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뇌 잇는 '통로 세포' 47종 찾아냈다

입력 2018. 5. 17. 03:16 수정 2018. 5. 18.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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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뇌연구원-미국 프린스턴대 공동연구
쥐 망막 고해상도 3차원 영상자료 구축
다중참여 온라인게임 거쳐 '통로세포' 확인

과학자-시민-인공지능 '3각 협력' 성과
게임 참여자들도 논문 공저자에 등재
시각질환 연구 활용..'시각 뇌지도' 첫걸음

[한겨레]

눈과 뇌를 이어주어 ’시각 통로’ 구실을 하는, 망막 신경절세포들의 영상. 출처: 아이와이어 온라인 가상전시관, museum.eyewire.org

과학자와 시민의 협력, 그리고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눈과 뇌를 잇는 망막 신경세포들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한국뇌연구원의 김진섭 책임연구원과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세바스찬 승 교수(한국이름 승현준) 연구진은 망막의 수많은 신경세포들에서 눈과 뇌를 이어주는 ‘통로’인 신경절세포들을 찾아내고 이를 47가지 세포유형으로 분류해, 그 결과를 생물학저널 <셀>에 발표했다. ‘시각’이 시작되는 망막의 신경절세포들을 높은 정밀도로 찾아내고 분류한 이 연구 결과는 눈에서 뇌로 이어지는 ’시각 뇌지도’의 작성에 중요한 기초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신경절세포(ganglion cell)는 수많은 신경세포들로 이뤄진 망막의 신경세포들 중 하나로, 망막에서 처리된 시각 정보들을 재조합한 뒤 뇌로 보내 ‘망막과 뇌의 통로’ 구실을 하는 망막 신경세포를 가리킨다.

눈의 구조와 망막.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망막 신경절세포들에 관한 연구는 이전에도 있었다. 이번 연구가 이전과 다른 점은 전자현미경을 사용해 고해상도 3차원 영상을 구축하고, 이런 고해상도 영상을 바탕으로 가장 높은 정밀도를 신경절세포 유형을 식별해냈다는 것이다. 연구에선 사람이 아닌 생쥐의 망막 조직을 사용했으나, 사람과 쥐의 망막 구조는 구성 원리가 비슷하고 다수 신경절세포들을 공유하고 있다고 연구진은 덧붙였다.

또한 실험실 안 연구자뿐 아니라 피시(PC) 앞 온라인게임 사용자들도 참여해, 이번 연구가 ‘과학자와 시민의 협력’으로 이루어졌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논문 공저자에는 연구자 18명과 함께 ‘아이와이어러(Eyewirers)’라는 이름도 올랐는데, 이는 프린스턴대학 연구진이 시민의 참여를 통해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자 개발한 온라인게임 ‘아이와이어(Eyewire)’의 사용자 집단을 가리킨다.

연구진은 먼저 생쥐 망막 조직의 일부(전체의 0.67%)를 얇은 두께로 연속 촬영해 초고해상도의 전자현미경 영상 5000장을 얻었다. 이를 온라인게임에서 사용자들이 다루기 쉽도록 작은 단위로 쪼개어 4만8000개의 3차원 조각 영상을 만들었다(게임에선 ‘큐빅’이라 불렀다). 온라인게임 사용자들은 ‘큐빅’이라 불리는 4만8000개의 3차원 영상에서 실타래처럼 뒤엉킨 듯한 신경세포의 세포체와 수상돌기, 축삭을 따라가며 추적해 각 신경세포의 형상을 복원하는 게임 미션을 수행했다.

온라인게임 ’아이와이어’의 첫 화면. 출처: eyewire.org

이렇게 수많은 참여자와 수많은 게임을 통해 수많은 망막 신경세포들의 형상이 파악되었으며, 뒤이어 여기에서 눈과 뇌를 이어주는 ‘시각 통로’인 신경절세포 397개가 식별됐다. 연구진은 신경절세포들의 구조와 특징을 분석해 그 세포 유형이 47가지로 분류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망막 시신경 연구를 위한 온라인게임엔 2014년 10월부터 2015년 7월까지 모두 1만3803명이 참여했으며 이중 한국인은 4271명이었다. 뇌연구원은 정보통신기업 케이티(KT)와 함께 일반인의 아이와이어 게임 참여를 독려하는 활동을 벌여왔다. 1만3803명의 게임 아이디(ID)는 논문 부록에 함께 실렸다.

김진섭 책임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시민과 과학자의 협력, 그리고 온라인게임을 지원하는 인공지능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실험실 연구자들이 직접 했다면 아마도 수십 년쯤 걸릴 영상 분석이 9개월 만에 끝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4년에 걸쳐 이뤄졌다.

망막의 신경절세포 유형을 볼 수 있는 온라인 가상전시관의 화면. 출처: museum.eyewire.org

분석 대상이 된 망막은 전체 조직의 0,67%에 불과하다. 생쥐 망막의 전체 표면적(15.6㎟) 크기는 아주 작지만, 그 안에 있는 수많은 신경세포들의 세계는 고해상도 영상으로 분석하려면 현재보다 100배 넘는 노력이 필요할 정도로 방대하다는 얘기다. 김진섭 책임연구원은 ”인공지능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망막 전체의 신경세포를 파악하는 작업도 앞당겨지겠지만 현재로선 이번 연구결과로도 충분히 의미가 크다”면서 “망막 일부만 분석해도 신경절세포들의 ‘유형’을 파악하는 데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47가지 신경절세포가 국부적으로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대체로 균일한 구조를 지니는 망막 전체에서 비슷하게 분포할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즉, 망막에서 눈과 뇌를 이어주는 시각 통로인 신경절세포들은 이번에 파악된 ‘47가지’ 유형으로 이해할 수 있고, 생쥐 망막에서 얻어진 연구결과는 사람 망막을 이해하는 데 현재 수준에서 가치 있는 기초자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망막 신경절세포의 유형 목록을 확인함으로써, 앞으로 이뤄질 시각 뇌지도 제작의 첫걸음을 내딛게 됐다”면서 “녹내장 같은 신경절세포 관련 시각질환의 근본 원인을 연구하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서 얻은 망막 신경절세포의 3차원 영상은 아이와이어의 온라인 전시관(museum.eyewire.org)에서 볼 수 있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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