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 6곳' 못이기면 물러난다던 홍준표.. 커트라인 넘길까

태원준 기자 2018. 5. 1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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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해부터 6·13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6곳을 승리하지 못하면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공언했다. ‘6’은 현재 한국당이 장악한 광역단체가 6곳이어서 나온 숫자다. 자신의 사퇴로 공석이 된 경남지사와 부산·인천·대구·울산시장 및 경북지사를 의미하는 거였다. ‘현상 유지’를 목표로 설정해 배수진을 친 것이다.

문재인정부의 첫 전국선거인 6·13 지방선거는 13일 ‘D-31'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한반도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북미정상회담은 이보다 한 발 앞선 ‘D-30'을 세고 있다. 한 달 뒤면 ‘북핵’이란 용어가 한반도에서 사라질 수 있을지, 문재인정부에서 지방권력의 향배는 어떻게 될지가 나란히 판가름 나게 됐다.

사상 최대의 외교 이벤트와 올해 최대의 정치 이벤트는 하루 차이로 잇따라 치러진다. 한국 선거판은 늘 ‘북풍(北風)’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의도적인 ‘북풍 공작’이 있었을 정도로 유권자는 안보에 민감하다. 역대 북풍과 차원이 다른 초대형 바람을 품은 북미정상회담이 지방선거판에 미칠 영향은 대단히 클 수밖에 없다. 홍 대표는 이런 북풍에 맞서 ‘6곳’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 됐다.

◆ 홍준표 “정치는 책임지는 것”

홍준표 대표는 지난해 9월 29일 기자들과 오찬 간담회를 하며 “정치는 책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 대표를 오래 할 생각이나 미련이 없다. 당 대표는 월급도 안 주는데 뭐 하려고 오래 붙어 있느냐”면서 지방선거 광역 6곳 현상유지 목표를 언급했다.

그는 당시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가 “지방선거 때 전략공천을 해야 한다”고 밝힌 점을 언급하면서 기자들에게 “우리가 6곳을 못 지킬 것 같으냐”고 묻기도 했다. 서울시장·경기지사와 관련해선 “이길 후보가 있다” “경기지사는 이재명 성남시장이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오면 100% 이길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서울시장 후보에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공천한 지난달 초 홍 대표는 다시 “여섯 개”를 얘기했다. 출입기자들과 티타임을 하면서 이번에도 “내가 책임진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현상유지 여섯 개 못하면 내가 책임진다고 이미 말했다. 내가 반드시 책임진다.” 그가 말한 ‘여섯 개’는 ‘대구·경북·부산·울산·경남’+1이다. ‘+1’은 인천 강원 충북 충남 중 한 곳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 여섯 곳 판세를 묻자 홍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경남은 우리가 앞서 있고, 울산도 우리가 앞서고. 대구·경북은 말할 것 없고. 부산은 박빙이다. 수도권이 아직 우리가 밀리고 있다. 그리고 충남이 박빙이다. 대전이 우리가 조금 앞선다. 충북·강원은 우리가 조금 밀린다. 전국 판세는 대강 이렇다. 아직 70일이 남았다. 요즘 선거는 불과 2~3일 만에 민심이 바뀐다.”

홍 대표는 여론조사기관의 조사를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분석은 여의도연구소 조사와 전망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여섯 개”가 어느 지역을 뜻하는지는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았다. 기존 한국당 지역 6곳을 말하는지, 어디가 됐든 6곳을 확보하느냐 못하느냐가 승패 기준이란 건지 분명치 않다. 아무튼 ‘6곳 확보’에 실패할 경우를 묻는 질문에 그는 “사퇴한다고 했잖아. 대표직 내려놓는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 예상 못한 변수 ‘북미정상회담’

공교롭게도 홍 대표가 광역 6곳을 지켜내야 하는 지방선거 바로 전날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약 1만550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약 4700㎞를 비행기로 날아가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한다. 싱가포르 현지에선 G20 정상회의 등 초대형 국제컨벤션을 앞둔 때보다 더 흥분된 모습이 감지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어떤 국제행사보다 큰 관심을 끌 북미회담을 앞두고 북한은 또 다른 이벤트를 마련했다. 이달 23~25일 해외 언론을 초청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장면을 공개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장 폐쇄 일정’ 발표에 "대단히 똑똑하고 관대한 제스처“라며 즉각 환영의 뜻을 표했다.

외교가에는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다”는 말이 있다. 정상회담은 양측 모두 어떤 형태로든 성과물을 만들고 그것을 포장해 공개하는 자리여서 대부분 ‘좋은 말’이 오가게 돼 있다는 뜻이다. 정상회담을 하기로 결정됐다는 것 자체가 ‘성과’가 있을 것임을 시사한다고 외교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더욱이 북한과 미국 모두 회담을 앞두고 우호적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회담 성공을 향한 양측 의지가 매우 강한 상황이다.

이처럼 예고된 북풍을 앞두고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당과 후보 입장에선 이슈를 부각시키고 어젠다를 설정하기가 어느 때보다 어려워졌다. 앞으로 한 달간 여론의 시선은 북미회담에 맞춰질 게 분명하다. 지방선거에 뛰어든 이들은 그 틈을 비집고 인물과 공약을 알리며 유권자의 시선을 붙잡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 북풍은 여권에 유리하게 작용하리라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남북정상회담을 ‘위장평화쇼’라고 평가절하해 온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6·13 지방선거 필승전진대회에서 ‘평화가 곧 경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80% 안팎을 기록했다. 민주당 지지율도 50%대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북미정상회담 성과가 가세할 경우 여권을 향한 긍정적 여론은 한층 높아질 수 있다.

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북미정상회담에 강한 기대를 드러내면서 ‘드루킹 특검'으로 여권 공세를 막아보려던 전략도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상태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대구에서 열린 지방선거 필승결의대회에서 "문재인정부가 얼마나 사정을 했으면 지방선거 하루 전에 싱가포르에서 회담을 하느냐"며 "결국은 남북평화쇼로 지방선거를 덮어버리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 민주당선 “TK 빼곤 질 만한 곳이 없다” 전망까지

6·13 지방선거의 초반 판세는 민주당이 우위를 점한 모양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대구 경북(TK) 지역을 제외한 모든 광역단체장을 싹쓸이할 수 있다는 전망마저 흘러나온다. 민주당은 대외적으로 광역단체장 17곳 중 최소 9곳 이상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서울과 충남, 충북, 대전, 전남, 전북, 광주, 강원, 세종 등 2014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곳들이다.

하지만 당 내부에서는 전체 17곳 중 TK를 제외한 15곳을 차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묻어난다. 배경은 집권 1년이 넘도록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다. TK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단순 지지율은 민주당이 우세한 상황이다. 그간 한국당의 텃밭으로 분류됐던 부산경남(PK)에서도 민주당 강세가 관찰된다.

더구나 야권의 무기인 '정권 심판론'이 남북정상회담과 한미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등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전환을 위한 대내외 행사에 묻혀 힘을 받지 못하고 있는 점도 민주당에게 유리한 지점이다. 특히 한반도 명운을 좌우할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치러질 경우 정권심판론은 힘을 받기가 더 어려워진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여론조사를 보면 TK 빼고는 질만한 지역이 없는 것 같다. 대구도 김부겸 카드가 성사됐다면 해볼 만했다"며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재보궐선거도 경북 김천을 빼면 질만한 지역이 안 보인다"고 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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