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노역에 강제결혼, 땅값 폭탄까지..서산개척단 비화

박진주 입력 2018. 5. 20. 20:31 수정 2018. 5. 20. 21: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뉴스데스크] ◀ 앵커 ▶

1960년대 초반 박정희 정부가 충남 서산 일대의 갯벌을 대규모 농지로 개간하는 '서산개척단 사업'이라는 것을 벌였습니다.

젊은이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했고, 숨진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곳에서 살아남아 지금까지 농사를 짓는 노인들에게 정부가 보상을 해주는 게 아니라 매년 수백만 원의 땅값을 청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박진주 기자가 이들의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 리포트 ▶

여의도 면적과 비슷한 264만 제곱미터의 비옥한 땅.

1961년 당시 박정희 정부가 5.16 군사정변 직후, 간척사업을 벌여 바다가 농지로 바뀌었습니다.

"불쌍한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고 있는데…"

부랑자와 성매매 여성들의 재활사업이라 했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당시 스무 살이었던 정영철 씨는 하숙집에 머물다 총을 든 군인에게 끌려왔다고 말합니다.

[정영철(77세)/서산개척단 피해자] "너희들은 인간재생공장에 왔다고. 물속에 처넣고 사회에서 묵은 때 다 벗겨라."

퇴근길에 이유없이 붙잡혀오기도 하고, 돈을 벌게 해준다는 말에 속아 온 사람도 있습니다.

가족과의 연락도 금지된 채 사실상 감금됐습니다.

[문영달(71세)/서산개척단 피해자] "통행금지 걸려서 경찰서 말고 여기에 끌려온 거지. 혹시라도 (가족한테) 편지가 오면 간부들이 다 보고 없애고…"

전국에서 1천7백여 명이 모였습니다.

대부분 스무 살 전후였던 이들은 폐염전에 갇혀 강제노역과 구타, 성폭력에 시달렸습니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합동결혼식을 강요당했는데, 그 수가 삼백 쌍이 넘습니다.

[정화자(71세)/서산개척단 피해자] "결혼을 시키는데 마음에 드는 사람과 결혼을 시키는 게 아니라 너는 너하고, 너는 너하고 이렇게 시켰어… 여기 있는 사람들 다들…"

5년간의 강제노역이 끝난 뒤 일부는 농사를 짓기 위해 남았습니다.

토지를 무상 배분해 준다며 증명서까지 발급해 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13년부터 정부는 오히려 이들이 땅을 무단점유하고 있으니 땅값을 분할납부하라고 매년 수백만 원의 청구서를 보내고 있습니다.

[문영달(71세)/서산개척단 피해자] "20년 상환으로 땅 돈을 갚으라고 하면 우리 시대에는 그 돈 못 갚지. 우리가 20년 더 살겠어요."

마을에는 굶주림과 폭력으로 숨진, 이름조차 모르는 2백여 명이 묻혀있습니다.

청춘을 빼앗긴 이들에게 국가는 보상은커녕 또 다른 짐을 지어주고 있습니다.

MBC뉴스 박진주입니다.

박진주 기자

[저작권자(c) MBC (www.imnews.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Copyright © MBC&iMBC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학습 포함)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