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언제 제대로 놀아봤다고! 6·13에 나타난 '놀 자유'

2018. 5. 2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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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6·13 ― 여성과 청년, 생활정치를 바꾼다
② 이재헌 우리미래 청주시의원 예비후보

[한겨레]

독특한 선거운동 방식으로 자신을 알리고 있는 이재헌 우리미래 충북 청주시의원 예비후보. 이재헌 예비후보 제공

“일해야지, 정규직 돼야지, 결혼해야지…
그렇게 안 살아도 존중받아야 민주주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게 정치의 역할
미래는 청년의 것…사회변화도 청년이 직접
내가 필요한 걸 스스로 말하는 게 정치더라고요”

시종일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공약을 설명할 때도, 밟아온 이력을 이야기할 때도, 심지어 아팠던 날들을 말할 때도 이재헌(37) 예비후보는 밝게 웃었다.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정확히 알고, 그 일을 해내려고 최선을 다해본 사람의 단단한 웃음이었다.

청년정당 우리미래 소속인 그는 6·13 지방선거에 충북 청주시의원(가경동·강서1동) 예비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 슬로건은 ‘픽 미(Pick Me). 우리 언제 한 번 제대로 놀아봤나!’. 유권자들에게 나눠주는 명함엔 ‘위풍당당 청주백수’라고 새겼다. ‘빵빵한’ 이력 내세우며 동네 발전을 위해 불철주야 일하겠다 읍소해도 당선될까 말까인 선거에 “놀자”고 손 내미는 백수라니. 16일 가경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예비후보는 “놀고 싶으면 놀고 싶다고 얘기하는 게 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회 아닌가요?”라고 했다.

그의 말은 ‘장난’이 아니었다. “일상 속에서 제가 제일 설레는 순간은 낮잠 잘 때, 산책할 때예요. 소소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즐겁게 노는 게 행복한 거죠. 그런데 논다고 하면 사람들이 그래요, 일을 해야지 왜 노냐고. 정규직이 돼야지, 결혼해야지 그런 얘길 수도 없이 들었어요. 남들이랑 조금 다르게 살아도 존중받아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거죠. 이런 시선과 불편함을 저만 겪는 게 아니더라고요. 사회는 청년들에게 도전하라고 하지만 결국 실업률 낮으니 일해라, 출산율 낮으니 애 낳아라 이런 거잖아요. 청년들한테 뭐가 필요한지 묻기 전에,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거예요. 놀 수 있는 자유를 얘기하려면 (사회적 인식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도 당연해요. 정치가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고 비전을 보여줘야 놀 수 있으니까요.”

제대로 놀자고 도전장 낸 ‘청주 백수’
천문학 전공하고 숲 해설가, 트레킹 코스 조성
뇌성마비 극복…약자 이동권 보장 ‘거북이 버스’ 구상

이 예비후보가 청주에서 놀기 시작한 건 4년 전부터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경북 포항에서 중·고교를, 대구에서 대학을 다녔다. 대학에선 천문학을 전공했다. 선천성 뇌성마비라는 장애를 안고 태어난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사춘기, “신이라는 존재와 우주를 이해해보려고” 한 선택이었다. “우주가 어떻게 시작됐고, 별이 어떻게 생겨났고, 생명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공부하는 게 재밌어서 박사 과정까지 진학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이걸(천문학 공부를) 직업으로 삼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관련 연구원들)도 논문 찍어내는 ‘공장’이더라고요.” 그 길로 대학원을 그만두고 ‘호기심’이 발동하는 대로 움직였다. 그렇게 시민단체 간사, 숲 해설가, 게스트하우스 스태프, 트레킹 코스 조성 등을 경험했다. 그러다 마음이 머무른 데가 숲이었다. 장애를 극복하려고 등산을 한 뒤로 몸이 건강해지고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게 매력적이었다. 아픈 관절이, 맨발로 숲을 다니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졌고 피톤치드가 정말 면역력을 높여줄지 알고 싶었다. 그런 연구를 하는 데가 청주에 있는 충북대 대학원 산림치유협동과정이었다. 숲이 청주와 그의 연을 맺어준 셈이다.

지난해엔 산림청 산불재난특수진화대로 10달반 일하기도 했다. 공공근로인데, 산불을 끄는 일이라 강한 체력이 필요하고 체력장 시험도 통과해야 했다. “장애 극복이 제 인생의 동기였어요. 트레킹, 등산, 트리 클라이밍처럼 제가 제일 못할 것 같은 일에 도전하고 극한을 넘어서는 시도를 계속 하다 보니 거기까지 간 거죠. 그런데 힘든 체력장 시험에 붙고, 더 힘든 훈련을 받으면서 건강이 나빠졌어요. 그제야 제가 몸을 혹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장애를 극복했다는 짧은 희열은 느꼈을지언정, 늘 남과 비교하면서 나 자신을 아끼지 못하고 스스로 상처를 준 거예요. 그걸 깨닫고 나니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이제까지 살아온 것에 만족하고,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청주백수’로 자신을 소개하는 이재헌 예비후보는 “남들과 다르게 살아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재헌 예비후보 제공

