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건설 돈 안 된다"고 일본 손 떼자 한국이?!

입력 2018. 5. 14. 15:16 수정 2018. 5. 14. 16: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Weconomy | 박종운의 에너지토피아

[한겨레]

“세계 최초로 원전을 건설한 영국이 우리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손짓하고 있다."

지난 달 21일 서울 광화문에서 원전 업계 등이 참여로 열린 원전 수출 국민통합대회에서 한 전력 업계 인사가 한 말이다. 지난해 말 일본 도시바가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사업자 뉴젠의 지분을 팔기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전력을 선정했을 때부터 이어지는 말이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올해 3분기 안에 뉴젠 지분 인수를 끝낼 계획이라고 밝히자 ‘기술 수출에 거의 성공했다’는 환호성이 더 크게 들린다.

그러나 기술 수출이란 말부터 틀렸다. 영국은 한국산 텔레비전도 사고 스마트폰도 산다. 그런 것을 보고 기술 도입이라고 하지 않는다. 미국이 한국 자동차 공장을 유치했다고 해서, 한국이 미국에 자동차 기술을 팔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뉴젠 지분 인수로 한전이 영국에 원전을 짓게 된다면, 이는 기술 수출이 아니라 해외 투자다. 그마저도 미국의 기술 활용 동의를 얻어가며 공동 진출한 셈이라, 한국 돈으로 미국 일자리를 만들어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앞서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건설 때도 미국은 돈은 투자하지 않고 현지에 건설되는 원전(APR-1400)에 대한 원천 기술권과 자국 부품 판매를 우선했다.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자 뉴젠이 만든 홍보동영상의 한 장면. 동영상 갈무리

■ ‘돈 안 된다’며 일본이 발 뺀 미국·영국 원전 사업

그렇다면 영국 원전 건설 사업으로 영국이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영국이 원하는 것은 한국의 ‘기술’이 아니라 ‘달러’라고 자신있게 말하고자 한다. 국외 원전 건설 사업은 매우 위험하다. 채산성이 좋지 않아 큰 돈을 쏟아붓고도 중도 하차한 사업이 여럿이다. 옆나라인 일본의 경우 해외 원전 건설 프로젝트에서 여러차례 철수했고, 또 현재 참여중인 사업들에 대해서도 채산성 검토를 다시 하고 있다. 요즘 우리 원전 업계처럼 아베 정부도 “일본에서의 원전 신·증설이 어려우니 해외로 나가야 원전 기술을 유지할 수 있다”며 원전 수출 정책을 앞세웠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일례로 일본은 수주가 유력시되던 베트남, 리투아니아 원전 사업에서 철수했다. 미쓰비시 중공업이 진출한 핀란드 원전사업의 경우, 함께 참여한 프랑스 아레바사가 원전 사업비 증가로 경영 위기에 빠져 있다. 일본의 또다른 원전업체인 도시바도 2006년 인수한 미국 원전업체 웨스팅하우스가 미국 원전 건설 사업비 급증으로 도산한 결과 상황이 좋지 않다. 한전이 인수하려는 영국 뉴젠도 도시바가 이런 상황 속에 매물로 내놓은 것이다. 뉴젠은 프랑스 엔지(Engie)사와 일본의 도시바가 지분을 각각 40%, 60% 가지고 있었지만, 웨스팅하우스 도산으로 손실이 커지자 엔지가 도시바에 뉴젠 지분에 대한 매수청구권을 행사해 팔고 빠져나간 뒤 도시바만 단독 투자자로 남아 있었다.

일본 히타치는 영국 웨일즈 앵글시 섬에 원전 2기를 건설하려 했지만, 최근에는 영국 현지 기업의 새로운 출자가 없으면 사업을 포기한다는 입장이다. 히타치는 애초 30조원(약 275억달러)을 들여 원전을 건설하려고 했지만, 사업 위험이 너무 커졌다고 결론내렸다. 미쓰비시는 프랑스 원전회사 아레바와 유럽형 차세대 원자로(EPR)를 3대의 증기발생기로 경량화한 중형 원자로 ‘에이티엠이에이원(ATMEA1)’ 4기를 시노프에 건설하기로 했다가 완전히 손을 뗐다. 초기 예상보다 건설비가 두배로 커졌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일본 히타치 상황을 좀 더 들여다보자. 히타치는 2012년 독일 에너지기업 에온(EON), 아르더블유이(RWE)가 영국 앵글시섬에 원전을 건설하기 위해 2009년 설립한 합작회사를 사들였다. 그 뒤 후쿠시마 사고가 났고 독일은 원전을 폐기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우리나라와도 비슷하다. 그런데 원전 건설비가 계속 증가하며 사업 위험성이 커졌다. 그러자 히타치가 영국 정부와 사업 계속 추진 여부를 놓고 협의에 나선 것이다.

히타치는 영국에 호라이즌 지분 50%에 대한 투자를 요청했다고 한다. 영국은 신규 원전에 대한 정부 지분 보유(정부 직접 투자)를 꺼리고, 단지 대부만 하려고 한다. 약 20조원으로 추정되는 차입금에 대한 영국 정부의 지급보증 수준과, 건설 뒤 일본에 내야 하는 전력 구입비용을 놓고도 양쪽의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영국 정부는 히타치 요구보다 20% 정도 낮은 요금을 제시했다. 협상이 실패하면 일본은 이 프로젝트도 철회할 계획이다.

