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는 없다는데 우린 또 죽었다" 세월호 보도참사 부른 '기레기' 이야기

김형규 기자 2018. 5. 15. 19:2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1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언론에 의한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2차 피해 증언대회’가 열렸다. 416연대 제공

“엊그제 MBC에 가서 조사 결과를 들었어요. 기가 막힌 게, 결국 잘못한 사람이 없어요. 그게 결론이에요. 근데 우린 또 죽었어요. 책임 지는 사람은 여전히 아무도 없고, 세월호 때처럼 여전히 사람들은 죽어나가고 있어요.”

‘예은 아빠’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4년 전 세월호 참사 때 ‘기레기’ 소리를 들었던 언론이 지금도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유경근 위원장은 1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언론에 의한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2차 피해 증언대회’에 참석해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언론의 문제를 지적했다.

■MBC에 ‘일베’는 없었다, 그럼 왜?

유 위원장이 언급한 MBC 조사는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의 세월호 모욕 논란에서 비롯된 자체 조사를 말한다. <전지적 참견 시점>은 지난 5일 방송에서 이영자씨가 어묵을 먹는 장면을 뉴스 보도 형태로 편집하면서 세월호 참사 당시 특보 화면을 삽입했다. 해당 장면은 과거 극우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 베스트’에서 ‘어묵’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모욕한 것을 연상시켜 논란이 일었다. MBC는 최승호 사장이 공식 사과하고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조사단을 꾸려 자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MBC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은 지난 5일 방송에서 세월호 유족을 조롱하는 것으로 보이는 참사 당시 뉴스 특보 화면을 사용해 프로그램 폐지 요구가 일고 있다. MBC 방송 화면 캡처

최근 MBC에서 5시간에 걸쳐 1차 조사 결과를 설명 들은 유 위원장에 따르면 제작진 중 누구도 세월호 피해자들을 모욕하려는 고의를 갖고 해당 화면을 사용하지 않았다. 통상적인 제작 절차에 따라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문제가 된 장면을 거르지 못한 것은 단순 실수라는 것이다. 연출과 조연출 등 해당 프로를 제작한 PD들도 ‘MBC 정상화 파업’에 적극 참여하는 등 사내 평판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MBC 안에 ‘일베’ 성향의 직원이 여전히 남아 방송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세간의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다.

“세월호 참사 때 진도 팽목항에 취재 나온 기자들 중에 세월호 가족들 죽여야지 하고 온 사람은 없을 거에요. 그동안 배운대로 위에서 시킨대로 자기들 할 일을 한 거에요. 그 결과 우리들(세월호 유가족)은 진도에서 죽었죠. 이번에도 평소의 예능 제작 시스템대로 한 건데 그 결과로 우리들은 또 죽었어요. 그렇다면 이 문제는 지금까지 우리가 분석해온 것처럼 언론인 개인의 자질이나 데스크의 자세, 언론사의 독립성 같은 걸 다 떠나서 또다른 해결 방법이 필요하다는 얘기잖아요.”

유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 당시 ‘전원 구조’ 오보가 나오게 된 과정과 실체가 여전히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앞서 2016년 강제 해산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전원 구조 오보를 비롯해 세월호 유가족을 폄훼·왜곡 보도한 경위를 따져묻기 위해 공영방송인 KBS와 MBC 보도 책임자들에게 동행명령장을 발부했지만 당사자들이 불응해 조사를 전혀 하지 못했다.

1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언론에 의한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2차 피해 증언대회’에서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416연대 제공

■“관행대로 열심히 일한 결과가…”

이날 행사에선 참사 당시를 되돌아보며 한국 언론의 재난참사 보도 문제점을 자성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역 케이블 방송인 티브로드 abc방송의 이제문 기자는 이날 참사 당시 현장 취재를 했던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며 당시의 보도를 반성했다.

이 기자는 참사 당일 촬영된 원본 화면을 보여주며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했다. 부상자와 희생자 주검이 속속 실려오던 전남 목포한국병원에서 카메라 기자들은 아무런 제지 없이 의료진의 곁에 바짝 붙어 피해자와 희생자들의 모습을 여과없이 촬영했다. 시신을 검안하는 장면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포토라인 같은 최소한의 질서 유지 장치도 현장 취재진 내부의 자정작용도 없었다. 희생자와 가족에 대한 존중과 배려 대신 ‘취재 경쟁’이라는 말로 포장된 아귀다툼만이 있었다.

이제문 기자가 세월호 참사 당일 촬영한 화면을 보여주며 당시 언론 취재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416연대 제공

이 기자는 참사 직후 현장에서 구조된 단원고 생존 학생을 인터뷰하며 “큰 실수”를 한 경험도 털어놨다. 이 기자는 “사고 당시 정황을 묻고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거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보다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더 깊은 질문을 이어갔고, 어느 객실에 있었는지, 친구들은 몇 명이 같이 있었는지까지 묻고 말았다”고 했다. 학생이 ‘그만 얘기하고 싶다’고 해 인터뷰는 중단됐다.

이 기자는 “관행대로 했고 열심히 일했지만, 학생의 반응을 보면서 아차 싶었다”고 했다. 그해 말 이 기자는 안산에서 생존 학생 한 명이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다 자해를 해 병원에 실려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신이 인터뷰했던 학생이었다. 이 기자는 학생의 부모를 찾아가 사죄했다. 학생 아버지는 말했다. “당신만 그랬겠냐. 당시 수많은 기자들이 똑같이 그랬다. 당신만의 잘못이 아니다.” 이 기자는 “당시 경험으로 인터뷰를 어느 선까지 어떤 태도로 해야 하는지를 처절히 깨달았다”고 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이제문 기자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왔다”며 말문을 열었다. 416연대 제공

■세월호 유가족과 조폭을 한 화면에 쓴 공영방송

이날 마지막 발제자로 나선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참사 보도에서 언론에 의한 2차 피해가 계속되는 이유로 현장 중심 보도가 아닌 정부기관이 제공한 보도자료 중심의 ‘베끼기 보도’를 들었다. 실제로 참사 당일 정부는 초기 구조부터 수색작업까지 모든 작전에 실패하고 한 명의 잠수사도 투입하지 못했지만, 모든 언론은 ‘정부가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김 처장은 “재난 상황에서는 언론도 또 하나의 방재기관”이라며 “적극적으로 재난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부 발표의 허점을 파고드는 보도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조직적으로 방해한 박근혜 정부와 발맞춰 유가족을 모욕하고 공격한 방송의 행태도 도마에 올랐다. MBC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요구해 단원고 피해 학생들의 ‘대학 특례 입학’이 추진되는 것처럼 수 차례 왜곡 보도를 했다. KBS는 세월호 유가족이 폭행 사건에 연루된 일을 조직폭력배 ‘범서방파’ 검거 소식과 같은 뉴스 꼭지에서 한 화면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TV조선은 ‘판교 환풍구 사고’의 보상 합의 소식을 전하며 세월호 참사와 비교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무리한 요구를 해 참사 6개월이 넘도록 보상 문제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식으로 비난한 것이다. 김 처장은 “엄연히 원인과 성격이 다른 두 사건을 동등하게 비교한 것은 불순하고 악질적인 저널리즘의 표본”이라고 비판했다.

김 처장은 “재난참사 보도 개선을 위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를 강화하고, 억울한 언론 피해 구제를 위해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