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뇌물을 선물로 바꿔준 대법원의 '진경준 구하기'

2018. 5. 2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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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진경준 '넥슨 공짜 주식' 무죄 판결

[한겨레]

‘넥슨 주식 특혜 매입’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아온 진경준 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2016년 7월1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특임검사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돼 기자들을 헤치고 나아가려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친구 김정주 엔엑스씨(NXC) 대표로부터 제공받은 넥슨 주식의 129억원 시세 차익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진경준(51) 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사건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대한항공 횡령 사건을 봐주고 처남 명의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도록 한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지만 넥슨 주식과 현금, 고급 승용차의 뇌물죄 여부에 대해서는 법원이 무죄 취지로 판단했다. 이대로 판결이 확정되면 시세차익 129억원은 고스란히 진경준의 몫이 된다.

기획통으로 승승장구 진경준에
김정주, 넥슨 비상장주식 제공
주식 살 돈 4억원도 보내줘
장모·누나 계좌 동원해 ‘물타기’

“하와이 가족여행 1천만원 보내라”
제네시스 승용차도 무상 제공
“직무관련성 없으니 뇌물 아니야”
법원 면죄부에 129억 진경준 품으로

“ㄴ변호사랑 나랑 둘이 밥을 먹으면 누가 밥값을 내야 하겠습니까? ㄴ변호사가 밥값을 내면 김 기자는 기사로 문제 삼을 거요?”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검찰 간부급 ㄱ검사가 넌지시 물어왔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도 없던 시절이었다. ㄴ변호사는 그 며칠 전 부장검사 옷을 벗고 한 대형 로펌에 영입된 터였다. ㄴ변호사는 ㄱ검사의 대학 후배로 학창 시절부터 둘도 없이 가깝게 지내온데다, 임관 후에도 ㄱ검사와 여러 특수 사건을 함께 수사해 가족 같은 사이다. 답을 망설이다 “같은 변호사가 될 때까지 만나지 마시라”고 농담을 건네자 ㄱ검사는 고민 끝에 “그래도 내가 사는 게 맞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진경준(51) 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하 직책 생략)도 서울대 재학 시절부터 친한 친구가 한명 있었다. 바로 김정주(50) 엔엑스씨(NXC) 대표다. 사시와 행시에 잇따라 합격한 엘리트 진경준은 1995년 초임을 서울중앙지검에서 출발했다. 그는 뛰어난 기획업무 능력으로 윗사람 눈에 들면서 기획통으로 승승장구했다. 진경준이 검사 신분을 단 1995년, 김정주 역시 넥슨을 설립했다. 그는 ‘바람의 나라’ 등 온라인 게임 출시로 게임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검사와 기업인의 위험한 경계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흐릿해졌다. 김정주는 진경준이 지방에 근무할 때도 1년에 수차례 찾아가 만났다. 진경준에게 ㄱ검사처럼 밥 한끼 값을 놓고도 고민하는 모습은 없었다.

대학 졸업 후 20년 넘게 이어온 이들의 은밀한 거래는 2016년 3월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때 진경준 재산이 외부에 알려진 뒤 결국 법적 심판대에 올랐다. 진경준이 공짜 넥슨 주식을 받고 129억원의 시세 차익을 얻은 사실이 들통난 것이다. 논란의 핵심은 진경준과 김정주의 돈거래를 ‘친한 친구 사이 선물로 볼 것이냐, 공직자와 기업인 사이 뇌물로 볼 것이냐’였다. 1심은 ‘뇌물이 아니다’, 2심은 ‘뇌물이 맞다’고 판단했다. 선물과 뇌물의 줄타기는 지난해 12월 1심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 판결에 따라 ‘선물’로 법적 성격이 규정됐다. 대법원 파기환송에 따라 사건을 다시 판단한 서울고법은 지난 11일 “대법원 판단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결론내렸다.

형사재판은 합리적 의심을 넘어서는 엄격한 증명을 요구한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상고심에서 “(뇌물공여자의) 추상적이고 막연한 기대감만으로는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말로 판결에 의미를 부여했다. 반면 법조계 안팎에선 “판검사들에게 합법적 뇌물수수의 새로운 길을 터줬다”는 조롱 섞인 비판이 나왔다.

뇌물죄의 구성요건은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다. ‘뇌물죄’가 성립하느냐를 놓고는 심급마다 재판부 판단이 엇갈렸지만,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진경준과 김정주의 범죄사실은 그대로다. 진경준이 ‘친구’라는 지렛대로 기업인 김정주에게 기대 100억원대 재산을 형성한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진경준 뇌물 사건을 둘러싸고 형성된 법률 전문가 판사와 상식에 기댄 일반인의 괴리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슨넥’으로 돈 보낸 김정주

진경준은 김정주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는 무죄를 받았지만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횡령 사건을 내사 종결한 뒤 자신의 처남 명의로 차린 용역회사에 대한항공 일감을 몰아줘 147억원을 챙긴 혐의(제3자 뇌물수수)는 유죄를 받았다.

