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휴게소에 초등학생 두고 간 교사..발목잡는 '아동복지법'

조인경 입력 2018.05.19. 09:10 수정 2018.05.21.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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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초기 학부모·교육당국이 교사에게 책임 전가
"판결 잘못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2만3천명 서명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교사는 할 만큼 했다. 학생과 부모가 원하지 않았느냐?" "아이를 혼자 두고 간 자체가 이미 방임이고 학대다."

현장체험학습을 가던 중 용변이 급한 학생에게 버스에서 용변을 보게 하고 휴게소에 혼자 내려준 뒤 떠난 혐의로 기소된 초등학교 교사에게 법원이 벌금형을 선고했다. 교원단체들은 "체험학습 중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가 완벽하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교직을 떠나야 할 정도의 잘못인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대구의 A교사는 지난해 5월 독립기념관으로 현장체험학습을 가던 중 휴게소를 10여 분 앞둔 지점에서 학생이 복통을 호소하자 달리는 버스 안에서 비닐봉지에 용변을 보게 했다.

이후 A교사는 학생 부모에게 연락했고, 학생을 가까운 고속도로 휴게소에 내려주면 데리러 가겠다는 말을 듣고 학생을 휴게소에 혼자 내리게 했다. 이 학생은 부모가 도착할 때까지 1시간 가량 혼자 휴게소에 있었고, 학부모가 이를 문제 삼자 학교 측은 사건을 아동학대 관련기관에 신고했다.

A교사는 경찰 수사를 거쳐 약식기소 됐으나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대구지법은 18일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유기·방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교사에게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

현행 아동복지법은 아동학대 관련 범죄로 형이 확정되면 10년 동안 아동 관련기관을 운영하거나 관련기관에 취업 또는 노무를 제공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형이 확정되면 A교사는 더 이상 학교에서 근무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즉시 논평을 내고 "이번 사건의 경우를 '방임행위'로 보고 유죄를 선고한 판결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비난했다. A교사가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용변이 급해진 학생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애쓴 조치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전교조 측은 "안전을 고려해 고속도로 노변에 정차할 수 없다는 기사의 조언에 따라 버스 뒤의 자리에서 용변을 보도록 했고, 친구들이 이 학생을 놀리는 일이 없도록 다급한 상황을 이해시키는 교육도 했다. 휴게소에서 엄마를 기다리겠다는 학생의 주장을 듣고 보호자와도 연락했다. 초등 6학년이라면 부모가 도착할 때까지 휴게소에서 기다릴 수 있는 나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체험학습 전체 일정을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하는 상황도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고 사건 정황을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직 교사는 "체험학습을 위해 이동중이었던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교사는 그나마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며 "학부모가 문제를 제기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 교사가 상당히 억울하게 몰린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뉴스를 접한 네티즌들의 의견도 크게 엇갈린다. 한 SNS 이용자는 "부모와 전화 통화가 됐고, 아이가 원하는대로 휴게소에 있게 했는데 교사가 무엇을 어떻게 더 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초등생을 휴게소에 내려 놓으라고 한 학부모에 대한 처벌과, 못된 판결을 내린 판사에 대해 징계를 요구한다"는 청원이 올라와 하룻 밤새 2만3000명이 이상이 서명했다.

초등학생을 둔 한 학부모(서울 홍은동)는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게 보호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판결인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이런 일로 교직을 관두게 한다면 앞으로 교사들이 체험학습을 하지 않겠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로 지나치게 과도하게 적용되고 있는 현행 아동복지법을 지적한다. 지극히 경미한 사안에 대해서도 교사를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몰아 쟁송에 이르게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2015년에도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B씨가 뮤지컬 발표회 연습시간에 "줄 좀 똑바로 서라"며 한 학생의 소매를 잡고 흔들었다 학생의 부모로부터 폭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동료교사와 반 아이들이 폭행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B교사는 이듬해 50만원의 벌금형을 받은 뒤 아동복지법에 따라 결국 지난해 학교를 떠나야 했다. B교사는 아동복지법(제29조의3 제1항)이 헌법(제25조 공무담임권)을 침해한다는 취지의 헌법소원심판청구를 제기한 상태다.

이처럼 교사들의 생활지도와 훈육마저 아동학대로 몰릴 경우 교권 침해는 물론 정상적인 교육행위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송재혁 전교조 대변인은 "아동·청소년 인권이 척박한 우리 사회에서 아동복지법은 소중한 법이고 필요한 법이지만 악용 가능성을 차단하지 못하면 때로는 악법이 될 수도 있다"며 "이 경우 교사들은 직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고 우려했다.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도 "이번 대구 사건은 앞뒤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과한 판결"이라며 "교육 활동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규정이 되고 있는 아동복지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