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마지막 먹은 것까지 그렸으면.."

최현미 기자 2018. 5. 1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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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그가 이번에 한국에서 보낸 날에 그린 식사 일기다.
식사일기를 설명하는 시노다 나오키 씨. 김낙중 기자 sanjoong@
시노다 나오키 씨가 같은 규격의 대학 노트에 기록한 삼시 세끼 그림일기의 한 페이지.

한국 찾은 ‘샐러리맨…식사일지’ 저자 시노다 나오키

“28년간 삼시세끼 그림일기로

어느덧 대학노트 50권 분량

여행·출장지서도 거르지않아

韓 머무른 3박4일도‘역시나’

1990년 후쿠오카서 첫 시작

디카 없던 시절‘그리자’생각

이젠 그만두는 게 더 어려워

그림일기 덕분 먹거리 고민

골고루 먹게돼 자연히 건강”

“일단 무엇인가를 시작해 꾸준히 지속하다 보면 그만두는 것이 더 어려워집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삼시 세끼 그림일기를 28년간 하루도 안 빠지고 계속할 수 있었는지 묻곤 합니다. 하지만 나로선 이젠 그만두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1990년 8월 스물여덟에 그날 먹은 ‘삼시 세끼’를 그림일기로 그리기 시작해, 그 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해온 시노다 나오키(篠田直樹·56)씨. 이 28년 동안 20대 청년은 50대 중년이 됐고,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직장에선 평직원·과장을 거쳐 이제 여행사의 부장이 됐지만, 그는 여전히 하루가 끝나는 저녁이면, 어김없이 책상 앞에 앉아 그날 먹은 식사를 기록한다. 아픈 날도, 출장으로 외국에서 밤을 맞은 날도 마찬가지다. 삼시 세끼를 기록한 같은 규격의 대학노트가 50여 권, 이 일기를 추린 ‘시노다 과장의 삼시 세끼’와 ‘샐러리맨 시노다 부장의 식사일지’(앨리스)는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그가 출판사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는 한국에 머문 3박 4일 동안에도 어김없이 삼시 세끼를 그렸다. 그를 14일, 서울 시내 호텔에서 만나 삼시 세끼 그림일기와 이 일기가 말하고 있는 시간의 놀라운 힘, 일상의 위대함, 지속함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시작했나.

“1990년 8월 후쿠오카로 전근을 가면서였다. 후쿠오카는 처음이었고, 맛있는 것이 많을 것 같았다. 먹는 것을 좋아하고 독신이라 시간도 많으니 식사를 기록해보자고 생각했다. 기록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 전에도 몇 가지를 기록하긴 했지만 끝까지 못 했다. 그래서 처음엔 너무 힘들이지 않고 간단하게 먹은 것을 쓰는 것으로 시작했다.”

-왜 카메라를 쓰지 않고 눈과 혀의 기억으로만 그리나.

“1990년에 디지털카메라가 없었다. 필름 카메라는 현상이 필요하니 매일 기록용으로는 적절치 않았다. 1회용 카메라는 비싸고 화질이 좋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라 그림 그리는 것은 부담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먹은 식사는 며칠 뒤에도 또렷하게 기억해 카메라가 필요 없다.”

-어떻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릴 수 있나.

“일단 시작하고, 지속하면, 그만두는 것이 어렵다. 결혼도 시작하면 이혼이 어렵지 않은가. 물론 귀찮은 날도 있지만 매일 아침, 30분씩 하는 복근 운동과 비슷하다. 하루도 안 빼놓고 했기 때문에 이제는 하루를 빼먹는 것이 아깝다. 매일 하는 것과 하루라도 빠지는 것은 야구에 비유하면 퍼펙트 게임과 안타를 맞는 것 같은 큰 차이다. 이젠 그만두기가 더 어렵다. 매일 색칠까지 20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큰 부담도 아니다. 매일 꾸준히 계속하려면 너무 힘들면 안 된다.”

-2012년, 50세에 그림일기를 방송에 공개하면서 유명해져 책까지 나오고 작가가 됐는데.

“그해 입시 압박에 시달리던 큰딸과 등교 거부를 하던 둘째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학과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부모로서 옆에서 걱정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는데, 아이들이 자기 일을 잘 해나가는 것을 보면서 이제 부모·자식의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관계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나는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생각이 들었다. 나이 50에 의사나 파일럿이 될 수 없고, 별것 아니지만, 내가 해온 것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다.”

-삼시 세끼 일기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거창한 의미는 없다. 지금까지 해온 것의 의미보다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릴까가 더 기대된다. 곧 만 55세가 된다. 이제 내 삶에서 일기를 그린 시간이 그리지 않은 시간보다 많아졌다. 그저 일기를 그리고 쓰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 건강해야 하고, 일상이 평화로워야 가능한 일이다. 감사하다.”

-삼시 세끼, 무엇을 먹을지 고민이 많겠다.

“당연히 그렇다. 어제 무엇을 그렸으니 오늘은 무엇을 그려야지 생각한다. 일주일치를 생각해 놓기도 한다. 하지만 나도 직장인이기에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도 그림을 그려야 하니 편의점 도시락이나 컵라면은 먹지 않고, 여러 음식을 골고루 먹게 돼 건강에 신경 쓰지 않아도 자연히 건강해졌다.”

-계획은.

“변함없이 담담하게 계속하겠다. 영원한 것은 없으니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지만, 죽기 전에 마지막에 먹을 것 나의 마지막 식사를 그리고 죽고 싶다.”

그는 그의 삼시 세끼 일기를 보고, 자신도 무엇인가를 시작해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말을 부탁하자 ‘평범한 것’을 살펴보라고 말했다. “같은 것을 반복해 계속하니 무언가가 생겨났다. 20년 넘게 그리니 책도 나왔다. 하지만 뭔가 특별한 것을 새로 발견해, 그것을 시작하기란 쉽지 않다. 별것 아니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우연히 그림일기를 그렸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들만의 또 다른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최현미 기자 c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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