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림의 인사이드 아웃] 자신 숨기고 제자 부각시킨 나디아 불랑제

2018. 5. 14.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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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에서 후진 양성은 주로 도제식으로 이뤄진다.

학교라는 근대적인 교육 체계가 예술에 도입된 지 오래지만, 그 시스템 안에서 행해지는 가르침은 개인 대 개인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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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 진입 지대한 영향 미친 최초 여성 교육자
나디아 불랑제(오른쪽)와 동생 릴리. 릴리는 나디아의 1호 제자였다. 오른쪽 사진은 미국의 명지휘자이자 작곡가인 레너드 번스타인이 1978년 프랑스 파리에서 스승인 나디아와 재회해 그의 손에 얼굴을 묻으며 감사함을 표하는 모습. 포노출판사 제공

예술계에서 후진 양성은 주로 도제식으로 이뤄진다. 학교라는 근대적인 교육 체계가 예술에 도입된 지 오래지만, 그 시스템 안에서 행해지는 가르침은 개인 대 개인일 수밖에 없다. 음악계는 이런 성향이 특히 강하다. 음악계에 신성이 나타날 때면 스승의 이름은 늘 당연하게 함께 거론된다.

보통은 스승 본인 또한 음악가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역 음악가가 아닌 전문 교육자로서 명성을 남긴 사례도 있다. 프랑스의 나디아 불랑제(1887∼1979)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 진입해 지대한 영향을 미친 최초의 여성 교육자였다는 점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녀의 일대기는 프랑스의 유명한 저널리스트 브뤼노 몽생종이 취재한 바 있으며 국내에도 ‘음악가의 음악가’(포노)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나디아는 음악가 집안에서 자랐다. 음악가인 아버지로부터 교육받았고, 여동생 릴리는 남자들이 주름잡던 파리 음악원에서 불과 19세의 나이에 로마대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 작곡가이자 전도유망한 신동이었다. 릴리보다 앞서 파리 음악원에서 가브리엘 포레를 사사한 나디아 또한 처음에는 작곡에 뜻을 품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이를 스승 포레는 애석하게 여겼지만 본인은 가장 잘한 선택이라 평생 자랑했다. 졸업 후 바로 교육자의 길로 들어선 그녀의 진면목은 제자들에 의해 빛을 발했다. 제자 1호였던 여동생 릴리와 애런 코플랜드, 아스토르 피아졸라와 같은 작곡가를 비롯해 역사적 거장 레너드 번스타인, 이고르 마르케비치, 디누 리파티, 예후디 메뉴인, 그리고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 중인 필립 글래스와 존 엘리엇 가디너까지 모두 그녀의 레슨을 받고 성장했다.

놀라운 점은 이들 음악가의 성향이나 작품에서 그 어떤 공통점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제자들이 자신만의 노래를 찾도록 이끄는 나디아의 능력에 대해 피아졸라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나디아를 찾아갈 때까지만 해도 나는 사창가에서 탱고를 연주한 내 경력을 부끄럽게 여겼다. 과거를 숨기기 위해 철저하게 클래식 어법으로 작곡한 악보를 들고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는 ‘잘 썼네. 라벨도 보이고, 쇼스타코비치도 보이고. 그런데 피아졸라는 없네?’라고 말했다. 그녀의 집요한 추궁에 나는 내가 카바레에서 연주했고, 내 악기가 피아노가 아닌 반도네온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요청에 탱고를 몇 소절 연주하자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 ‘아휴, 이 멍청이야! 이게 바로 피아졸라야’라고.”

나디아는 제자들이 가진 재능과 덕목을 특정한 세계관이나 가치에 따라 재단하는 대신 자유롭고 보편적인 표현의 도구로 활용하도록 격려했다. 이는 몽생종과의 대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선생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제자가 여러 도구들을 자유자재로 만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거예요.” 그녀 덕분에 탱고는 피아졸라에 의해 클래식의 반열에 올랐고, 애런 코플랜드와 레너드 번스타인은 유럽에 비해 열등하게 여겨지던 미국 문화를 이용해 현대음악의 새로운 조류를 창조했다.

스스로의 자취를 지운 채 제자들만을 부각시킨 그녀의 삶은 사뭇 유령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음악 속에 사라지는 사람, 그 사람이 누구보다 고수인 연주자다”라는 본인의 명언을 직접 실천한 그녀야말로 진정한 예술가의 삶을 성취했다 할 수 있지 않을까. 내일은 스승의 날이다. 제자들이 그 은혜에 보답하는 날이지만 거꾸로 내가 그들에게 어떤 스승인지 돌아보는 날이 되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노승림 <음악 칼럼니스트·문화정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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