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에 1억' 쇼호스트 "신내림? 그분이 보일 정도는.."

김영주 2018. 5. 2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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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인플루언서 정윤정 인터뷰]
정윤정 카버코리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자신이 개발 단계부터 참여한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예전에 입 하나로 중소기업을 휘어잡은 한 여성이 있었지.’
홈쇼핑 쇼호스트로 1분에 1억원, 2시간에 100억원, 한 해에 3000억원 이상을 팔아치운 정윤정(42) 얘기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이어진 GS·롯데홈쇼핑 ‘정쇼(정윤정 쇼핑)’가 픽(Pick)한 화장품은 대박 행렬을 이어갔다. 1회 방송에 1만개 이상씩 판다고 해서 ‘만판녀’로 불리기도 했다.

정윤정은 K뷰티 업계의 강력한 인플루언서(유행을 전파하는 영향력 있는 개인)다. 그가 ‘앞으로 화장품은 항산화(抗酸化)’라고 하면 시중에 항산화 제품이 쫙 깔리고, ‘세럼(고농축 미용 영양 성분)이 뜬다’ 하면 시장은 그렇게 따라간다. 업계 일각에선 ‘신기(神氣)가 있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방송 중 코멘트가 실적으로 나타난 덕분이지만, 그가 연 18조원(취급액 기준) 시장으로 성장한 한국 홈쇼핑 트렌드를 이끈 주역 중 한 명인 건 분명하다. 외국 제품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독일·프랑스에 제품을 픽하러 가서 화장품 회사 대표에게 ‘3만 개 팔 수 있다’고 하면 믿지 않았지만, 이젠 한국 홈쇼핑은 미국·유럽 브랜드가 실시간으로 체크하는 채널이 됐다.

정윤정은 지난해 토종 화장품 브랜드 AHC로 유명한 카버코리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자리를 옮겼다. 2002년 입문 이후 줄곧 톱을 달리던 쇼호스트를 접고 제조업으로 옮긴 건 “뿌리를 키우기 위해”서다. 기성 제품을 팔기만 하는 세일즈가 아니라 기획부터 판매·유통까지 직접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직 후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내놓은 ‘365 레드 세럼’은 한 달 반 동안 15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실력을 증명했다.

그가 몸담은 카버코리아는 지난해 글로벌 기업 유니레버가 3조원에 인수해 화제가 됐다. 업계는 카버코리아 매각이 최근 로레알의 패션·뷰티 브랜드 스타일난다의 인수(4000억원)로 이어지는 K뷰티 상종가 랠리의 시작점으로 본다. 하지만 정 CD는 “지금 흥에 취해 있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사실상 밖에서 부는 K뷰티 열품의 진원지는 중국이다. 아마 금방 따라올 것”이라며 “중국이 카피할 수 없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서울 대흥동 카버코리아 2관 신제품 전략회의실에서 정윤정을 만났다.

Q : ‘신기가 있다’는 말이 있다
A : “결과적으로 많이 팔려서 생겨난 말이다. 홈쇼핑은 말 한마디, 제스처 하나에 초 단위로 주문량이 오르락내리락한다. 15년 동안 첫째·둘째 출산 휴가 6개월 빼고 줄곧 생방송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촉이 생겼다. 두 아이의 엄마로 살다 보니 시청자와 눈높이가 같아진 것도 도움이 됐다. 작년에 카버코리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옮긴 건 그 촉을 신제품 기획에 써보자는 생각에서였다. 가끔 점쟁이들을 만나보면 ‘맑은 물과 같아 어떤 게 내 안에 들어오든 선명하게 볼 수 있다’고 말하더라. 하지만 ‘그분이 보인다’ 정도는 아니다. ”

Q : 15년 동안 어느 정도 팔았나
A : “2011년에 1000억원을 넘겼고, 2013년에 2000억원 대, 최근엔 연간 3000억원 넘게 팔았다. 패션·뷰티를 비롯해 일 년에 수백 종류의 상품을 팔았으니 지금까지 방송한 제품만 수천 가지는 될 것 같다. 홈쇼핑은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지금은 한국이 전 세계 톱이다. 가장 치열한 시장이고, 가장 다이나믹한 유통 채널이다”

Q : 그간 가장 기억에 남는 제품을 하나 꼽자면
A : “LG전자의 트롬 스타일러다. ‘이런 제품이 있었으면 좋겠다 했는데 정말 나왔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없는 물건이라 방송하면서도 신이 났었다. 재작년이었는데 1시간에 60억 원어치 팔았다. 방송 후 부사장을 만난 적이 있는데 ‘홈쇼핑은 LG전자 매출의 1%도 안 되지만 유행을 선도하는 유통 채널’이라고 말하더라. 뿌듯했다.”

Q : 한국 화장품의 경쟁력을 어느 정도로 보나
A : “소싱하러 외국에 다녀 보니 한국 화장품이 왜 좋은지 알겠더라. 히스토리나 장인 정신 등 브랜드 파워만 미국·유럽에 뒤지지 나머지는 우리가 앞선다고 자부한다. 한국콜마 같은 한국 제조업은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특히 신제품 기획부터 판매·유통까지 발 빠른 프로세스는 세계 최고다.”

Q : 너도나도 화장품 업에 뛰어들고 있다
A : “요즘 패션업체에서 화장품을 하는 게 유행이더라. 지금 K뷰티 열풍은 중국서 불고 있는데, 금방 한국을 따라 할 것이다. 중국이 충분히 카피할 수 있는 화장품도 휴대폰처럼 오래 못 갈 것이다. 솔직히 중국 소비자는 잘 모른다. 나에겐 한국 소비자가 중요하다. 트롬 스타일러처럼 세상에 없는 화장품을 만들고 싶다. 최고의 프로세스와 전 세계에서 가장 스마트한 소비자를 가진 한국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Q : 한때 직접 판매한 제품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A : 미국 수입 화장품이었는데, 수입사가 착오를 일으켜 생긴 일이다. 아무래도 내가 홈쇼핑의 얼굴이니 그때 욕 많이 먹었다. 홈쇼핑은 멘트 하나에 매출이 왔다 갔다 하니까 늘 유혹에 빠진다. 이때 이후로 더 단단해졌다. 자극적인 멘트를 자제하고, 매출을 앞세우는 회사에 대해서도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Q : 수입은 얼마나 되나
A : “가장 최근까지 쇼호스트로 일한 롯데홈쇼핑에선 과장 직급이었는데, 대표보다 더 많이 받았다. 지금 연봉을 밝히기 어렵지만 10억원 이상이다. 홈쇼핑엔 수많은 쇼호스트가 있지만, 경쟁이 치열하다. 내가 여기서 잘하면 많은 후배에게 쇼호스트 말고도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을 것 같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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