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진, 제비꽃의 웃음에서 '인생'을 읽다
[오마이뉴스 김찬곤 기자]
조동진은 '행복한 사람', '작은 배', '제비꽃', '나뭇잎 사이로' 같은 노래를 불러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가수 유희열은 "철없던 나에게 '정서'를 가르쳐 준 건 조동진"이었다고 했고, 음악평론가 신현준은 "아픈 영혼에 행복 주던 얼굴 없는 가수"라고 했다.
그의 노래가 다 그렇듯 노랫말을 다시 음미하면 그가 천생 '노래하는 음유 시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행복한 사람'에서 그는 세상 사람에게 묻는다. "울고 있나요. 당신은 울고 있나요." "외로운가요 당신은 외로운가요" 그런 다음 '그러나' 앞에 '아'를 붙여 "아 그러나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라 한다. 사실 이 대목을 들으면 더 울고 싶고, 더 외로워지기도 한다.
특히 '제비꽃'은 그가 진정 세상을 노래하는 시인이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쉬운 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어려운 시도 아니다. 다만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 같은데 뚜렷이 잡히지 않고, 그 뚜렷이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이 사람들 마음을 뒤숭숭하게 하지 않나 싶다. 아래에 노랫말을 옮겨 본다.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내가 다시 너를 만났을 때
너는 많이 야위었고
이마엔 땀방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내가 마지막 너를 보았을 때
너는 아주 평화롭고
창 너머 먼 눈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 있고 싶어
물론 내 노래 속의 등장인물은 내가 살아오면서 실제로 만났던 사람들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중략) 특히 〈제비꽃〉을 지으면서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여성 이미지는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 있던 루이제 린저의 소설 《생의 한 가운데》의 니나 붓슈만과 프랑스 작가 앙드레 슈발츠-바르트(Andre Schwarz-Bart)의 《내 이름은 고독(A Woman of Named Solitude)》에 나오는 혼혈 노예 '솔리튜드'였다. 아마도 세상과 맞서며 끊임없이 자신과의 투쟁을 벌이는 두 여주인공에게서 상당한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오래 전부터 우리와 닮은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꿈과 사랑, 슬픔과 좌절, 그러고는 조금씩 달관해 가는 그 성숙 과정을 노래해 보고 싶었고, 그래서 조금 욕심을 내어본 노래가 〈제비꽃〉이다.
-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청맥, 1991)
그는 '제비꽃' 시를 쓰면서 니나 붓슈만과 솔리튜드를 생각했다. 이 시는 동화처럼 서사를 갖추고 있고, 한 소녀의 성장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의 말처럼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꿈과 사랑, 슬픔과 좌절, 그러고는 조금씩 달관해 가는 그 성숙 과정을" 노래에 담았다고 할 수 있다.
조동진 또한 앞글에서 살핀 안동 대곡분교 홍성희(3학년), 김춘옥(2학년)과 마찬가지로 활짝 핀 제비꽃에서 '웃음'("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을 읽는다. 그런데 홍성희와 김춘옥이 제비꽃의 웃음을 직관으로 단순하게 '방글방글' '생글생글'로 붙잡았다면, 조동진은 그 웃음에서 '한 인간의 인생'을 본다. 1연에서는 '꿈과 사랑'(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2연에서는 '슬픔과 좌절'(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3연에서는 '달관'(창 너머 먼 눈길)의 웃음으로 말이다. 그는 제비꽃의 웃음에서, 꿈과 희망을 보고, 힘들지만 그래도 버텨내겠다는 의지를 읽고, 지난날이 한없이 그립지만, 그래서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 있고" 싶지만, 이제는 지금을 긍정하는 달관의 웃음으로 노래한다. 연마다 있는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에서 그 웃음은 저마다 결이 다른 웃음이고,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세상을 알고, 살아가고, 이제 곧 세상을 떠날 때의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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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광주드림에도 보냅니다. 제비꽃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네이버 ‘이새별 블로그’에 한번 들러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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