이 예비후보는 청주에서 ‘정치’라는 또 다른 선물상자도 열었다. 2015년 가을, 법륜 스님과 방송인 김제동씨의 청춘콘서트를 보러 갔다가 청중들끼리 진행한 후속모임까지 참석했다. 지역 현안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호회 성격이었는데, 서로 의견이 달라도 반박하지 않고 경청하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거기 모인 사람들한테 관심과 애정이 생겼고, 결국 청춘콘서트 서포터즈를 중심으로 한 우리미래 창당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 “그 전까지는 정치에 별로 관심 없었어요. 내가 이야기해도 정치권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정치적 무능력감’도 컸고요. 그런데 모임에서 친구들과 같이 이야기하고 공부를 해 보니, 민주주의가 거창한 게 아니더라고요. 지금 내가 필요한 것을 내 스스로 말하는 게 기본이고 정치더라고요. 청년의 문제는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니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하자, 미래는 청년의 것이니 사회의 변화 방향을 청년이 직접 얘기하고 풀어가자는 게 우리미래예요. 이번에 출마하게 된 것도, 우리 동네 문제를 동네 친구들과 같이 이야기해서 풀어보겠다는 거고요.”

이 예비후보와 같은 생각을 하는 당원 8명이 모여 시의원 선거 캠프를 꾸렸다. 말이 캠프지, 아직 사무실도 마련하지 못했다. 그래도 머리를 맞대고, 피부로 느끼던 고민과 하고 싶은 일의 아이디어를 나누다보니 동네 문제를 풀 공약은 속이 꽉 찼다. 그가 제일 애착을 느끼는 건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할 ‘거북이 버스’다. 지방 중소도시다보니, 청주의 대중교통은 꽤 불편하다. 교통약자에겐 말할 것도 없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임산부, 어린이, 어르신 모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워요. 저상버스만 해도 실효성이 있으려면 정류장 턱의 높이, 버스기사의 보조 등이 같이 따라와야 하는데 안 그렇거든요. 그래서 ‘거북이 버스’를 생각했어요. 복지재단이나 장애인학교의 통학용 버스를 활용하는 거예요. 이 버스가 운행하지 않는 시간에 시에서 빌려서, 배차시간 부담을 줄이고 천천히 가도록 하면 어떨까요? 승하차가 불편한 사람은 기사님이 도와주고, 비장애인도 장애인과 같이 버스를 이용하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라떼파파 지원조례’는 “아빠와 아이 모두에게, 서로 같이 놀 자유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만든 공약이다. 육아휴직을 하는 아빠들에게 시가 매달 30만원씩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이 예비후보는 “이건 출산장려나 육아지원 정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육아 불평등을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지금은 누가 원해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으로 육아 책임이 한쪽에 몰려있잖아요. 라떼파파 지원조례는 그 구조를 바꿔보자는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이 예비후보의 다른 정책들도 ‘잘 놀기’를 뒷받침하는 것들이다. ‘청년둥지’는, 시세의 반값에 3년 이상 장기임대하는 조건으로 빈집 수리비를 시가 지원하는 현행 빈집정비조례를 청년 맞춤형으로 업그레이드한 정책이다. 임대하는 집의 30%를 청년에게 할당해 청년 주거문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학교 앞 카페 등 규모가 작아도 접근성이 높은 곳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청년 놀이터’, 청와대 국민청원을 본따 청주시 청년 300명이 동의한 제안에 시가 답하는 ‘청년 300’도 이 예비후보의 공약이다.

이재헌 예비후보는 “선거를 통해 연대한다는 것의 의미를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헌 예비후보 제공

남다른 슬로건만큼 선거운동도 재미있게 하고 있다. 후보 소개 동영상엔 트리 클라이밍하는 모습을 담았다. 동네 경로당으로 어르신들을 찾아가선 노래를 불렀다. 횡단보도나 버스정류장에선 닥치는 대로 명함을 나눠주는 대신, 30초 스피치를 한다. 유권자들의 반응이 뜨겁지는 않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내가 부족하다는 걸 느끼는 시간”이다. 그래도 보람은 있다. 경로당 어르신들은 처음엔 듣도 보도 못한 정당의 ‘새파란’ 후보에게 시큰둥했지만, 어설픈 실력에도 열심히 노래하는 모습에 박수를 쳐 줬다. 30초 스피치를 듣다가 고개를 끄덕이거나 악수를 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최근엔 충북뇌병변장애인인권센터 쪽이 그에게 만남을 청했다. 별 생각 없이 갔다가 뇌병변장애와 다른 장애의 차이, 그들이 원하는 정책, 간절한 마음을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안 보여서 답답하고 불편했지만,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회가 되면 그걸 다른 사람들한테 전달해주는 게 내 역할일 수 있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당선될까? 모른다. 이 예비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정치는 릴레이 같아요. 내가 갈 수 있는 만큼 가고, 내 친구들이 그 다음 길을 이어갈 거니까요. 이런 정치를 통해 나와 내 친구들의 다양한 삶이, 서로 다를지라도 사회에서 존중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또 이렇게 말했다. “선거에 나서면서 내가 바뀌었다는 걸 느껴요. 마음 가는대로 하면서 사는 편인데, 그렇게 자유롭고 싶다는 마음엔 책임지는 걸 두려워하고 회피하려는 마음도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선거라는 거, 정치라는 건 그런 게 아니잖아요. 누군가 마음을 내서 나를 도와주는 게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이 사람들과 함께 하나하나 해나가면서 희열을 느껴요. 혼자 있을 땐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내면서, 연대한다는 것의 의미를 배우고 있습니다.”

청주/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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