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블랙리스트' 최윤수측 하위공무원에 되레 "사표 썼어야" 격앙
[경향신문] 박근혜 정부 때 국가정보원에 있으면서 청와대와 별도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문화체육관광부에 보내 실행하게 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 측이 당시 블랙리스트 관련 상부 지시로 고통을 겪었던 문체부 공무원에게 되레 책임을 떠넘겼다.
최 전 차장 측 변호인은 “(블랙리스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사표를 던졌어야 될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이다 재판장 제지를 받았다.
15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31부(재판장 김연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최 전 차장의 재판에서 최 전 차장 측 변호인과 증인으로 나온 오모 문체부 서기관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오 서기관은 블랙리스트 실행에 관여한 실무자로 지난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블랙리스트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BH(청와대) 지시사항이라 거부할 수 없었다”며 “특정 단체나 개인을 배제하며 저도 굉장히 고통스러웠다”고 호소했던 공무원이다. 검찰이 청와대와 별도로 블랙리스트를 문체부에 전달한 국정원을 수사한 결과 이를 지시한 최 전 차장을 기소해 오 서기관이 재차 증인으로 나온 것이다.
증인 신문 막바지에 이르러 최 전 차장 변호인이 “국정원은 블랙리스트에 관해 소극적이었던 것 아니냐”고 따지면서 법정은 격앙된 분위기로 흘렀다.
오 서기관이 “모르겠다”고 답하자 변호인은 언성을 높이며 “(국정원이 아니라) 증인(오 서기관)이 블랙리스트 실행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느냐”며 “일이 오면 (명단을) 취합해서 다 처리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최 전 차장이 아니라 오 서기관을 블랙리스트 실행의 사실상 핵심으로 지목한 셈이다.
오 서기관은 “저는 청와대나 상관의 지시를 받아서 그렇게(블랙리스트 실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반박했지만 변호인은 또다시 “실무자라서 제가 큰 소리를 안내는데 지시 받아서 했다고 해서 본인은 범죄가 아닌 것이냐”고 대응했다.
변호인은 이에 더해 “공무원이 그러면 사표를 던졌어야 될 것 아니냐”고 오 서기관을 강하게 비판했다.
감정에 북받친 오 서기관은 “제 삶에 대해서 책임질 수 있으십니까. 제가 사표를 왜 던집니까”라고 항의했다. “제 의지를 담아서 적극적으로 한 일이 아니다. 신분상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이 일을 한 것”이라고 한 오 서기관은 증인 신문이 끝날 때까지 여러 번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쉬었다. 재판장인 김연학 부장판사가 제지하고 나서야 공방은 수그러들었다.
최 전 차장 측은 당시 국정원이 문체부에 블랙리스트를 전달한 것에 대한 최종 결정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책임이 없고, 실행되는 과정도 대체로 몰랐다는 입장이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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