진경준은 2009년 8월부터 2010년 8월까지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 부장으로 근무했다. 금조부는 전국의 기업, 금융, 조세, 증권 범죄를 전담하는 부서다. 검찰의 한 부장검사는 “금조부는 기획통인 진경준처럼 수사 경험은 없지만 단기간에 수사 경력을 쌓고 싶은 검사들이 선호한다. 피의자들도 돈깨나 있는 사람들이고 사건도 강력, 특수 사건보다 깔끔하니까 검사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판결문 등을 종합하면 진경준은 금조부장으로 근무하던 2009년 9월 조양호 회장의 횡령 사건을 내사하다가 2010년 5월 종결했다. 진경준은 종결 처분을 내린 지 11일 뒤 정아무개 변호사 소개로 서울 서초구 메리어트호텔 지하 일식당에서 대한항공 서아무개 수석부사장을 만났다. 진경준은 “내가 한진그룹 내사를 종결했다. 내 처남 강아무개씨가 대한항공 용역을 받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이후 강씨가 설립한 블루파인매니지먼트(이하 블루)는 2010년 9월부터 2016년 7월까지 대한항공으로부터 인천공항 청소용역 147억원어치를 수주했다. 블루는 사실상 진경준의 차명회사나 다름없었다. 블루 설립 자본금 1억원 중 7천만원은 진경준과 그의 부인 주머니에서 나왔다. 블루의 영업이익도 대부분 진경준이 챙겨갔다. 블루 감사로 등재된 진경준 장모 조아무개씨는 하루도 출근하지 않고 2010년 8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매월 230만~570만원씩 총 3억원을 월급으로 받아갔다. 장모 조씨 명의 계좌로 들어온 이 돈은 진경준의 부인 강아무개씨가 자녀들 학원비 등으로 썼다. 블루 법인카드 2장 역시 진경준과 그의 가족들이 사용했다.

김정주 엔엑스씨(NXC) 대표가 2016년 7월13일 오후 진경준 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주식 대박 의혹과 관련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특임검사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돼 검찰 청사로 들어서다 기자들의 질문에 입을 다문 채 손을 내젓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이렇게 용감하다 싶을 정도로 진경준이 공직을 ‘재산 형성의 수단’으로 인식하게 된 출발점은 어쩌면 친구 김정주일지도 모른다.

법무부 검찰국은 검찰 인사와 예산을 주무르는 곳이다. 검찰국에는 각 연수원 기수에서 선두권 주자만 간다는 자부심이 있다. 진경준은 2004년 10월부터 2007년 3월까지 검찰국에서 근무했다. 검찰국 출신의 한 검사장은 “한번은 인사 발표를 앞두고 짜놓은 인사안을 들고 산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선배, 후배 가리지 않고 전화가 오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일선 검찰청에 끼치는 검찰국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바로 그 검찰국에 진경준이 근무하던 2005년 5월 말 김정주는 향후 상장에 따른 막대한 이익이 예상되는 넥슨 주식 1만주를 사라고 진경준에게 제안한다. 다음달인 2005년 6월3일 진경준은 넥슨에서 4억2500만원을 무이자로 빌려 주식을 매수했다. 진경준은 이 돈을 김정주로부터 받아 갚기로 마음먹고 자신의 어머니 오아무개씨와 장모 조씨 명의 은행 계좌로 각각 2억2500만원, 2억원을 나눠 받았다. 김정주는 송금인을 ‘슨넥’으로 표기했다. 당시 김정주는 진경준 외 다른 친구 2명에게도 비상장 주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줬는데, 주식 매수 대금은 주지 않았다.

진경준은 김정주한테 받은 돈의 경로가 향후 탄로 나지 않도록 송금 내역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진경준은 어머니 오씨 명의 계좌로 받은 2억2500만원 중 1억9500만원은 오씨 명의 다른 계좌로 한번 더 옮긴 뒤 6500만원은 본인 계좌로 송금하도록 했고, 나머지 1억3천만원은 자신의 누나 명의 계좌를 거쳐 본인 계좌로 옮겼다. 넥슨홀딩스의 한국 증시 상장 대신 넥슨재팬의 일본 주식시장 상장 방침이 확정되던 2006년 10월 김정주는 진경준에게 ‘로또’를 터뜨릴 수 있는 거래를 제안한다. 2005년 10월 넥슨은 지주사인 넥슨홀딩스와 넥슨코리아로 분할된 뒤 넥슨코리아는 다시 넥슨홀딩스 자회사인 일본 소재 넥슨재팬으로 매각됐다. 김정주는 진경준에게 넥슨홀딩스 주식을 반납하면 일본 상장 예정인 넥슨재팬 주식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진경준은 1주당 10만원에 보유 중이던 넥슨홀딩스 주식 1만주를 매각해 10억원을 받았고, 2006년 11월 매각대금 10억원 중 8억5천여만원으로 넥슨재팬의 신주 8537주를 취득했다. 진경준은 2015년 넥슨재팬 주식을 팔아 129억8천여만원을 챙겼다. 10원 한푼 안 들이고 10년 만에 100억원대 자산가가 된 것이다. 그는 그해 검사장으로 승진해 재산 공개 의무가 발생하면서 2016년 이 사실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공짜 국외여행, 공짜 제네시스…

