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트럼프에 편지 "미군으로 중국·러시아 견제해달라"

곽재훈 기자 입력 2018. 5. 17.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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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도 비핵화 완료 후에"..공개 서한 통해 사실상 '판 깨라' 주문

[곽재훈 기자]

 내달 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 자유한국당이 당 차원의 요구를 담은 홍준표 대표 명의의 공식 서한을 미 트럼프 행정부에 보냈다. 북미 간 핵심 쟁점인 비핵화에 대해 초강경 일변도의 주장을 담은 데다, 북한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인권, 생화학무기, 위조지폐 등의 사안까지 북미 정상회담에서 "강력히 제기"돼야 한다는 내용이다.

북한이 남북 고위급회담을 무기한 연기하고,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수뇌회담에 응하겠는가를 재고려할 수밖에 없다"고까지 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에서 제기된 강경한 주장을 집대성한 내용이다. 북한이 수용할 수 없는 요구 일색이어서 사실상 북미 협상의 판을 깨라는 주문과 다름이 없어 보인다. 

홍 대표는 1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자신의 명의로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 공개 발송될 서한의 내용을 발표했다. 홍 대표는 "우리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북 간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정치적 합의가 아닌 항구적이고 완전한 북핵 폐기(PVID) 합의가 이루어지길 바란다"며 "일시적인 분위기에 취해, 또 다시 과거의 잘못을 반복할까 대단히 우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라고 운을 뗐다. 홍 대표는 이어 "한국당은 미국 정부와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이 요청드린다"며 7개항의 요구 사항을 밝혔다.

홍 대표가 트럼프 행정부에 요구한 7개항 중 1·5항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본질적·기술적 내용에 대한 '훈수'이고, 2·3항은 일괄타결이냐 동시적·단계적 방법론이냐 등 '협상 방법론' 차원에 대한 요청이다. 4항은 주한미군 철수는 안 된다는 원칙론이고, 6·7항은 비핵화 외의 다른 사안을 거론한 내용이다.

홍 대표는 1항에서 "한국당은 미국이 북한 비핵화에 있어 'PVID' 원칙을 견지해줄 것을 요구한다"며 "북한의 미래 핵개발 능력과 과거 핵을 제거할 뿐 아니라, 핵기술 자료를 폐기하고 핵기술자들을 다른 업무에 종사토록 함으로써 영구히 핵개발 능력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 완료 시기와 검증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합의문을 채택함으로써 북한이 실제 비핵화 이행 과정에서 사찰과 폐기 방법 등과 관련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강력한 사찰과 검증을 포함한, 과거와 미래의 모든 핵까지 폐기될 수 있는 합의가 되어야 함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했다.

홍 대표는 5항에서는 "한국당은 미국이 이번 미북 정상회담뿐 아니라 향후 모든 미북 간 협상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길 바란다"며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 전략자산 전개 금지 등 한미 양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를 함으로써 비핵화 약속 이행을 거부하는 명분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재에도 첨예한 쟁점이 되고 있고 6.12 정상회담에서도 치열한 공방에 예상되는 1항의 내용은 그렇다 치고, '북한만의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은 북한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으로 보인다. 이는 사실상 북미 정상회담에서 '판을 깨고 나오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홍 대표는 2·3항에서는 "한국당은 미국이 북한 비핵화에 대한 보상 문제에 있어 '비핵화 완료 후 보상'이라는 기존의 원칙을 고수해 주길 바라고, 비핵화 완료시까지 '제재와 압박'을 지속한다는 기존 방침도 견지하길 바란다"며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 등 체제 보장 조치는 북한의 비핵화 완결 이후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은 비핵화의 대가로 체제 보장을 요구하고 있고, 체제 보장으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미북 수교 등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며 "그러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이 선행된다면 '제재와 압박'이라는 북한 비핵화를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을 잃게 된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북핵 폐기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주어지는 외교적 보상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비핵화가 핵 폐기 및 검증 절차까지 완료되기 전에는 어떤 경제적·외교안보적 보상도 줘서는 안 된다는 초강경론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북한이 이런 내용의 협상에 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의 중론이다.

홍 대표는 이어 6·7항에서는 북한이 민감하게 여기고 있는 문제를 잔뜩 거론하며 이를 모두 북미 정상회담 의제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당은 미국이 이번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생화학무기 폐기와 사이버 테러행위 중단, 위조 달러 제작 중단 등 국제적 범죄행위를 중단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며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디도스(DDOS) 사이버 공격과 해킹 사례를 거론하고 "미국이 북한의 인권 문제를 강력히 제기하고, 경제적 개혁 개방을 요구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홍 대표는 공개서한의 4항에서는 "북한 비핵화 과정이나 비핵화 이후에도 한미동맹은 지속적으로 강화·발전돼야 하며, 미국이 밝힌 바 있듯이 이번 미북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 문제가 협상 의제로 거론되어서는 안 된다"며 그나마 상식적인 내용을 담았으나, 그마저 "한국당은 미군이 대한민국에 계속 주둔함으로써 북한의 남침을 억제하고 중국과 러시아 세력을 견제해 주기를 요구한다"는 사족을 달아 논란을 자초했다. 집권당이 아닌 야당이라고는 해도, 국회에 의석을 가진 공당이 외국 군대의 주둔을 통해 이미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는 우방국(중국·러시아)을 "견제해 달라"고 공개적·공식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한국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한중관계 및 한러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강화·발전시켜 왔다.

곽재훈 기자 (nowhere@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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