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막말의 배경은 현실부정 "이거 실화냐?"
[경향신문] “옆에서 말린다고 들을 사람이었으면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다. 이런 말을 꺼내면 안 되지만, 속으로는 지방선거 화끈하게 지기를 바라는 사람 많을 거다.” 한 자유한국당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지난 대선 때까지만 해도 홍준표 한국당 대표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행보를 두고서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6·13 전국동시지방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후보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모든 관심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쏠려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야당 상황은 다르다. 특히 당 지지율이 낮을 경우 당보다는 후보가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당보다는 후보 개개인을 앞세웠다.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 송영길 인천시장 후보, 안희정 충남지사 후보, 이광재 강원지사 후보 등이다. 2018년 5월 10일, 리얼미터 발표에 따르면 한국당 지지율은 17.5%다.
지방선거 앞두고 한국당 후보들 안 보여
지난 대선 이후 홍 대표는 ‘막말’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전세계가 인정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위장평화쇼’라고 비판했고 일본 아사히TV 인터뷰에서는 “회담을 지지하는 것은 좌파뿐”이라고 말했다. 경남 창원에서 열린 지방선거 필승 결의대회에서는 “다음 대통령은 김정은이 될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고 말했다.
홍 대표의 잇단 막말은 어떤 ‘긍정효과’가 있을까. 소종섭 정치평론가는 “여당과 1대 1 구도를 만드는 성과는 있다”고 평가했다. 바른미래당에서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를 낼 때만 해도 서울시장 선거가 3자구도로 가지 않을까 했는데 홍 대표 때문에 다른 야당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는 지방선거의 핵심이다.
김성완 시사평론가도 “홍 대표 입장에서는 리더십 없고 응집력 떨어지는 한국당이 그나마 조명을 받는 것은 자신의 캐릭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실제 한국당이 그렇게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맞다”며 “길게 보면 이 전략으로 한국당은 지방선거에서 2등을 차지하고 바른미래당과 정계개편을 하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확장성’은 없다고 평가했다. 소 정치평론가는 “15% 남짓한 한국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그 15%도 새누리당 시절에 워낙 잘 다져놓아서 남아있는 지지층”이라며 “제1야당이 10% 정치를 해서야 되겠나”라고 말했다.
한국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적지 않다. 한 한국당 관계자는 “최고위원회도 제대로 안 열리고 당이 제어가 안 되고 있다. 1인체제 비슷하게 되어버렸다”며 “이런 말 꺼내면 안 되지만 홍 대표 책임론을 묻기 위해서라도 어차피 지는 선거, 화끈하게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사자도 호랑이도 없는 굴의 하이에나”
홍 대표가 이런 비판을 모를 리 없다. 지방선거 후보들부터 홍 대표와 거리두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홍 대표의 막말이 이어지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그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라고 입을 모았다. 야당의 역할은 주로 견제와 비판인데, 대통령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는 상황에서 야당이 설 자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특히 안보문제가 그렇다. 최 시사평론가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미사일이나 핵도발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당이 설 자리가 있었다. 진보가 정권을 잡으니 안보가 불안하다는 주장을 펼쳤다”며 “하지만 올해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정상회담, 심지어 북·미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상황이 급격하게 변했다. 보수의 유일한 공격 포인트가 증발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 시사평론가는 “심리적으로 본다면 현실 부정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현실을 도피해서 갈 수 있는 ‘판타지’가 없을 경우 아예 현실을 부정해버리는데, 홍 대표가 그런 상황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최 시사평론가는 “그러니까 남북정상회담을 ‘쇼’라고 하는 것이다. 홍 대표 입장에서는 ‘이게 실화냐’ 이렇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 대표가 지방선거 승리를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 시사평론가는 “홍 대표는 지난 대선 때 받은 25% 정도의 지지를 얻어서 바른미래당을 앞서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 전략은 홍 대표와 한국당은 살아날지 모르나 지방선거 후보들은 죽는 전략이다. 지금 후보들 속이 타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홍 대표 개인적인 성향도 한몫 하는 것으로 보인다. 홍 대표의 오랜 측근이었던 ㄱ씨는 “홍 대표는 자기가 원하는 걸 이루게 되면 마음대로 운영하는 경향이 있다.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발휘하고 누려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경남도지사, 대통령 후보, 그리고 최근 당대표로서 보여주는 행보가 그렇다”고 말했다.
이어 ㄱ씨는 “홍 대표는 검사 시절에도 소통을 하는 게 아니라 권력관계로 해석했다. 지배자는 군림하고 피지배자는 따른다는 식이다”라며 “홍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지지율에 별로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표가 나오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나는 내 방식대로 가겠다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홍 대표의 최근 행보는 그의 정치생명에 도움을 줄까. 당장은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정적으로 보인다. 김 시사평론가는 “한국당이 20%를 넘길 경우 홍 대표는 대선 당시와 마찬가지로 ‘내가 이 정도 했기 때문에 이 정도 지지율이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며 물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무엇보다 한국당에 현재로서는 홍 대표를 대신할 만한 사람이 없다. 호랑이도 사자도 없는 굴에 하이에나가 왕을 차지한 형국”이라고 말했다.
소 정치평론가는 “지방선거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그동안 참았던 비판이 당내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올 것”이라며 “홍 대표는 자기의 정치생명을 위해서라도 언행을 신중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ㄱ씨는 “선거가 끝나면 홍 대표뿐만 아니라 한국당은 무너질 것”이라며 “신라 말기, 조선 말기처럼 보수가 종말을 고하기 직전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시사평론가는 “촛불정국 이후에 한국 사회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국민들이 더 이상 보수와 진보 구도에 갇혀 있지 않다”며 “정치인들이 국민들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이미지가 좋은 것은 기본이고 역량까지 갖춰야 한다. 하지만 홍 대표는 아직까지 구시대에 머물러 있다. 미래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홍 대표는 5월 9일 “최근 얻어먹은 욕만 전부 합치면 내가 아마 130까지 살 것이다. 그런데 결코 이게 나쁜 현상이 아니다. 내가 그만큼 두렵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현실부정은 어디까지 갈까.
<이하늬 기자 · 정용인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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