진경준이 김정주한테 넥슨 주식 매수 대금 4억2500만원을 받은 지 19일 만인 2005년 11월22일 진경준은 3박4일 일정으로 중국 여행을 떠났다. 이후 진경준은 가족을 데리고 2014년 말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중국과 미국, 영국, 일본, 싱가포르, 홍콩 등을 여행했다. 여기에 소요된 총경비 5천여만원도 김정주가 대줬다. 가족과 6박7일 일정으로 미국 하와이를 다녀온 뒤 “여행 경비를 많이 썼으니 천만원을 보내주면 좋겠다”고 요구하는 식이었다.

진경준은 여행 경비를 김정주한테 받은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진경준은 김정주한테 여행 경비로 받은 돈을 김정주의 친구 박아무개씨 명의 계좌에 입금해 김정주한테 되돌려준 것처럼 꾸몄다. 실제는 박씨가 자신 계좌의 돈을 현금으로 인출해 진경준에게 돌려줬다. 김정주한테 여행 경비를 갚은 외관을 갖추려고 한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2008년 1월 진경준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파견을 간다. 인수위 파견 검사는 해당 정권에서 승진 코스를 밟는데, 예상대로 진경준은 이명박 정부에서 승승장구했다. 검찰 안팎에선 이 대통령의 사위 이상주 변호사와의 친분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많았다. 진경준은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 초반 권재진 당시 민정수석으로부터 ‘처신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받기도 했다. 검찰의 한 부장검사는 “2011년 9월 인사에서 한상대 당시 검찰총장은 진경준을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으로 쓰려 했지만 당시 권재진 법무부 장관이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진경준은 결국 상대적으로 중량감이 덜한 미래기획단장으로 밀려났다”고 말했다.

실제 진경준은 이명박 정부 인수위 파견 근무 무렵부터 몰래 김정주한테서 제네시스 승용차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1년여간 이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차량 리스료만 모두 1950만원에 이른다. 진경준은 2009년 3월에는 아예 제네시스 승용차 명의를 처남 강씨로 바꿔 본인이 사용하기로 하고 명의 이전에 필요한 비용 3천만원도 김정주로부터 받았다.

김정주는 비상장 주식을 살 수 있는 기회와 그 비용, 고급 승용차, 여행 경비 등을 어떤 마음으로 진경준에게 건넨 것일까. 순수한 우정 때문이었을까. 김정주는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에서 일관되게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주식 매수 대금 지급과 제네시스 차량 제공은 나와 넥슨의 형사사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 경비 부담도 검사인 진경준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검사는 힘이 있다. 검사여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사건이 있을 때 알아봐줄 수도 있기 때문에 진경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검사여서 제공했다

금품 공여자인 김정주조차 개인적 이익을 위해 검사 진경준의 직무에 관해 대가를 지급한 사실을 시인했음에도 대법원은 왜 진경준과 김정주의 금전 거래를 뇌물이 아닌 선물로 판단한 걸까. 대법원은 진경준이 김정주로부터 이익을 챙긴 시기에 김정주와 넥슨이 수사를 받은 사건(총 23건)은 사안이 경미했고, 진경준이 관련 사건을 직접 처리할 권한도 없었으며, 김정주의 청탁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는 1심 법원이 ‘진경준과 김정주는 친한 사이를 넘어 서로 지음(친한 친구) 관계에 있다’고 밝힌 무죄 논리와 맥락을 같이한다.

검찰의 한 부장검사는 “진경준이 차명계좌로 은폐해 돈을 받은 정황을 보면 김정주로부터 받은 경제적 이익이 검사 직무와 관련된 뇌물이라는 점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원이 직무 관련성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히면 뇌물사건은 얼마든 무죄를 쓸 수 있다. 사건마다 직무 범위의 잣대를 고무줄처럼 적용하는 것도 문제다. 뇌물죄의 취지는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해야 할 공무원이 돈으로 매수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법원이 직무 관련성을 좀 더 폭넓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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