 가장 많이 활약하는 것은 까마귀류였다. 사체 120개 중 까마귀가 처리한 비율은 42%를 차지했다. 설치류들도 사체를 노리고 나타났지만 사체 전체를 처리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관찰됐다.

연구진이 기존 로드킬 추정에 대해 과소평가됐다고 판단한 근거는 스캐빈저들이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나 사체를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연구진이 관찰한 사체 중 76%에 달하는 90개가 12시간 안에 스캐빈저들에 의해 땅 위에서 사라졌다. 특히 대다수의 사체가 낮에는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처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오전 9시에 카메라 앞에 미끼로 설치된 사체는 62%가 2시간 안에 사라졌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기존에 과학자들이 관찰해 집계하고, 추정했던 로드킬 발생건수보다 실제 발생건수는 6배가량 많을 것으로 추정했다. 영국의 경우 한 해 수백만건의 로드킬이 발생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6배라면 1000만건이 넘는 셈이다.

국내의 경우 매년 봄 산란을 위해 이동하는 두꺼비, 개구리 등 양서류가 도로에서 떼죽음을 당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에서도 로드킬 발생건수가 1000만건이 넘어갈 수도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양서류는 크기가 작다보니 운전자들도 로드킬을 했는지조차 모른 채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로에 남아있는 두꺼비와 개구리의 사체 흔적만이 이들의 죽음을 알릴 뿐이다. 이 같은 희생을 줄이기 위해 경남양서류네트워크와 두꺼비친구들 등의 단체는 2016년부터 양서류 로드킬에 대해 알리는 공공현수막 걸기 운동도 벌이고 있다.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또 스캐빈저들 가운데 포유류보다는 조류가 더 활발히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조류는 모두 51건의 사체를 처리했고, 포유류는 28건을 처리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을 이끈 에이미 윌리엄스 슈워츠는 “스캐빈저들의 로드킬 동물 사체 처리는 기존에 로드킬 발생 건수를 과소평가하게 했던 가장 큰 원인”이라며 특히 작은 산새나 설치류 등은 로드킬을 당해도 관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이번 연구는 스캐빈저들의 출몰 빈도와 사체 처리 속도를 보여줌으로써 로드킬당하는 동물의 수가 예상보다 많다는 점을 알려준다”며 “동시에 도시의 스캐빈저들이 인간이 사는 도시에서 많은 수의 동물 사체를 처리하지만 사람들로부터 인정은 받지 못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도 시사한다”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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