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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윤의 스토리가 있는 와인] 샤토 무사르(Chateau Musar) 레바논 내전 폐허에서 탄생한 ‘평화의 와인’

  • 입력 : 2018.05.14 08:10:01
  • 최종수정 : 2018.05.14 09:34:13
2018년 4월 27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성공리에 끝났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은 세계를 주목시켰다. 이런 화해 무드를 지속하기 위해 평화를 상징하는 이른바 ‘평화의 와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레바논의 샤토 무사르(Chateau Musar) 와인이다.

레바논은 16년 동안 내전(1975~1990년)을 치르면서 모든 산업이 황폐화됐다. 와이너리들도 문을 닫았지만 유일하게 ‘샤토 무사르’는 내전이 가장 치열했던 1976년, 1984년을 제외하고는 전쟁 중에도 매년 와인을 생산, ‘평화의 와인’으로 찬사를 받았다.

‘무사르’는 아랍어로 ‘경관이 빼어난 곳’을 의미한다. 샤토 무사르가 위치한 해발 1500m의 베카 고원은 너무 아름다워 고대 로마인들이 술의 신 바쿠스를 모시는 신전을 세우고 내부에 암포라, 포도 장식을 한 곳이다. 와인의 본고장이자 지중해 와인 무역의 중심지기도 하다. 기원전 1000년경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으로 포도 묘목 ‘Vitis Vinifera’를 전파해 유럽 양조 포도의 시조가 됐다. 이미 6000년 전 고대 페니키아인들이 레바논 지역의 포도나무로 와인을 생산하고 이집트, 그리스에 수출했을 만큼 오랜 와인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왔다.

1930년 공학도 출신의 사업가 개스톤 호샤르(Gaston Hochar)는 베카 고원의 아름다운 경관에 매료됐다. 레바논의 6000년 와인 역사에 프랑스 보르도 와인 투어에서 받은 영감이 더해진 그는 18세기 건축된 고성을 사들여 와이너리를 설립했다. 이후 지금까지 3대째 가족 경영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계기 ‘평화 기원 와인’으로 재조명

개스톤 호샤르의 두 아들 중 장남 세르주(Serge)는 1959년 프랑스 보르도대에서 양조학을 공부, 와인 양조가가 돼 가업을 이어받았다. 1984년 와인 잡지 ‘디켄터’에서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차남 로널드(Ronald)는 대학에서 법학과 정치학을 공부한 후에 샤토 무사르에 합류해 마케팅과 재무를 담당한다. 2014년 세르주가 멕시코 여행 중 사망한 이후 그의 아들 마크(Marc)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와이너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샤토 무사르의 포도밭은 고원에 둘러싸인 산맥들로 인해 겨울에 비가 내리고 서리, 병충해 피해가 없다.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이 길고 온화하다. 점토, 모래, 석회질 자갈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토양 덕분에 카베르네 소비뇽, 카리냥, 생소(Cinsault) 포도 품종이 주를 이룬다. 1979년 영국에서 열린 국제 와인 품평회 ‘브리스톨 와인 페어(Bristol Wine Fair)’에서 1967년 빈티지가 ‘Discovery of the Fair’에 선정돼 국제 무대에서 처음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프랑스 미쉐린가이드에서 30년 동안 별 3개를 받은 레스토랑 ‘타이방(Taillevent)’의 ‘죽기 전에 마셔봐야 할 전설의 100대 와인’을 비롯해 ‘와인 브랜드 Top 50’ ‘Wine&Spirit의 100대 와인’ 등에 잇따라 선정되면서 명성을 이어갔다. 2006년 레바논 지역에서 최초로 유기농 포도 농사에 성공하기도 했다.

샤토 무사르 와인은 수령 30년이 된 포도나무에서 선별해 손 수확하고 시멘트통에서 발효한다. 3개의 포도 품종별로 6~9개월 동안 숙성한 후 다시 프랑스 뉴오크통에서 12개월간 숙성을 거쳐 3년째 되는 해에 블렌딩하고 병입한다. 이후 4년간 더 숙성한 뒤 출시해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샤토 무사르 레드 와인 2002’는 깊이 있는 진한 루비색, 잘 익은 블랙베리·레드 커런트·석류·체리·다크 플럼 등의 과일향, 후추·허브·민트·삼나무·가죽·정향이 일품이다. 풍부한 타닌, 절도 있는 산도, 균형 잡힌 보디감과 탁월한 구조감은 놀라움을 자아낸다. 음식과의 조화는 닭고기 요리, 해산물, 참치 스테이크, 쇠고기 스테이크와 잘 어울린다. 가격은 9만5000원 안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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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57호 (2018.05.09~05.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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