미국에 이어 유럽 핀란드의 올킬루토, 프랑스의 플라방빌, 영국 힝클리·무어사이드·윌파에서 원전 건설의 낮은 채산성이 차례로 입증되었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지난 6일 “호라이즌을 포함한 원전 건설 프로젝트 업체들이 최근 ‘재생에너지와의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원전 건설비를 영국 남부의 힝클리에 견줘 20∼30% 줄여야 한다’고 고백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 최대 원전 운영사인 엑셀론의 선임부회장은 지난달 “경제성 상실로 이제 미국에서 신규 원전 건설은 불가능하다고 전망한다”고 밝혔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4일 서울 성북동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산업광물자원부 장관과 오찬을 하기에 앞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조만간 원전 건설 예비사업자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은 미국, 러시아, 중국 등과 수주전을 벌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 ‘핵 확산’ 우려 뒤로한 중동 진출, ‘한반도 비핵화’도 흔든다

한국이 원전 수주전에 나서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어떤가. 중동은 언제나 핵 안보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전 기술국들에 원전과 함께 요구하고 있는 핵연료 농축·재처리 기술이 핵무기 개발을 염두에 둔 것임을 숨기지 않는다. 빈 살만 왕세자는 최근 “이란이 핵무기를 가지면 우리도 따라가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은 이미 오래 전 원전을 이용해 핵폭탄을 만들었다. 시리아, 이라크, 이란 모두 똑같은 계획을 가진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중동에 대형 원자로를 건설하는 것은 새로운 미사일 공격 목표를 만드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는 중동 배치 원자로에 대한 미사일 공격 사례들이 입증한다. 이란, 이스라엘, 그리고 나중에 미국은 모두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자로를 폭격한 바 있다. 이라크인들은 이란의 부셰르 원전을 폭격했다. 걸프전 당시 이라크 후세인은 디모나에서 이스라엘 원자로 쪽으로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했다. 2007년 후반, 이스라엘은 디어드알주르 근처에서 시리아에서 건설중이던 원자로를 폭격했다. 허위로 드러났지만 최근에는 시리아가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자로에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화약고 중동에, 게다가 적국으로 둘러싸인 사우디에 원전을 건설하는 것은 미사일 공격 대상을 늘리는 모험이다.

이란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의 원전 수출과 연계된 ‘핵 우선권’을 놓고 벌어지는 미국과 러시아의 경쟁에 한국이 휩쓸려서는 안된다. 아랍에미리트의 경우, 바라카 원전 건설사업 전인 2009년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를 하지 않겠다’는 협정을 미국과 맺은 바 있다. 그런데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관련해서는 엉뚱한 소리가 나온다. ‘어차피 이란을 핑계삼아 사우디가 농축·재처리 시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면 러시아나 중국보다는 미국이 해주는 것이 핵기술 리더십 유지에 유리하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 대해 미-러 관계 전문가 헨리 소콜소키 등은 지난달 20일 미 의회 전문 매체 <더 힐>에 미국과 러시아는 중동에서 핵을 배제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 국정감사 때 원자력 업계는 한국이 원전(APR-1400)을 수출한다면 미국 승인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지난 4월 백운규 산업부 장관의 미국 방문과 관련하여서는 업계에서 완전히 다른 소리가 나온다. 일부는 “한-미 원자력 협정에 따라 초창기 미국에서 기술을 들여온 한국은 원전을 수출하려면 미국 정부와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말을 바꾸었다. 그러나 동의를 얻든, 공동 진출을 하든, 핵무장을 염두에 둔 ‘원전+농축·재처리 기술’ 핵 패키지를 요구하는 사우디에 한·미가 공조하는 것을 미 의회가 승인할 리 만무하다.

아랍에미리트를 중동 원전 건설의 모범 사례로 보는 것은 허상이다. 중동 원자력 발전은 이미 경쟁력이 없다고 판명나고 있다. 원자력발전은 설치 기준 1킬로와트시당 비용이 11센트인데 가스발전은 6센트 미만으로 원자력의 절반이다. 광전지는 중동 지역에서 킬로와트시당 2센트 이하로 팔리고 있다. 낮에 나트륨을 가열하고 밤새 운영하는 집중된 태양에너지 발전시설도 8센트 미만이다. 아랍에미리트가 최근 ‘원전을 더 이상 건설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원전 선발국 유럽·북미에서의 원전 건설은 채산성이 없다. 동남아, 아프리카는 전력 인프라 부족으로 원전 운영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불가능하다. 중동은 전쟁 다발 지역으로 원전이 부적합하다. 아베가 중동과 원전건설을 ‘딜’(거래)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안다. 수익보다 자국 영향력 팽창에 관심이 있는 러시아나 중국만이 아랑곳하지 않고 중동에 파고들 뿐이다. 베트남, 터키는 러시아가 이어 받았으니, 영국 뉴젠은 이미 진출한 중국이 땜질하게 두어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도 러시아에 주면 된다. 러시아 수주를 막겠다며 잠재적 핵무장 가능성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 한·미가 원전을 제공하면 한반도 비핵화 명분은 사라진다.

동국대 교수(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