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원안위, ‘라돈 침대’ 5년간 방치했다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8.05.17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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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안전위원회 ‘3톤 이상의 방사성물질’ 추적 실패…‘방사성물질 세탁’도 가능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이른바 ‘라돈 침대’를 5년 전부터 알고도 방치한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원안위는 2013년부터 3년 동안 약 3톤(2960kg)의 방사성물질이 침대 매트리스 생산업체로 흘러들어간 사실을 알았지만,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원안위가 관리·감독을 원칙대로 했다면 ‘라돈 침대’ 사고는 막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방사성물질 관리에 허점이 드러나면서 돈세탁처럼 ‘방사성물질 세탁’도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진침대 업체는 음이온이 건강에 좋을 것으로 생각하고 음이온을 방출하는 물질을 찾던 중 A수입업체로부터 모나자이트를 구입했다. 모나자이트에서는 음이온이 발생하지 않지만, 이 침대업체는 모나자이트를 음이온을 내뿜는 물질로 여기고 매트리스 내부와 커버 등에 뿌렸다. 이렇게 만들어진 침대 3만 개가 시중에 판매됐고, 최근 이 침대에서 라돈이 검출돼 사회적인 문제가 됐다. 

 

이 침대 매트리스에 사용된 모나자이트는 대부분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모래 또는 분말 형태로 생산된 천연 방사성 광물이다. 모나자이트에서 희토류 금속(네오디뮴)을 분리하는데, 이는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등 산업용으로 사용된다. 이 희토류 금속은 방사선을 방출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모나자이트를 사용할 일이 없어 수입을 거의 하지 않는다. 또 모나자이트를 수입해 희토류 금속을 분리하려면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고 폐기물도 많아서 경제성도 없다. 산업용으로 필요한 희토류 금속은 따로 수입해 사용한다. 

 

문제는 모나자이트에 함유된 토륨이다. 모나자이트에는 미량의 토륨이 들어 있는데, 이 성분에서 라돈이 검출된다. 토륨은 우라늄보다 매장량이 많고 원전 사고 위험도 낮기 때문에 차세대 원자력발전 연료로 부상하고 있는 물질이다. 이런 물질을 일반 소비자가 사용하는 생활용품에 사용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A수입업체는 2013년 7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약 3톤의 모나자이트를 대진침대 업체에 팔았다. 이 사실을 원안위는 알았다. 원안위 측은 “해당 수입업자가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매트리스 제조업체에 2013년 7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총 2960kg의 모나자이트를 판매했다”고 인정했다. 

 

연합뉴스=5월15일 광화문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엄재식 사무처장이 라돈 검출 침대 2차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천연 방사성물질 ‘모나자이트’, 66개 업체에 판매

 

방사성물질은 원안위가 관리·감독할 권한과 의무가 있다. 2013년 정부는 방사선 피폭이 없는 생활환경을 만들겠다며 ‘천연 방사성물질 취급자 등록제도’를 시행했다. 이 제도는 천연 방사성물질(모나자이트·인광석 등)을 취급하는 업체가 취급 물질의 종류와 수량 등을 원안위에 의무적으로 등록하게 만든 장치다. 한마디로 원자력발전소·연구소·병원 등에서 발생하는 인공 방사선뿐만 아니라 천연 방사성물질의 수입·유통·사용·폐기를 철저히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당시 원안위 측은 “(등록제도 시행으로) 천연 방사성물질의 유통경로를 상세히 파악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이 규정에 따라 A수입업체는 모나자이트를 대진침대 업체에 판매할 내용을 원안위에 신고했다. 상식적으로도 생활용품인 침대를 만드는 업체가 방사성물질을 사들일 이유가 없다. 그러나 원안위는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원안위 측은 “(수입업자가) 모나자이트를 판매하는 경우에는 핵원료물질 사용신고확인증 소지 여부를 확인하도록 안내해 왔다”며 “기타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조사 중이며, 관련 업체의 법령 위반 사항이 있을 경우 행정처분 등 후속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2013년부터 3년 동안 방사성물질이 생활용품에 사용된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런 제동을 걸지 않다가 최근 ‘라돈 침대’ 사고가 터지자 상황을 파악 중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원안위는 방사성물질이 생활용품 제조사로 간 사실 자체를 의심하고 조사했어야 옳다. 그랬다면 지금의 ‘라돈 침대’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 원안위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3톤의 방사성물질이 우리 주변에 무방비 상태로 뿌려진 셈”이라며 “따라서 이번 사고는 침대 생산업체 문제라기보다는 방사성물질을 관리·감독하지 못한 원안위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시사저널은 취재 과정에서 ‘방사성물질 세탁’이 가능한 정황도 확인했다. ‘돈세탁’처럼 방사성물질도 유통 과정을 통해 관리·감독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수입업체는 방사성물질을 국내로 들여온 후 66개 업체에 판매했다. 연간 1~4톤을 납품받은 업체도 있다. 만일 방사성물질을 소량씩 판매했다면 해당 업체는 원안위에 판매 사실을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 원안위 측은 “규정상 기준치 이하의 (방사성물질) 유통은 신고 의무가 없다”고 밝혔다. 

 

소량의 방사성물질 거래는 추적할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만일 소량의 방사성물질을 사들인 여러 업체가 한 특정 업체에 방사성물질을 몰아줄 수도 있다. 그래서 그 특정 업체가 수 톤의 방사성물질을 확보해도 정부는 알 수 없는 셈이다. 원안위 관계자는 “개별 구입량과 관계없이 총 모나자이트 양이 기준치를 넘을 경우 신고 의무가 있다”면서도 “규정에 허점이 있는 만큼 이번에 개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오락가락하는 원안위의 방사선량 발표

 

원안위는 사고 후 조사에서도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방사선량 검출 결과를 번복한 것이다. 5월10일 1차 조사 발표에서는 방사선량이 기준치 이하라고 했다가 5월15일 2차 발표에서는 기준치보다 많게는 9배 이상 뿜어져 나온다고 밝혔다. 

 

방사능 피폭량 연간 기준치인 1mSv(밀리시버트)를 초과한 침대는 모두 7종으로 조사됐다. 원안위는 해당 모델에 대한 수거 명령을 내렸다. 엄재식 원안위 사무처장은 “당시에 발표할 때는 사실 속 커버뿐만이 아니라 그 스펀지에도 이런 모나자이트가 활용됐다는 사실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송구하다”고 말했다. 

 

 

“원안위 못 믿겠다” 


대진침대 사용자의 하소연

 

시사저널은 5월15일 ‘라돈 침대’ 관리 부실을 지적하는 기사를 단독 보도한 바 있다. 이 기사를 본 대진침대 사용자 이아무개씨는 기자에게 이메일을 통해 피해자의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원안위를 믿지 않는 소비자가 많다. 원안위가 관리 소홀을 인정하고 피해자를 추적 검사해 주길 바란다”며 “대진침대 업체의 리콜 조치도 받기 힘들어 사용하던 침대를 대형 폐기물로 버리는 사람도 있다. 방사성물질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고 그게 어디로 어떻게 돌고 또 내 손에 올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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